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취약한 공공임대주택 개선노력 아깝지 않아요”

  • 사회/교육
  • 미담

“화재 취약한 공공임대주택 개선노력 아깝지 않아요”

대전 해피랜드 화재피해주민대책위원장
매입형임대주택 화재 계기 제도개선 노력
낡은 임대주택 방재설비 필요성 확산 성과

  • 승인 2018-02-07 06:48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2016년 8월 대전 서구 괴정동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는 공공임대주택 10세대의 모든 걸 앗아갔다. 화재를 피해 급하게 빠져나와 몸에 걸친 옷이 전 재산일 정도로 피해가 컸다. 그러나 이재민이 발생한 화재는 다가구주택의 단순 사건으로 치부돼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쉽게 잊혔다. 불이 난 주택이 공공임대주택이었고, 길거리에 나 앉게 된 이들이 장애인과 한부모가정의 취약계층이었다는 것도 관심받지 못했다. 때문에 불이 난 LH 공공임대주택이 사실은 화재에 취약한 드라이비트 외장재를 사용하고도 화재감지기 하나 없었으며, CCTV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낡은 건물이라는 점도 다뤄지지 않았다. 또 LH 공공임대주택이 사실은 민간의 낡아 못 쓰게 된 다가구주택을 매입해 방재설비 보강도 없이 재공급된다는 사실도 묻힐 뻔했다.

이러한 공공임대주택의 불합리한 정책을 화재피해 이재민들이 하나씩 밝혀냈고, 일부는 제도개선을 끌어냈다.



해피랜드 윤선이
윤선이 피해주민대책위원장이 공공임대주택 화재피해를 설명하고 있다.
“(피해 입은)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그럴 거잖아요”

지난 2일 만난 윤선이 공공주택 해피랜드 화재피해 주민대책위원장이 분명한 어조로 강조했다.



윤 위원장은 “전화를 받고 뛰어가보니 집이 거의 재가되었더라고요. 불이 완전히 꺼지고 안에 들어갔지만, 가지고 나올 게 없었어요. 반바지 차림으로 몸만 빠져나온 아들과 인근 모텔에서 밤을 지새웠어요”라고 2년 전 그날을 설명했다.

당시 화재는 “2016년 8월 18일 오후 6시 14분께 서구 괴정동 한 다가구주택 1층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차량 4대를 태우고 15분 만에 진화됐다”고 일부 보도됐으나, 이곳이 공공임대주택이었고 집을 잃은 이재민 피해는 다뤄지지 못했다.

화재가 발생한 괴정동 다가구주택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민간의 주택을 사들여 취약계층에게 공급하는 매입형 다가구주택이다. 다가구주택의 건물명칭이 ‘해피랜드’였고, 때문에 해당 사건을 해피랜드화재피해로 불린다. 피해를 입은 임대주택 주민 10세대는 그해 12월부터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화재피해에 대응해왔다.

윤 주민대책위원장은 “불이 난 첫날은 충격 때문에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떤 아이들은 부모가 보시면 놀란다고 불이 난 자기 집에 들어가 청소를 할 정도였어요”라고 설명했다.

KakaoTalk_20180117_113308290
공공임대주택 화재피해 모습.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된 불은 드라이비트 외장재의 스티로폼을 타고 4층까지 번졌다. 한부모가정과 장애인세대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안식처 10곳은 그렇게 재가 됐다. 이 사고는 가구당 피해액이 300만원~2000만원이라는 숫자로 정리돼 보고됐고 관심에서 멀어지는 발단이 됐다. 주민들은 화재의 원인이 밝혀지면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조사하는 데 4개월이 소요됐지만, 그해 12월 화재 이유를 단정할 수 없어 원인미상으로 종결됐다.

화재 첫날 3층 주민은 모텔에서 밤을 보냈고, 또 다른 주민들은 아는 친구나 친척집으로 찾아갔다. 말 그대로 몸 누일 곳조차 한순간 사라졌다. LH가 다음날 임시거주지를 제공했으나, 그 이상은 없었다.

윤 위원장은 “싱크대와 변기가 전부이고 이불이나 숟가락 하나 없는 맨몸으로 임시거주지에 들어갔는데 눈물만 한없이 나오더라고요. 무엇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었고, 다른 주민들도 저와 똑같은 상황이었어요”고 기억했다.

집을 잃은 해피랜드 화재이재민들은 도움의 손길을 백방으로 찾았다. 구청과 주민센터에 화재피해를 알렸지만, “도와드릴 게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윤 위원장은 “우리는 하루를 어떻게 버틸지 힘든 상황인데 도와줄 수 없다는 거예요. 나중에 보니 저희 화재피해액이 적게 보고됐고, 기초생활수급처럼 복지지원을 받는 경우 이중수혜를 이유로 긴급지원을 받을 수없더라고요요”라며 “기초생활수급자가 화재로 전 재산을 잃고 몸과 정신적 충격까지 받았는데 이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어요. 저 역시 통장에 500만원의 잔액이 있다는 이유로 긴급지원 대상이 아니었죠. 통장 잔액보다 대출금이 훨씬 많았는데 말이죠”라며 숙제라는 표정을 지었다.

결과적으로 해피랜드 화재이재민들에게 제공된 공적 도움은 사고 2주 후 적십자의 이불세트 하나를 받은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이재민들이 주민센터에 찾아가 이불세트를 받아왔다. 화재원인이 밝혀지지 않자 LH는 주민들에게 보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주거취약계층으로 보호할 대상에게 제공한 거주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하고도 피해회복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됐다.

