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이슈현장] 1960년 대전고 교지에 담긴 '3·8민주의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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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이슈현장] 1960년 대전고 교지에 담긴 '3·8민주의거' 현장

1960년 9월 대전고 교지 '한모' 제10호 학생 수기 조명
대전고 학생들의 데모 계획, 현장 상황 등 생생히 기록

  • 승인 2024-03-07 17:01
  • 수정 2024-03-07 20:37
  • 신문게재 2024-03-08 8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1 한모 제4호
1960년 3월 8일. 대전에서는 고등학생들이 거리에 나와 자유와 민주를 외쳤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맞서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이들의 격렬한 몸부림이었다. 당시 대전고를 시작으로 대전상업고 등 대전 지역 고등학교들이 연대해 총 1600여 명의 학생들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주도적으로 나섰다. 이것이 대전에서 최초로 일어난 학생운동인 '3·8 민주의거'다.

1960년 9월 25일에 발행된 대전고 교지 '한모' 제10호에는 대전고 학생들의 일으켰던 3·8 데모기가 담겨 있다. 당시 대전고 교지 편집부는 데모에 참여했던 학생의 수기를 교지에 실었다. 올해 하반기 '3·8 민주의거기념관' 개관을 앞둔 대전시는 최근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졸업생으로부터 교지 자료를 기증받았다. 당시 교지에 실렸던 생생한 학생 수기 통해 대전의 3·8 민주의거를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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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고등학교 교지 <한모> 제10호 중 3·8데모기 학생 수기 수록 모습 (사진=대전시 제공)
◆데모의 시작

3·15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불신은 커져만 갔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12년간 장기집권을 하고 있던 상황.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자유당 소속인 이승만이 단독 후보가 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자유당은 부통령으로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부정선거활동을 이어갔다. 이때 대전에서 학생 데모가 촉발된 계기가 있었으니, 3월 8일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민주당 장면 부통령 후보의 선거연설회 참여를 저지하면서다.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대전고 학생들은 3월 7일 데모를 결심했다. 수기에는 10여 명의 학생들이 데모를 계획한 당시 상황이 자세히 적혀있다.

'도서실 뒤로 가보니, 십여 명의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방금까지 교장관사에 있었는데 내일의 모당의 정견발표회에 한 사람도 참가하지 말라는 지시기 내렸다는 것이었다'

'학생도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이다. 다만 선거권이 부여되지 않았을 따름이다…오늘의 사회가 이럴진대, 절규하자, 외치자, 자유와 정의를 위하여, 썩어빠진 기성세대에 대하여 참다운 각성을 촉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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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전시 제공
◆격분의 하루

3월 8일 데모를 준비한 학생들은 비장한 각오로 등교를 했다. 데모를 하는 것을 학교에 절대 들키면 안 되는 상황. 각 반의 반장들은 도서실 뒤에서 몰래 회합을 가졌다. 만반의 태세를 갖춘 다음 5교시 끝나는 벨소리와 함께 대운동장에 집합하기로 했다.

시위 코스는 선거연설회가 열리는 공설운동장 앞길을 통과해 인동 시장, 역전 광장에 집합 후 결의문을 낭독한 뒤 도청까지 와서 도지사에게 결의문 전달한 후 학교로 돌아오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일은 처음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학교 주변에는 수상한 사람들이 서성였고, 날카로운 감시의 눈길이 학생들을 죄어왔다.

'그날따라 학생과장 Y 선생님의 각반 순찰이 잦았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2교시 수업이 한창일 때 대표 학생들이 하나씩 둘씩 호출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송아지와 같이 인솔 선생님의 뒤를 따라 교장관사로 불려갔다. 거기서 교장 선생님의 간곡한 만류의 말씀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이대로 더 이상 인내를 요구한다는 건 관권에 대한 무조건 굴복을 의미하는 것이외다…이 썩어진 현실을 보고 어찌 방관만 일삼을 수 있단 말입니까?'

