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름에 이르길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기고] 이름에 이르길

우리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DYAF 컨설턴트

  • 승인 2023-06-26 08:44
  • 수정 2023-06-27 17:00
  • 신문게재 2023-06-27 18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기고문 사진(우리원)
우리원 학예사
"나는 그림 그릴 때마다 이 그림이 딴 사람들 맘에 들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요즘 세상에 가만히 벽에 붙은 그림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며 자꾸 한심해 한다"

박이소, 무제, 1986

개념미술가이자 설치미술가 박이소(1957~2004)는 태어나 받은 이름 철호(哲浩)를 시작으로 '아무개'를 뜻하는 필명 박모(某)를 거쳐 낯설고 소박하다는 뜻의 박이소(異素)로 살았다. 그의 이름은 곧 그의 예술이며 그가 지향하는 예술적 세계였다. 한없이 낯설고 불안한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지켜야만 하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자 선언이었다.

매해 수천 명의 미술대학 졸업생이 배출되고, 그중에서 작가로 살 결심을 한 이들에게는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세상에 내보여야 하는가가 중대한 문제다. 원하는 것을 하고자 선택한 그 길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아닌 타인의 마음에 드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쓰다 던져버린 수건조차 예술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새로운 형식의 창안이든 심오한 철학이나 진리든 뉴 노멀(New Normal)의 감각에 부합하는 가치, 신성할 만한 무언가를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미술에 있어 다원주의는 작품들이 제각기 다양한 목표를 가지며 그것들 간에 우열을 정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절대적인 미적 가치나 기준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대중 혹은 컬렉터들이 좋아하는 작업을 해야 할까? 손기술을 완벽하게 발휘한 작품을 만들어내야 할까?

반 메헤렌(Han van Meegeren)*이 화가가 아닌 위조범으로 기록된 이유는 결코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인기 있는 그림을 그리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의 예술은 목표 자체가 부적절했으며 그저 타인의 이름으로 불리는 껍데기였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의 미술이 미술답기 위해서는 분명한 목표와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독자적인 표현, 그리고 그 작품이 동시대적 가치를 수용하고 새로운 세계를 여는 데 기해야 한다.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명화 위조범, 그의 위작 중 최고가는 55억에 보이만스 미술관에 팔리기도 했다.

대전문화재단의 대전청년작가장터가 ‘DYAF’(Daejeon Youth Art Fair)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총 2회로 진행되며 1차는 6월 23일부터 7월 2일까지 대전신세계갤러리 이어 2023 미술주간(2023. 9. 1~ 9. 11)에 ‘아트센터 쿠’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대전 유일의 공식 청년아트페어, 지역 미술시장 판로개척이라는 것 외에도 DYAF가 함양하는 바는 크다. DYAF는 작가로 살아가기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을 고민하고 제시한다. 작가들은 실제 전시 시스템을 경험하고 전문가와의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작품에 대한 큐레이션과 실질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다. 5회라는 길지 않은 역사이지만 미술 시장에 대한 인식개선과 진입장벽 해소를 통한 유통의 확장과 성장이 괄목할 만하다.

DYAF에서 소개하는 이들은 모두 무명(無名)이다. 그러나 즉각적인 반응과 휘발돼버리는 결과로 점철되는 오늘날 사회 구조 속에서 무명의 작가들이 '미술'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시도가 효용 가능한 언어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 언어로 견고한 세계를 구축하며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에 DYAF가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줄 것을 기대한다.

/우리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DYAF 컨설턴트
KakaoTalk_20230627_130613134
올해 대전청년작가장터 모습.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연축지구 개발 탄력받나… 공공기관 유치 준비 주목
  2. 천안시, '서북구문화원' 신축·이전 준공
  3. 가을 제철 수산물 가격 들썩… 꽃게·전어 두 배 급등
  4. 중도일보 김원식 회장·김현수 대표이사 부자(父子) 아너 소사이어티 탄생
  5. 대전 택시 기본요금 11월부터 4800원… 3년 만에 인상
  1. 잇단 산하기관 잡음… 세종시 관리·감독 문제 도마 위
  2. 세종시민과 기업의 상생 축제… 31일 도담동서 개막
  3. [기자수첩] 성남시, 도시계획 조례개정 역주행 논란
  4. 천안시민한마음체육대회 성료…31개 읍면동 24개 종목 열전
  5. 죽동중·성남중 설립 목소리 커지는데…대전교육청 '해법 찾기' 고심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2차 공공기관 이전 초읽기…대전 `우선 배치` 촉각

李정부 2차 공공기관 이전 초읽기…대전 '우선 배치' 촉각

이재명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로드맵 발표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대전 지역사회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서울과 가까운 관계로 이전 대상 기관들의 대전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부의 후발 혁신도시 우선 배치 여부도 아직 안갯 속이기 때문이다. 대전은 우리나라 연구개발(R&D) 메카이며 국토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과학기술 및 균형발전 성과를 영호남, 강원 등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장점이 크다. 이재명 정부가 대전에 관련 공공기관을 전략적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27일 중도일보..

국민취업지원제도 상담인력 불균형… 전국 최대 11.5배, 충청권 5.9배 격차
국민취업지원제도 상담인력 불균형… 전국 최대 11.5배, 충청권 5.9배 격차

전국 고용센터별로 국민취업지원제도 상담 인력의 업무 편차가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사 1명이 관리하는 참여자 수가 전국적으로 최대 11.5배 차이가 났으며, 충청권 내 13개 고용센터에서도 최대 5.9배 격차를 보였다. 27일 본보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어기구 의원(더불어민주당·충남 당진)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고용센터별 국민취업지원제도 상담인력'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9월 기준 전국 102개 고용센터의 상담인력은 총 792명으로, 상담사 1명당 평균 126.2명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정자원 대전 잔류 위해 추가 부지 발굴… 유치 경쟁 속 대응 본격화
국정자원 대전 잔류 위해 추가 부지 발굴… 유치 경쟁 속 대응 본격화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의 대전 내 대체 시설 확보를 위한 대전시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충남과 세종까지 국정자원 유치에 나선 가운데 당초 제안한 2개 후보지 외에도 추가 부지를 발굴하며 대전 내 재설립을 위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대전시의 이같은 행보는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앞두고 신규 기관 유치뿐 아니라 기존 기관 붙잡기에도 힘을 쏟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27일 대전시에 따르면 허태정 대전시장은 이날 민선 9기 자치구 상생투어의 마지막 일정으로 서구를 방문해 국정자원 본원의 대전 내 재설립 필요성을 강조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스토킹에 의한 여성 살해 국가가 책임져라’ ‘스토킹에 의한 여성 살해 국가가 책임져라’

  • 스토킹 살해 피의자 영장실질심사 스토킹 살해 피의자 영장실질심사

  • ‘울긋불긋’ 대전 도심 ‘울긋불긋’ 대전 도심

  •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