[대전노인신문] 노인보다는 어르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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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노인신문] 노인보다는 어르신이 좋다

최호영 명예기자

  • 승인 2026-08-27 14:33
  • 신문게재 2026-08-28 10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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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영 명예기자
머리카락에 은발(銀髮) 늘어가니 은의 무게만큼 나 고개 숙이리- 허영자 [은발]

얼마 전 40대 초반의 회원과 한편이 되어 테니스 경기를 하던 중이었다. 누군가 "어르신이 서브를 넣을 차례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처음 들어보는 호칭이었다. 듣기 좋다기보다는 오히려 무거운 책임감이 먼저 떠올랐다. '어르신'이라는 말을 들으려면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넘어 존경받을 만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 듣기 편하고 좋은 호칭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가운데 80~90%가 '어르신'으로 불리길 바란다고 한다. 어르신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또는 '나이가 많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왜 이런 호칭을 원하는 것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노인은 삶의 지혜를 지닌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노인은 지혜와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 무기력하거나 사회에 부담을 주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70대 이상 세대는 전쟁과 가난의 시절을 딛고 일어나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끌어 온 세대이기도 하다. 나라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짧은 기간에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어르신'으로 불리길 원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못난 줄 알고, 내가 모르는 줄 알면 철이 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아는 체를 하고 잔소리를 하며,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곤 한다. 그런 나를 돌아보면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오히려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동안 내 연륜에서 나온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라도 주었을까.

나이 든 사람이 존경을 받으려면 곰삭은 홍어처럼, 잘 절인 간고등어처럼, 혹은 좋은 포도주처럼 세월과 함께 익어가야 한다고 한다. 나는 아직 시고 떫은, 덜 익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도마동 D학교 테니스장에서 함께 운동하는 동호인은 30여 명이다. 그중 내가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어르신'이라 불리려면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까 생각해 봤다. 그래서 조금 일찍 나가 테니스장에 솔질을 하고 선을 긋고,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음료수나 과일도 준비했다. 어른 대접을 받으려 하기보다 먼저 어른다운 행동을 해보자는 마음에서였다.

어느 여류작가의 글에서 '어르신과 노인의 차이'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노인은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상대를 자기 기준에 맞춰 판단하며 잘난 체하거나 지배하려 든다. 반면 어르신은 상대를 이해하고 아량을 베풀며 좋은 덕담을 건네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내용이었다.

노년은 인생의 마지막 과정이다. 잃어버린 젊음을 한탄하기보다는 지금껏 쌓아온 경험의 가치를 살릴 때 삶은 더 즐겁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 노년기에만 누릴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가 하면 감당해야 할 고통도 있다. 깊어진 주름을 걱정하기보다 그 속에 담긴 자신의 매력과 가치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인은 많은데 어른은 드물다'는 말이 나오는 시대다. 세월을 견디며 얻은 주름과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삶의 무게를 품고 살아가는 황혼이 되고 싶다.

이제는 즐기면서 삶을 정리하고 마무리할 때다. 아는 것도 때로는 모르는 척하고, 보았어도 못 본 체 넘어갈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며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너무 오래 살았다", "이 나이에 무엇을 하겠느냐"는 식으로 자신을 비하하거나 죽음을 쉽게 입에 올리는 일도 삼가야 한다.

젊었을 때는 자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면, 노년에는 세상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몸과 마음이 스스로 노인이 되어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가꾸고 남을 배려하며 '어르신'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것인가.

젊음은 주어지지만 노년은 만들어진다고 했다. 내면과 외면을 돌보며 더 나은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고, 은빛 머리의 무게를 보여주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 내가 몇 살이든 괘념치 않고 지금이 내 삶의 절정이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앞으로 더 많이 참여하고 베풀며, 편견을 내려놓고 살아가려 한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르신'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부끄러움 없이 선뜻 대답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최호영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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