교사들의 만류에도 학생들은 데모를 위해 학교 담장을 뛰어넘었다. 이날 1000여 명의 대전고 학생들이 5교시 수업을 마치자 교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학교를 박차고 나온 학생들은 준비한 결의문을 낭독했다. 외부 세력의 침투 방지, 교내의 선거운동 배격, 서울신문 강제구독 사절, 학원의 자유, 자주성 유지, 학생의 언론 탄압 반대를 외쳤다.

'C 군은 어느 틈에 단상으로 올라가 "거리로 나가자-"는 외마디 고함을 질렀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와-와-" 성난 함성을 올리면서 노도처럼 밀려가는 것이었다. 교사 사이 사이를 지나고, 곳곳에서 만류하는 선생님들의 손을 뿌리치면서 교문에 다가섰다…Y군의 결의문을 낭독하자 운집한 학생들의 흥분은 하늘을 무너뜨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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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전시 제공
학생들이 데모 장소인 공설운동장 앞에 다다랐을 때 검정 복장의 경찰 수십 명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이때 선두를 달리던 학생들과 경찰의 충돌이 일어났다. 수기에는 당시 시위를 막기 위해 경찰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가한 억압과 폭력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머리, 가슴, 배 할 것 없이 심한 타격을 입고도 학생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동료들이 역전 통으로 몰려나오자 시민들은 놀라움과 경탄 속에 말 없는 성원을 보내줬다고 필자는 서술했다.

'그것을 발로 차고, 짓밟고 목덜미를 매몰스럽게 휘어잡고 인근 파출소로 마구 잡아갔다… 경비선을 뚫으려던 L군이 머리에 총개 머리의 세례를 받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주력부대의 힘이 완전히 좌절되었고 뒤따르던 대원들은 논바닥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애국가를 부르면서 행진을 계속하였다. 중교에 이르자 힘찬 구호가 전 시내를 울리었다'

'목척교에 이르러 최후로 큰 충돌이 전개되었다… 한 대원이 얻어맞고 쓰러지자 달려들어 연행하려 하였다. 이것을 본 우리는 "저놈 죽여라"하며 공세를 취하였다. 아무리 맨주먹이기로 얻어맞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수십개의 돌맹이가 백차를 향하여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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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전시 제공
◆꺾이지 않는 3·8정신

좁혀오는 포위망에 결국 학생들은 연행됐다. 취조실에서 되풀이 되는 유도 심문에도 이들은 조국에 대한 사랑과 정의감에서 나온 행동임을 분명히 밝혔다. 학생들은 저녁이 돼서 석방됐으나, 주모자였던 10여 명은 새벽까지 풀려나지 못했다. 동료들은 간부가 경찰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고 서술돼 있다.

'그들은 7시경에 대부분의 학생을 석방시켰다고 말했으나 대대 간부들 소위 주모자란 10여 명에 대해서는 밤이 깊도록 석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간부가 경찰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안 데모 대원들은 간부의 석방을 요구하며 차디찬 농구장에 앉아 있었고 교장 선생님께서는 곡 석방할 것으로 책임지시겠다 하며 해산 귀가할 것을 명했다'

이날 데모는 실패로 끝났지만, 앳된 학생들의 용기는 역사에 남아 계승해야 할 정신으로 남았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그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을 때 그 선두에 나서서 구국운동을 할 자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피 끓는 정열의 소유자, 즉 청소년밖에 없다… 우리의 데모를 기점으로 하여 전국 방방곡곡에서 연쇄반응적으로 백만 학도가 총궐기할 날이 올 것이다.'

한편 대전시는 올해 9월 중구 선화동에 3.8민주의거 기념관을 개관할 계획이다. 기념관에는 3.8민주의거 배경과 시위 과정, 역사적 의의, 당시 전국 학생 운동 상황 등에 대한 수집 자료 전시, 교육 등 3.8민주의거를 알릴 다양한 콘텐츠들이 담길 예정이다.


정바름 기자 niya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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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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