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달리는 노란 나비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달리는 노란 나비

  • 승인 2023-10-12 16:37
  • 신문게재 2023-10-13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대전원명학교 교사 배미란
배미란 대전원명학교 교사
매년 3월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고 새로운 학생들의 담임을 맡게 되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큰 과제가 있으니 바로 학생별 등·하교 방법 및 통학버스 호수 외우기다. 많으면 6명, 적으면 4~5명인 학생들 수가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에 따라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데 희한하게 등하교 시간에는 학생 수가 배로 늘어나는 기분이다. 오전엔 자가, 오후엔 버스, 요일에 따라 월, 화는 1호, 수·목·금은 5호, 방과 후나 치료지원 수업에 따라 오전엔 학교 버스, 오후엔 활동 보조 등 학생 스스로 등·하교가 어려운 우리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과 방법은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그 조합이 어마어마하다.

시간 차를 두고 학교 버스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삼삼오오 학교 버스 정류장 이곳저곳에서 사적이거나 혹은 업무 이야기에 몰두하던 교사와 특수교육실무원들은 자신들이 담당하는 학생들이 타고 있는 차인지를 확인한 후 차가 서기가 무섭게 문 앞에서 이름을 외쳐댄다. "김00 내려주세요" "00야~~빨리 내려"

통학버스 지원인력 교사의 손에 이끌려 버스에서 내리는 학생들의 모습 또한 잠에 취해 비틀거리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차 안에서 양말은 벗어 던지고 맨발로 뛰어 내려오는 녀석, 기분이 좋아 버스 계단부터 두 발로 뛰어 내려오는가 하면 반대로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눈물범벅이 되어 끌려 내려 오는 녀석, 버스 안에서 바지에 실례를 하고 엉거주춤 내려오는 녀석들까지 천태만상이 아닐 수 없으며 일반학교 교사들은 결코 경험하지 못할 진풍경들이 매일 펼쳐진다. 교사나 특수교육실무원들은 그 아침 버스에서 내리는 학생들의 찰나처럼 지나가는 표정과 분위기로 그날 하루의 승패를 예감하기도 한다.

정확히 몇 살 언제쯤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릴 적 도로를 달리던 노란색 택시를 보면서 "왜 노란색이지?"라는 질문에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아마 노란색이 승객들 눈에 잘 띌 뿐 아니라 사고 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나중에는 생각했으나, 어쨌든 행운의 표시라는 그 과학적이지 않은 정보는 과학보다 더 진지하게 노란색에 대한 기호성을 가지게 해주었고 노란 나비는 내가 살아가면서 간절한 것을 원하고 소망할 때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내 대학 시절인 80년대 특수교육학과 학생들은 지금 돌이켜보면 참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온 학생들이 많았다. 가톨릭 사제가 되려다 입학한 사람, 가족 중 장애 형제가 있어 들어온 사람,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겠다 다짐한 사람 등 첫 수업 자기소개 시간은 마치 인간극장을 방불케 했으니, 그저 같은 동네에 살던 언니가 특수교육학과 나와 선생 한다니 너도 가라고 엄마가 등 떠밀어 들어온 나 같은 학생은 차마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대학 4년 내내 특수교육 언저리 어디쯤에서 맴맴 돌며 열심히 발을 담그지 못했고 졸업 후 한동안은 특수교육이 아닌 다른 일을 하겠다고 무던히도 긴 길을 돌고 돌고 돌았던 것 같다. 늘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을 지도하는 특수교사로 유념하는 부분은 '특수교육은 일반 교육과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였다. 그 다름과 같음을 일일이 예를 들어 표현할 수는 없으나, 같은 잣대가 적절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다른 잣대가 합리적이지 않을 때도 있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오후 2시 50분 노선에 맞는 버스인지를 확인해 학생들을 탑승시키고 나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건네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낸 것에 축하를 나누게 된다. 노란 통학버스를 타고 몇 년 간 학교를 오가던 학생들 중에는 다행히 사회에 나가 작은 역할이나마 하며 살아가는 이도 있고, 더러는 복지시설에 또 더러는 가정에서 어두운 나머지 삶을 살아가는 이도 있다. 늘 내게 행운의 상징이었던 노란 나비, 그 노란 나비를 닮은 통학버스 안에 우리 아이들도 자신이 가진 부족을 편견 없이 이해받으며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소외 받지 않고 살아가길 바라는 그 오랜 소망이 이뤄지길 꿈꿔본다. /배미란 대전원명학교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