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바로 읽을 수 있을 만큼 강렬한 화풍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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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마송, 1925 |
독일을 비롯해 세계 각지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함부르크 미술관에 필자가 찾아갔을 때는 앙드레 마송의 <여자>가 대여 전시되어 있었다. 프리드리히나 장 레옹 제롬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그림이 주를 이루고 있는 흐린 오후의 전시실에서 마송의 <여자>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를 대라면 대부분은 달리, 샤갈, 마그리트를 떠올린다. 2010년이 되서야 청담동에서 열린 개인전으로 마송을 처음 접한 이들이 꽤 될 정도로. 이들에 비해 마송의 국내 인지도가 뒤쳐지더라도 그의 작품을 보면 누구나 그 안의 초현실주의를 바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화풍이 강렬하다.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앙드레 마송은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그는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서 2년을 보냈다. 이후 평생 신체적 고통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 이때 경험은 인간의 운명, 지배 받는 삶과 세계 등을 고찰하게 만든 영감의 원천이었다. 미술은 그의 생각을 표현하는 통로가 되었다.
원래 자수 작업장에서 문양을 그렸던 마송은 풍경화로 미술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곧이어 입체주의 방법을 탐구하다가, 풀로 그림을 그린 뒤 그 위에 모래를 뿌리거나 아예 모래와 풀을 섞어 찰흙처럼 작업하는 등 그 당시로는 새로운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기도 하했다. 또한 계산하지 않고 손이 가는 데로 내버려두는 자동기술법을 실험했다. 당대 유행하던 아방가르드 양식에 흥미를 느꼈던 마송은 <여자>를 통해 그의 목표였던 반아카데미적이고 아이처럼 순수한 접근방식을 드러냈다. 이 작품을 제작했을 때, 그는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운동에 가담했다. 이 그림은 잠재적인 사고가 반영된 그의 무의식이 그린 결과다. 곡선과 각진 선, 비틀리고 넘실거림, 질감을 살린 색채의 조각 등이 난해하게 펼쳐진다.
자동기술법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 마송은 종종 음식이나 잠에 대한 욕망을 억제하거나 약물을 복용하고 작업할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림을 가로지르는 패턴 아래 앉아 있는 여자의 형상은 르네상스 시기의 성모마리아를 연상시킨다. 여자는 모호한 공간에서 떠다니고 있으며, 몸 안의 장기는 생명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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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 날개를 한 방랑자>, 마송, 1966 |
1929년까지 마송은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해 ‘존재의 본질적인 드라마’라는 우주적인 문제를 추궁하였으나 1941년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흑인과 인디언 신화에서 새로운 예술의 원천을 발견했다. 이러한 이유로 초현실주의, 타시즘, 선(善) 사상 등 그의 평생의 궤적이 작품들 안에 녹아 있는 말년의 작품 <까마귀와 방랑자들> 역시 관람자의 눈에 보일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1923년에 그가 개척한 자동기술법은 예술가들이 다다이즘과 결별하도록 부추겼다. 무의식에 주목함으로써 독립적인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마송은 처음에 입체주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받았고, 1924년경 초현실주의에 가담했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아실 고르키, 잭슨 폴록 등 많은 화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를 통해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미술계의 다리 역할을 하며 미술의 표현영역을 넓히는 데 크게 일조했다.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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