화재 방재설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노후 민간주택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제공하는 정책과 임대주택 관리허술에 대한 문제가 불거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었다. 대전 해피랜드 공공임대주택 화재를 계기로 매입임대주택의 부실한 방재대책에 대한 지적이 이곳저곳에서 이어졌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지난 5년간 매입임대주택을 포함해 공공임대주택에서 발생한 화재가 832건으로 연평균 166건의 화재피해를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매입임대주택 중 3110가구가 빈집으로 LH가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수요가 부족한 도시의 빈집을 매입했기 때문이라고 지적됐다.

temp_1517952891957.-705345318
대전시청 1층 로비에서 공공임대주택 해피랜드 피해주민 돕기 바자회가 열리고 있다.
“저희처럼 공공임대주택 화재때문에 모든 걸 잃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사례가 전에도 있었어요. 그때도 지금처럼 아무런 지원도 없이 임시거주지조차도 받지 못해 집이 수리될 때까지 이재민들이 알아서 이곳저곳을 옮겨 다녀야 했죠. 화재에 고통을 공공임대주택 거주자가 혼자 감당한 셈이죠. 바꿔야겠다 싶어 나서게 됐어요.”

해피랜드 화재피해 주민들을 돕기 위해 대전 벧엘의집과 주거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등이 자선바자회를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대전시청에서 진행됐다. 중도일보를 포함해 지역 언론기관과 대전경실련 등의 단체가 후원했다.

윤 위원장은 “이번 바자회는 공공임대주택 화재피해를 당하고 1년 6개월간 정책개선을 위해 노력한 것을 마무리하는 의미예요. 주민들은 새로운 거주지로 이주했지만,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장애인세대도 있지만, 병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죠. 기금은 그분들을 위해 사용할 예정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카이스트 실험실서 화재…인명피해 없어
  2. '27년만의 의대증원' 예정대로… 지역대 이달말 정원 확정
  3. 충남대병원 간호연구팀, 간호사 장기근무 연구논문 국제학술지에
  4. [WHY이슈현장] '충청의 5.18', 민주화 향한 땀방울 진상규명은 진행형
  5. 5.18 민주항쟁 시기 충청서도 군부대 순화교육 탄압 확인… 77명 명단 나와
  1. 성상헌 신임 대전지검장 "민생침해 범죄에 빈틈 없는 대응"
  2. 집단유급 직면한 전공의 복귀 '불확실'…"정부약속 실천 위해 돌아와주길"
  3. 항소심 재판부, JMS 정명석 목사 고소인 제출 녹음파일 복사 허용
  4. 대전세종충남혈액원, 헌혈자가 모은 성금 4천만원 장학금 기탁
  5. [WHY이슈현장] "대전·충남에서도 5·18은 있었어요"

헤드라인 뉴스


세종시 `도심 캠핑` 인프라...올해 한층 나아진다

세종시 '도심 캠핑' 인프라...올해 한층 나아진다

세종시 '도심 캠핑' 인프라가 2024년 한층 나아진 여건에 놓일 전망이다. 2023년 홍수 피해를 입은 세종동(S-1생활권) 합강캠핑장의 재개장 시기가 6월에서 10월로 연기된 건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호수공원과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상설 피크닉장'이 설치되는 건 고무적이다. 17일 세종시 및 세종시설공단(이사장 조소연)에 따르면 합강캠핑장 복구 사업은 국비 27억여 원을 토대로 진행 중이고, 다가오는 장마철 등 미래 변수를 감안한 시설 재배치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하천 점용허가가 4월 18일에야 승인되면서, 재개장 일..

[WHY이슈현장] `충청의 5·18`, 민주화 향한 땀방울 진상규명은 진행형
[WHY이슈현장] '충청의 5·18', 민주화 향한 땀방울 진상규명은 진행형

5·18민주화운동을 맞는 마흔 네 번째 봄이 돌아왔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온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5·18민주화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1980년 5월 민주화 요구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뜨거운 열기로 분출되었는데, 대전에서는 그동안 교내에서 머물던 '계엄령 해제'와 '민주주의 수호' 시위가 학교 밖으로 물결쳐 대전역까지 진출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광주 밖 5·18, 그중에서 대전과 충남 학생들을 주축으로 이뤄진 민주화 물결을 다시 소환한다. <편집자 주> 1980년 군사독재에 반대하며 전개된 5·18민주화..

`27년만의 의대증원` 예정대로… 지역대 이달말 정원 확정
'27년만의 의대증원' 예정대로… 지역대 이달말 정원 확정

법원이 의대증원 처분을 멈춰달라는 의대생·교수·전공의·수험생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예정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구회근 배상원 최다은 부장판사)는 의대교수·전공의·수험생 등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의 항고심에서 1심과 같이 '각하'(소송 요건 되지 않음)했다. 다만 의대생들의 경우 "집행정지를 인용할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기각(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음) 했다. 법원 판단에 따라 의료계가 재항고할 것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무성하게 자란 잡초에 공원 이용객 불편 무성하게 자란 잡초에 공원 이용객 불편

  • 대전 발전 위해 손 잡은 이장우 시장과 국회의원 당선인들 대전 발전 위해 손 잡은 이장우 시장과 국회의원 당선인들

  • 의정활동 체험하는 청소년 의원들 의정활동 체험하는 청소년 의원들

  •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관불의식 하는 신도들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관불의식 하는 신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