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그 놈이 하필 그때 왜?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그 놈이 하필 그때 왜?

  • 승인 2020-10-21 10:31
  • 신문게재 2020-10-22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KakaoTalk_20201021_093634437
찬바람이 분다. 숲속 양지바른 오솔길 쑥부쟁이가 이별을 고하려고 한다. 자기 전에 잠깐 보일러를 튼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나는 인고의 겨울을 맞아야 한다. 온기가 몹시 그리운 어느날, 옷깃을 여미고 길을 나섰다. 마지막 한줌 햇살인 양 얼굴을 들고 맘껏 쬐었다. 회사에서 좀 멀리까지 걸어갔다. 식당은 손님이 다 빠져나간 뒤여서 한산했다. 어쩌다 식당에 가면 코로나19 때문에 일부러 손님이 없을 때 들어간다. 주 메뉴가 콩나물밥인 듯 한데 콩나물국밥을 시켰다. 이맘 때면 난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생깨나 한다. 그래서 따뜻한 국물을 찾게 된다. 뚝배기에 담긴 콩나물국이 화산 용암 끓듯 부글거리며 뽀얀 김을 뿜어냈다.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온 몸이 따뜻해지면서 나른했다. 계란이 익기 전까진 국물을 살살 떠먹어야 한다. 계란이 풀어지면 국물이 탁해지기 때문이다. 북어와 청양고추가 들어간 국물은 담백하고 시원했다.

콩나물국밥은 전라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전주 콩나물국밥이 유명한 이유다. 값도 싸고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콩나물은 요리도 쉽다. 고춧가루 풀고 질 좋은 새우젓으로 간한 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면 속이 확 풀린다. 애주가들의 아침 해장으로도 좋다. 요즘은 시장에서, 마트에서 콩나물을 사다 먹지만 집에서 콩나물을 길러 먹던 시절이 있었다. 콩 추수가 끝나고 겨우내 방 윗목엔 으레 콩나물 시루가 자리를 차지했다. 고무다라 위에 나무받침대를 걸치고 콩나물시루를 놓는다. 보자기에 덮인 콩은 식구들이 오며가며 물을 주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간다. 싹이 삐죽이 나온 콩은 갓 태어난 강아지들처럼 앙증맞고 신기했다. 그 귀여운 모양과는 다르게 어릴 적엔 콩으로 만든 음식은 무조건 싫어했다. 콩 특유의 비린내가 도깨비만큼이나 무서웠다. 나이를 먹으면서 입맛이 순해진 지금은 밥할 때 콩을 꼭 넣는다.



1991년 12월 생애 첫 직장에 입사했다. 기대와 설렘으로 편집국에 들어섰지만 업무는 고됐다. 국어교육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만만하게 덤볐는데 교열이라는 것이 생명을 단축시키는 업이었다. 취재기자가 원고지에 쓴 기사는 암호 해독하는 수준이었다. 한자는 또 왜 그렇게 많은 지. 나와 동기들은 호랑이같은 교열국장님에게 불려가 혼나는 게 하루 일과였다. 점심 때 잔뜩 주눅 든 채 파김치가 되어 선배들 뒤를 줄레줄레 따라간 곳이 회사 앞 용두동 시장 골목이었다. 거긴 맛있는 밥집이 많아 항상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 중 콩나물국밥은 최고였다.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는 토렴식 국밥은 지금 생각해도 '찐'이었다. 탱글탱글한 밥알들이 입안에서 살아 움직였다. 감칠맛 나는 뜨거운 국물과 함께 콧물을 훌쩍이며 한 뚝배기 비우고 나면 얄미운 국장님도 부처님 가운데 토막으로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못볼 걸 보고야 말았다. 여자 선배들과 밥을 먹다가 거짓말 조금 보태서 토끼만한 쥐를 발견했다. 잿빛 털의 꺼벙한 쥐가 까만 눈을 반짝이며 두리번거리다 구석에 난 구멍으로 쏙 들어가는 게 아닌가. 우리는 비명도 못 지르고 나와 버렸다. 워낙 허름한 시장 골목이라서 쥐가 없을 리 만무했다. 하여간 그 후로 그 식당엔 얼씬도 안했다. 밥맛이 싹 달아났지만 식당은 오랫동안 성업했다는 얘기를 바람결에 듣곤 했다. 그 놈의 쥐가 하필 그때 나올 게 뭐람! 의사들은 나트륨이 몸에 안 좋다며 국물은 먹지 말고 건더기만 건져 먹으라고 조언한다. 오래 전 아는 후배가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며 그렇게 먹는 걸 보고 하마터면 수저를 빼앗을 뻔 했다. 거실 벽에 써 붙인 건 아니지만 나의 가훈은 '께적께적 먹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자'였기 때문이다. 쌀쌀해진 날씨, 뜨끈하고 칼칼한 콩나물국밥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드디어~맥도날드 세종 1호점, 2027년 장군면 둥지
  2. 대전 집값 51주 만에 상승 전환… 올해 첫 '반등'
  3. 경찰청 총경급 전보인사 단행… 충남청 전출 17명·전입 18명
  4. 대전 탄동농협, 노은3동에 사랑의 쌀 기탁
  5. 세종시교육청 중등교사 1차 임용시험 68명 합격
  1. [인사] 세종경찰청
  2. 천안동남서, 100억원대 불법 도박자금 세탁 조직 일망타진
  3. 박재명 신임 농협중앙회 대전본부장 부임
  4.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5. [날씨]대전 -10도, 천안 -9도 강추위 내일부터 평년기온 회복

헤드라인 뉴스


대전 집값 51주 만에 상승 전환… 올해 첫 `반등`

대전 집값 51주 만에 상승 전환… 올해 첫 '반등'

대전 집값이 51주 만에 상승으로 전환했다. 이와 함께 충청권을 포함한 지방은 8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15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2월 넷째 주(22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0.08% 오르면서 전주(0.07%)보다 0.01%포인트 올랐다. 이는 서울과 수도권, 지방까지 모두 오름폭이 확대된데 따른 것이다. 충청권을 보면, 대전은 0.01% 상승하면서 지난주(-0.02%)보다 0.03%포인트 올랐다. 대전은 올해 단 한 차례의 보합도 없이 하락세를 기록하다 첫 반등을 기록했다...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조기대선을 통한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 두 사안은 올 한해 한국 정치판을 요동치게 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는 연초부터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국면에 들어갔고,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이어졌다. 결국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면서 대통령 궐위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헌법 규정에 따라 60일 이내인 올해 6월 3일 조기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임기 만료에 따른 통상적 대선이 아닌, 대통령 탄핵 이후 실시된 선거였다. 선거 결과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꺾고 정권..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배를 띄운 것은 국민의힘이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다. 두 시·도지사는 지난해 11월 '행정통합'을 선언했다. 이어 9월 30일 성일종 의원 등 국힘 의원 45명이 공동으로 관련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여당도 가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충청권 타운홀미팅에서 "(수도권) 과밀화 해법과 균형 성장을 위해 대전과 충남의 통합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전면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충청특위)를 구성..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 성탄 미사 성탄 미사

  •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