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초대석] 문현미 백석문화예술관장 "'시'를 읽고, 세상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 전국
  • 천안시

[중도초대석] 문현미 백석문화예술관장 "'시'를 읽고, 세상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 승인 2024-04-08 15:38
  • 수정 2024-04-08 16:45
  • 신문게재 2024-04-09 9면
  • 김한준 기자김한준 기자
KakaoTalk_20240402_173713745
문현미 관장이 중도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백석대학교 내에 조성된 보리생명미술관, 山史현대시100년관, 기독교박물관 등은 기독교의 역사는 물론, 유명 화백들이 기증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세 곳은 백석문화예술관으로 묶여 불린다.

치열한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제공하고,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힐링 공간이다.

중도일보는 아름답게 꾸며진 공간을 총괄하는 시인이자 교육자인 문현미 백석문화예술관장을 만나 그가 걸어온 길과 박물관, 미술관 등의 탄생 배경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독일 생활을 경험한 이유는.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이어오다가 남편과 함께 독일로 유학을 결정하게 됐다.

남편의 내조를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이 따라간 독일 아헨이라고 하는 지역은 유럽 최고의 공과대학이 있다.

나 역시 아헨 공과대학교에서 한독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3년간 한국어학과 교수로 지냈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내게 된 사연은.

▲유학생활을 하다 보니 한국에서 한국 문학을 전공하고, 독일에 와서 한독 비교문학을 하는 독특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됐다.

그러다가 한 교수님과 인연이 닿아서 박사 논문 쓰면서 독일 본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게 됐다.

정성껏 강의하는 모습이 독일 학생들에게 감동을 많이 줬는지 학생들이 학기를 마치면 돈을 모아 식사 대접을 했다는 일화가 입소문이 났다.

그 소식을 들은 당시 총장이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며 칭찬하기도 했다.

이후 박사학위 받고 잠깐 한국에 돌아온 사이 시간강사로 일했던 독일 본대학교 한국어학과에서 교수를 뽑는다고 해서 근무하게 됐다.

KakaoTalk_20240402_173720460
문현미 관장이 기독교박물관 입구에 놓인 '천지창조'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현재 백석대 교수로 재직 중이신데.

▲독일에서 혼자 남아 생활하다 보니 가족이 그립고 외로워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1999년 당시 천안대학교(현 백석대)에서 국어국문학과가 신설학과로 모집하는 인원이 많아 지원하게 됐다.

운이 좋게도 최종 합격하게 돼 가족과 함께할 수 있게 됐고, 올해로 25년째 근무하는 중이다.



-근무하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나.

▲입학관리처에서 8년간 새벽부터 밤까지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백석대학교는 기독교 학교다 보니까 미션계 고등학교 40~50개를 정리해서 아침 예배 인도를 맡아서 진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침 4시쯤 일어나 준비하고, 설교를 가장 잘하는 목사, 특송을 가장 잘하는 교수, 직원들과 함께 한 팀으로 움직였다.

예배 인도를 온전히 마치고 난 뒤 마지막 5분이라는 한정적인 시간 동안 대학에 대해 홍보하는 점이 참 힘들었다.

정말 쉽지는 않았는데 모든 걸 감사함으로 생각하고 하니까, 나에게 내려진 소중한 임무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지냈다.

특히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태원고등학교에서 267명의 학생을 백석대에 보내준 사례도 있다.



-10번째 시집을 냈는데.

▲유성호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장이 내 작품에 '간결한 서정시의 전형적인 범례다'라는 평론을 내렸다.

군더더기가 일절 없는 깔끔한 서정시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평했는데 과찬인 것 같다.

이 작품은 '서대문 형무소'를 주제로 하는 연작시다.

남녀 시인 통틀어서 서대문 형무소를 주제로 해서 연작시 쓴 경우는 없다고 들었다.

12년간 외국에서 생활하다 돌아와서 백석대 국어국문학과 학생들하고 서대문 형무소를 관람한 적이 있다.

그 역사의 현장을 보는 순간 얼어붙었다.

수많은 독립투사의 고통이 물밀 듯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당시 주변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 들어 한참 앉아 있다가 나왔다.

그렇게 한 몇 개월은 서대문 형무소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떠나질 않아 시를 쓰지 못했다.

몇 개월 후에 진짜 몇 방울의 진액처럼, 가슴에서 소용돌이가 치면서 글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서대문 형무소는 우리나라 현대 시사에 누구도 언급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알고 있다.

KakaoTalk_20240402_173730043
문현미 관장이 유관순 열사의 유일한 유품인 '삼색 뜨개모자'를 설명하고 있다.
-山史현대시100년관을 소개해 달라.

▲2013년 개관한 국내 유일무이한 시 관련 전문 문학관이다.

윤문영 화가가 그린 시인들의 초상화와 대표 시가 전시돼있고,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 김소월의 '진달래꽃', 김동환의 '국경의밤' 등 현대 시사에서 희귀한 시집들을 소유하고 있다.

아울러 박목월, 조병화 등 시인들의 시와 김환기, 김점선 등의 화가들의 그림을 함께 전시해 시화일률(詩畵一律)을 선보인다.

시의 숲이라는 공간에서는 주요 시인들이 직접 낭독하는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원고지로 된 벽에 직접 시를 써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즉 시를 읽고, 시를 듣고, 시를 마음으로 담아가는 곳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山史현대시100년관에 시집 등을 기증한 山史 김재홍 교수는 생전 어떤 분이셨는지.

▲산사 김재홍 교수는 시인보다 더 시를 사랑한 인물이다.

정말 시를 사랑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청계천에 배를 곯아가면서 오래된 시집 약 1만6000점을 사 모았다고 들었다.

