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행복한 학생의 조건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행복한 학생의 조건

대전유천초등학교 노유진 교장

  • 승인 2020-12-03 10:43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사진(노유진)
노유진 교장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즐거울 때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건강한 신체, 경제적 풍요, 원만한 인간관계, 화목한 가정, 사랑, 몰입할 일, 정서적 안정 등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풍요로운 상태가 되면 삶이 만족스럽고 즐거울 것으로 생각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러저러한 조건이 충족된다고 해서 꼭 행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행복지수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금 학생들은 우리나라 역사 이래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가정에서도 온 가족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자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다른 나라 학생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OECD 국가 중 학생 행복지수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내·외적인 조건들에 대한 충족 여부가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행복한 학생의 비율이 낮은 것은 아마도 남과의 상대적 비교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타인에 의해 남과 비교를 당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보니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과 비교되는 순간 행복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해 학생들에 대한 평가를 과정 중심의 수행평가로 전환하여 운영해오고 있다. 학생들에게 대한 상대적 서열이나 순위를 지양하고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발달에 초점을 맞춘 절대평가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경쟁이 있는 곳에서 상대적인 비교가 없을 수는 없다. 입시나 입사 등 여러 사람이 한정된 자리에 들어가려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상대적인 비교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사회 어디를 가더라도 경쟁과 상대적 비교를 벗어나 살 수는 없다. 남과의 비교가 행복을 가로막는 걸림돌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경쟁이 없는 곳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구조에 몰려 행복을 느끼는 비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경쟁 구조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가 전제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건 지나치게 낭만적인 생각이다. 설령 경쟁 구조가 획기적으로 변화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조건들이 끊임없이 뒤를 따라 충족돼야 행복이 지속할 것이다. 내·외적인 조건이 충족되면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행복이 찾아올 즈음 새로운 행복 조건들이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다. 조건의 충족만으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복은 내·외적인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지금 현재 가진 것과 처한 상황에 만족할 줄 알고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은 쫓아다녀야 할 대상이나 목표가 아니다. 찾는다고 찾아지거나 취하려 한다고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해지겠다고 열심히 애쓴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만족할 때 슬며시 찾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어느덧 내게 와 있는 것이다.

학생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학생 주변의 교육 환경을 개선해 만족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삶에 감사하고 만족해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이고 기쁨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더 급하고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교육정책이나 방향이 학생 주변의 환경 개선이나 교육 체계 변화에 중점을 두는 것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에 앞서 학생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신뢰, 삶을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 내면의 가치 등을 일깨울 수 있는 교육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학생의 행복을 담보하는 지름길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편리하고 현대적인 교육시설을 제공해 주는 것 못지않게 학생들 스스로 마음을 옹골차게 다듬고 가꾸는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제공해서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에 이미 싹트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말이다. 행복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힘으로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전유천초등학교 노유진 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항우연 곪았던 노노갈등 폭발… 과기연전 "우주항공청 방관 말고 나서야"
  2. 대전농협, 농업 재해 피해 현장 방문
  3. [사설] 공공기관 이전 '희망 고문'은 안 된다
  4. 옛 파출소·지구대 빈건물 수년씩… 대전 한복판 중부경찰서도 방치되나
  5. 대전 상장기업, 사상 첫 시총 76兆 돌파
  1. 대전시, 통합돌봄시대 준비 본격화
  2. 세종시청 테니스팀 존치… '남녀 4명' 축소 운영키로
  3. 함께 노래하는 대전 의사들 20년 맞이 정기공연…디하모니 19일 무대
  4. 한밭수목원'정원 속에 피어난 야생화'축제 열린다
  5. 지식재산처, 아름다운 상표·한글 디자인에 '오네', '윤800체' 선정

헤드라인 뉴스


대전 생활폐기물 소각량 급증… 재활용률 줄고 매립량 전국 2위

대전 생활폐기물 소각량 급증… 재활용률 줄고 매립량 전국 2위

2050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국가적 목표 설정 및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 등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대전시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공공재활용시설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대전연구원이 발표한 '대전시 폐기물부문 온실가스 발생 현황과 감축 방안'을 보면 대전시의 생활폐기물 소각량은 2022년 7만 9651.3톤으로 급증한 후 2023년 9만 6834.7톤까지 증가하는 등 증가 폭이 매우 크게 나타났다. 이는 2023년 기준 전국 광역시 중 4번째로 많은 것이다. 또한 대전시의 생활폐기물 매립..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가치 재확인… 개방 확대는 숙제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 가치 재확인… 개방 확대는 숙제

조선시대 순성놀이 콘셉트로 대국민 개방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3.6km)'. 2016년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정원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주·야간 개방 확대로 올라가고 있다.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의 주·야간 개방 확대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주간 개방은 '국가 1급 보안 시설 vs 시민 중심의 적극 행정' 가치 충돌을 거쳐 2019년 하반기부터 서서히 확대되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제한적 개방의 한계는 분명하다. 평일과 주말 기준 6동~2동까지 매일 오전 10시, 오후 1시 30분, 오후..

전국 대학 실험실 발생 사고 매년 200건 이상…4월 사고 집중 경향
전국 대학 실험실 발생 사고 매년 200건 이상…4월 사고 집중 경향

최근 3년간 대학 내 실험실에서 발생한 사고로 매년 2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문정복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시흥갑)이 한국교육시설안전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 8월까지 최근 3년간 전국 대학 연구실 사고로 총 607명의 부상자와 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같은 기간, 대학 내 실험실 사고로 지급된 공제급여는 총 8억 5285만 원에 달한다. 특히 4월에 매년 사고가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2023년 4월에 33명, 2024년 4월에 32명, 2..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 나에게 맞는 진로는? 나에게 맞는 진로는?

  • 유성국화축제 개막 준비 한창 유성국화축제 개막 준비 한창

  • 이상민 전 의원 별세에 정치계 ‘애도’ 이상민 전 의원 별세에 정치계 ‘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