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유네스코 '부산 선언' 지구적 협력으로 응답하라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 유네스코 '부산 선언' 지구적 협력으로 응답하라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 승인 2026-07-21 17:25
  • 신문게재 2026-07-22 18면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clip20260721141423
이상근 이사장
대한민국 문화유산 외교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세계 유산 분야의 최고 의사결정 회의인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해양수도 부산 벡스코에서 성대하게 개막했다. 1988년 한국이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지 38년 만에 처음으로 안방에서 개최되는 역사적인 대회다. 전 세계 150여 개국에서 모인 3000여 명의 전문가와 정부 대표단이 부산에 모여 인류 공동 자산의 미래를 논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회가 주는 감동은 단지 국내 최초 개최라는 상징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전례 없는 대전환기와 복합적 위기 속에서 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승을 위한 지구적 나침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파괴되는 문화유산으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무력 분쟁과 전쟁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인류의 기억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고 있다. 여기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기후변화는 가뭄, 폭우, 산불, 해수면 상승을 유발하며 자연유산뿐만 아니라 고대 유적의 물리적 기반까지 통째로 흔드는 중이다.

과거에는 유산 보존이 특정 국가나 지역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인류 전체가 공동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구적 생존'의 문제가 됐다. 이러한 위기 국면에서 개막 첫날 채택된 '세계유산에 관한 부산 선언(Busan Declaration on World Heritage)'은 국제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이정표다.

대한민국 정부가 주도하고 위원국들이 머리를 맞댄 이번 '부산 선언'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협력(Cooperation)'이다. 기존 세계유산협약이 추구해 온 5대 전략 목표인 신뢰성, 보존, 역량 강화, 소통, 공동체(5C)를 넘어, 마침내 '협력'이라는 여섯 번째 기둥을 추가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전쟁과 재난, 기후위기라는 복합적 도전 앞에서 국가와 기관, 전문가와 지역공동체, 그리고 미래 세대인 청년까지 모두가 연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공동 책임의 엄중한 선언이기도 하다.

특히 남지은 문화유산회복재단 국제협력실장이 발표한 청년선언문은 의미심장하다.

전세계 수많은 청년 중 33명이 선발된 청년들이 일주일 동안 토론하고 숙의해 결정한 선언문에는 기성세대의 실패와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담겨있다.

이번 회의는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급격한 디지털 환경 변화 속에서 '디지털 유산 관리와 전환'에 대한 책임을 공론화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디지털 기술을 통한 유산의 원형 기록과 보존은 재난이나 전쟁으로 유산이 훼손되더라도 이를 완벽히 복구하고 해석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과학기술을 유산 보존에 올바르게 접목하고, 이를 개발도상국과 공유해 글로벌 유산 격차를 해소하자는 다짐은 우리 인류가 고도의 첨단 문명을 어떻게 올바르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보여준다.

개최지인 부산이라는 도시 자체도 인류에게 깊은 메시지를 던진다. 부산은 한국전쟁 당시 전국의 피란민을 품어내며 대한민국을 지켜낸 평화와 회복의 도시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눈부신 경제·문화적 번영을 이룩한 부산의 역사는, 위기 속에서도 인류가 어떻게 희망을 복원해 냈는지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유산이다. 현재 부산이 추진 중인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2030년 세계유산 등재 노력 역시,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비극의 역사를 평화의 가치로 승화시키려는 거대한 여정이다.

이런 국제적인 흐름 속에서 문화유산회복재단도 그동안 국외로 유출되거나 약탈당한 우리 문화유산의 원상회복을 위해 민간 공공외교의 최전선에서 뛰어왔다. 유산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 유산에 깃든 민족의 정신과 인류의 기억을 잃는 것과 같다. 전쟁과 기후 위기로 유산이 파괴되는 현 상황은 우리에게 더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한다.

문화유산은 단순히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물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온전하게 전해줘야 할 '미래를 위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한 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기에, 지금 우리가 보여주는 연대와 실천만이 유산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부산에서 열린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 문화의 힘(K-Culture)을 세계에 과시하는 축제의 장을 넘어, 지구적 도전에 맞서는 인류의 지혜를 모으는 엄숙한 공론의 장이 돼야 한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부산 선언'의 약속들이 선언적 언어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인 공적개발원조(ODA) 확대, 기후위기 취약국 지원, 생성형 AI 기반 디지털 기술 개발 등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강력히 소망한다. 위기의 시대, 인류가 나아갈 길은 명확하다. 유산이 가진 화합의 힘을 믿고, 지구적 협력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세계 유산을 지켜는 일은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부산선언이 약속을 행동으로 바꾸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청권 인구감소지역 15곳 그대로… 대전 원도심 3곳 ‘인구활력+지역’ 전환
  2.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3. "우리 위성이다,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진 사출 지켜보며 환호
  4. "지천댐 건립 지자체 결정권 없어" 선 그은 박수현 지사…주민들 사이 찬반 대립 지속
  5. 세종시로 '국가기관' 이전… 수도권 문제 해법으로 유효
  1. 충남대 통합신청서 부결 한 달…“국립대 통합 재추진 필요” 민병권 대표 제언
  2. [22대 첫 국감] 충청 하계U대회·행정수도 완성 강하게 어필
  3. 체육중·고 없는 '세종시', 국립체육영재학교 유치 절실
  4. 통합신청서 부결 충남대, 주요 보직 인선…조직 안정화 ‘속도’
  5. 누리호 5차 발사 성공…대전 한국형 뉴스페이스 도약 가속도

헤드라인 뉴스


[한글날 제정 100주년]AI 시대, 한글의 힘을 기르자

[한글날 제정 100주년]AI 시대, 한글의 힘을 기르자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글을 쓰고 번역하며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시대다. 몇 줄의 질문만 입력하면 보고서는 물론 시와 소설까지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한국어도 예외가 아니다. AI활용이 늘어나면서, AI가 한국어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밥 먹었어?"라는 표현에 대해 AI는 이를 단순히 식사 여부를 묻는 질문으로 설명하면서도 "한국어에서는 실제로 식사했는지를 확인하는 의미뿐 아니라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인사처럼 사용되기도 한다"고 답했다...

지역화폐 몸집 키우는 정부·지자체… 소비 쏠림에 실효성 물음표
지역화폐 몸집 키우는 정부·지자체… 소비 쏠림에 실효성 물음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화폐 발행을 확대하고 있지만 소비가 일부 상권에 집중되면서 정책 실효성을 보다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비와 지방비가 투입되는 만큼 발행 규모뿐 아니라 지역 내 소비가 어디로 흘러가는지까지 정책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7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지역사랑상품권 활성화 기본계획(2026~2030)'을 수립하고 2030년까지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31조 2000억 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지원 국비도 올해 1조 1500억 원에서 내..

최근 5년 건설현장 사망자 1220명… 절반 이상이 `추락사`
최근 5년 건설현장 사망자 1220명… 절반 이상이 '추락사'

최근 5년여간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의 절반 이상이 추락사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6월까지 건설현장 사망자는 총 1220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추락사고 사망자는 642명으로 전체의 52.6%를 차지했다. 건설현장 사망자 2명 중 1명 이상이 추락사고로 숨진 셈이다. 전체 건설현장 사망자는 2021년 272명에서 2022년 238명, 2023년 244명, 2024년 209명, 2025년 199명으로 줄었다. 연도별 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 ‘은행 열매를 피해라’ ‘은행 열매를 피해라’

  • ‘한글, 예술이 되다’ ‘한글, 예술이 되다’

  •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3000석 증축 추진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3000석 증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