김 교수가 시집을 기증할 때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모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당시 나에게 '수많은 사람이 시를 통해서 세상이 따뜻해지고 살만한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고 대학 기증을 선택했다.

백석대 설립자인 장종현 총장이 이러한 자료들이 귀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전폭적으로 응원을 해줘 山史현대시100년관이 오픈할 수 있게 됐다.



-보리생명미술관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

▲2017년 '생명의 씨앗'의 상징성을 담아낸 松溪 박영대 화가의 작품 기증으로 설립된 미술관이다.

보리의 생명성을 모티브로 한 작품의 주제와 사람을 변화시키는 영적 생명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백석학원 설립 취지와 일치하는 부분이다.

미술관 관람의 핵심은 '보리'라는 소재로 사실적인 묘사로 표현해낸 초기작부터 반추상의 과정을 거쳐 완연한 추상으로 완성되는 화풍이다.

한국화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재료들을 활용한 최근작 '태소, 2022'에 이르기까지 회화 장르의 한계를 넘나드는 화가의 내면세계를 통해 강인한 보리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KakaoTalk_20240402_173738677
문현미 관장이 보리생명미술관의 예술성을 얘기하고 있다.
-보리작가로 유명한 박영대 화가와는 어떤 인연인가.

▲2016년 보리 작가 박영대 화백의 미술 전시를 보러 갔는데 난생처음으로 그림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비싼 가격에 큰 작품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제일 작았던 작품을 구매했다.

인생에 처음으로 그림을 구매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와중에 박 화백과 인연이 맺어져 관계가 형성됐다.

어느 날 화백이 그림 하나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감사한 마음에 학교에서 10일간 특별전을 열었던 적이 있다.

백석대학교는 학생과 교직원 모두 '사랑합니다'라고 인사를 나눈다.

박 화백은 전시회에서 학생들에게 직접 작품을 설명해주곤 했는데, 모르는 학생들이 '사랑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던 점이 충격을 받았는지 100호 이상 대작 137점을 기부해 지금의 미술관이 탄생할 수 있게 됐다.



-정창기 화가도 작품 기증을 했다는데.

▲매일 아침에 조용한 시간과 장소에서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큐티(quiet time)를 한다.

어느 날 큐티를 끝나고 난 뒤에 수많은 시집과 잡지 중 펼친 페이지에서 정창기 화백의 작품이 나온 페이지가 펼쳐졌다.

타이틀이 '시를 가장 사랑하는 화가 정창기'라고 작품과 소개가 돼 있는데 쭉 읽어보니 백석대학교와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면식도 없는데 연락했더니, 현대시100년관 10주년에 작품전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례하다고 느낄 수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정 화백은 좋은 작품만 골라 200여점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서 놀랐다.

그는 1970년대 초반 백마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귀국 후 고엽제 후유증으로 만성 통증에 시달리다가 유일하게 서예와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KakaoTalk_20240402_173743616
문현미 관장이 '황맥'과 '청맥'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마지막 한 말씀은.

▲이제 남은 생애 동안에 하나님이 준 시를 쓰는 달란트를 가지고 한 편의 시로 사람을 울릴 수 있게 하고 싶다.

강퍅해진 이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이 좀 따뜻하고 부드러워져서 옆에 울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울음을 닦아주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 따뜻하고 품어주는 세상이 되는 데에 내 시가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대담=김한준 천안본부장, 글· 사진=하재원·정철희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진숙 교육장관 후보자 첫 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지방대와 동반성장"
  2. '개원 53년' 조강희 충남대병원장 "암 중심의 현대화 병원 준비할 것"
  3. 법원, '초등생 살인' 명재완 정신감정 신청 인용…"신중한 심리 필요"
  4. 33도 폭염에 논산서 60대 길 걷다 쓰러져…연일 온열질환 '주의'
  5. 세종시 이응패스 가입률 주춤...'1만 패스' 나오나
  1. 필수의료 공백 대응 '포괄2차종합병원' 충청권 22곳 선정
  2. 폭력예방 및 권리보장 위한 협약 체결
  3. 임채성 세종시의장, 지역신문의 날 ‘의정대상’ 수상
  4. 건물 흔들림 대전가원학교, 결국 여름방학 조기 돌입
  5. (사)한국청소년육성연맹, 관저종합사회복지관에 후원물품 전달식

헤드라인 뉴스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이재명 정부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수야권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충청권에서만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행정수도 완성 역행과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통행식 추진되는 해수부 이전에 대해 비(非) 충청권에서도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원내 2당인 국민의힘이 이 같은 이유로 전재수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향후 정치 일정에서 해수부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이번 논란이 중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전북 익산 출신 국민의힘 조배숙..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이재명 정부가 민생 회복을 위해 지급키로 한 소비쿠폰이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이로써 충청권 시도의 지방비 매칭 부담이 사라지면서 행정당국의 열악한 재정 여건이 다소 숨통을 틀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일 전체회의를 열어 13조2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행안위는 이날 2조9143억550만원을 증액한 2025년도 행정안전부 추경안을 처리했다. 행안위는 소비쿠폰 발행 예산에서 중앙정부가 10조3000억원, 지방정부가 2조9000억원을 부담하도록 한 정부 원안에서 지방정..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과 충남의 스타트업들이 정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대거 선정되며, 딥테크 기술창업 거점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1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25년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전국 197개 기업 중 대전·충남에선 3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전체의 16.8%에 달하는 수치로, 6곳 중 1곳이 대전·충남에서 배출된 셈이다. 특히 대전지역에서는 27개 기업이 선정되며, 서울·경기에 이어 비수도권 중 최다를 기록했다. 대전은 2023년 해당 프로젝트 시행 이래 누적 선정 기업 수 기준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