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한글과 불경 언해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한글과 불경 언해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24-06-09 09:01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백낙천 교수
백낙천 교수
한글과 불교가 오랫동안 매우 긴밀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가령, 한글 창제 이후 석가의 일대기를 서술한 <석보상절>은 최초의 한글 산문 문헌으로서의 의의를 지니며, <석보상절>이 완성되자 세종은 직접 장편의 불교 서사시이자 찬불가라고 할 수 있는 <월인천강지곡>을 창작할 정도로 한글의 보급에 불교가 끼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이들 한글 문헌을 통해 한글은 그 진가를 여실히 발휘하여 바야흐로 한글 문헌의 서막을 열게 되었다. 더욱이 1461년에 간경도감을 설치한 후 조직과 체계를 갖추고 본격적으로 불경의 한글 번역이 이루어졌으니 한글 창제 초기에 간행된 한글 문헌의 대부분이 불교 관련 문헌일 정도로 그 비중이 매우 높았다. 더욱이 대부분이 왕실과 국가 기관에서 주관해서 편찬하다 보니 정교한 목활자를 사용하고 당대 최고의 명필과 각수들이 총동원될 수 있어서 당시의 발달된 인쇄 문화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간행된 문헌들이 오늘날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의 자격을 지니게 된 것도 그러한 연유이다.

한편, 중국어 또는 한문 원전을 한글로 옮긴 문헌을 가리켜 언해서라고 하는데, 15세기에는 주로 중앙에서 언해서가 간행되었고 16세기부터는 지방에서도 다량의 언해서가 간행되었다. 이러한 언해서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불경 언해서이며, 이를 통해 한글의 보급과 확산이 급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물론 불경 언해서의 간행은 조선의 치국 이념인 숭유(崇儒)와 억불(抑佛)에 배치되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경을 언해의 주된 대상으로 삼은 것은 불교의 대중화에 초점이 있었다기보다는 왕실의 뿌리 깊은 불심에 기대어 한글을 널리 펴려는 의도와 왕권의 권위를 확립하려는 의지와 계획이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가령, 간경도감이 세조의 명으로 설치되면서 불경 언해의 간행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서 <능엄경언해>는 세조가 직접 구결을 달고 한계희, 김수온 등이 혜각존자 신미의 도움을 받아 번역하였으며, 뒤이어 <법화경언해>도 간행하였다. 그 외에도 세조가 직접 구결을 달고 신미 등이 번역한 <선종영가집언해>, 세조가 번역한 <아미타경언해>, 세조가 구결을 달고 한계희 등이 번역한 <금강경언해>, 세조가 구결을 달고 신미, 효령대군, 한계희 등이 번역한 <원각경언해> 외에 <반야심경언해>, <사법어언해>, <목우자수심결언해> 등 모두 9종의 불경 언해서가 간경도감에서 간행되었다.

1471년에 간경도감이 폐지된 이후에도 불경 언해서는 왕실 재정의 관리를 위해 설치된 내수사에서 간행이 되거나 왕실 여성인 대비나 왕비들이 주도하여 이루어졌으니, 왕실의 시주를 받아 고승 학조가 <관음보살주경>을 편찬하고, 세조비 정희왕후의 명으로 <금강경삼가해>가 간행되고, 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의 명으로 학조가 <육조법보단경언해>를 중앙에서 간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16세기부터는 지방에서도 다량의 불경 언해서가 간행되었는데, 합천 봉서사에서 <목우자수심결언해>의 중간본 간행을 필두로 경상도 장수사에서 <영가집언해>, 전라도 완주에서는 <부모은중경언해> 등이 복각되어 간행되었다. 물론 지방에서 간행된 불경 언해서는 오각과 탈각이 많다 보니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원간본의 인쇄 및 지질(紙質)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 불경 언해서가 한글의 보급과 확산에 끼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았다.

한편, 임진왜란으로 많은 한글 문헌들이 소실되다 보니 17세기에는 교정청을 설치하였으며, 전란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바로 잡기 위해 교화서로서 <동국신속삼강행실도> 등 유교 경전의 언해가 대대적으로 진행되었고, 한편으로는 일상생활의 실용을 위해 <언해태산집요> 등 의학서나 <노걸대언해> 등의 외국어 학습서의 간행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조선 후기에는 방각본 한글 소설이 등장하고 천주교 서적의 번역과 한글 성경의 간행으로 한글의 보급이 가속화되고 한글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한글은 본격적으로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으니 이로써 한글 창제 및 한글의 보급과 확산 과정에서 불경 언해의 역할이 상당히 컸음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도마 퀸’ 여서정, 금빛 질주 이어간다.
  2. 국군의날 기념행사를 '국민과 함께' 원년되나
  3. 예산장터 삼국축제 10주년…'린' 소주 20만 병에 축제 홍보
  4. 서산해미읍성, 600년 시간의 문 활짝, "서산의 맛과 사람들 한자리에"
  5. 아산시, 신동 곡교천로 진입도로 개통
  1. 상용화 문턱에서 좌절 '자기부상열차' 역사속으로
  2. [춘하추동] 콜레스테롤은 억울하다?
  3. 건양대목원대 등 충청권4개 대학, AI중심대학 선정
  4. 승용차가 지상 개폐기 들이받고 운전자 도주...일대 2시간여 정전
  5. 통합 무산 충남대 ‘다음 수’ 찾기 고심

헤드라인 뉴스


"30년 시민혈세 따져보자"…대전시민사회, 수소트램 재검토 촉구

"30년 시민혈세 따져보자"…대전시민사회, 수소트램 재검토 촉구

대전시가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급전방식 변경을 고심 중인 가운데, 지역 시민사회가 현행 방식인 '수소트램'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현행 수소트램의 선정 과정과 장기 운영비, 2030년 개통 가능성까지 시에 전면적인 검증을 요구했다.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30일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의 세금으로 30년을 감당할 사업이라면 그 결정의 근거도 시민 앞에 놓여야 한다"며 수소트램 선정과 차량계약 과정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를 대전시에 요구했다. 이날 시민사회가 우선 문제로 꼽은 것은 민선 8기..

대전시청 선수들 아시안게임 금 4개 합작 금의환향… 오상욱은 2관왕
대전시청 선수들 아시안게임 금 4개 합작 금의환향… 오상욱은 2관왕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4개를 합작한 대전시청 소속 선수들이 금의환향했다. 30일 대전시에 따르면 펜싱 오상욱·박상원·최세빈과 근대5종 이종현이 이번 대회에서 잇따라 메달을 획득했다. 오상욱은 남자 사브르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며 대회 2관왕에 올랐다. 박상원도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오상욱과 함께 정상에 올랐고, 최세빈은 여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근대5종 이종현은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개인전에서도 동메달을 추가했다. 대전시청 소속 선수들은 이번 대회에서 금..

초고령화로 농협 조합원 10명 중 8명은 60세 이상… `기반 흔들`
초고령화로 농협 조합원 10명 중 8명은 60세 이상… '기반 흔들'

초고령화에 따라 농업협동조합 조합원 10명 중 8명은 6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신규 가입 조합원 역시 40대 미만은 7%대에 불과해 농협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민의힘 강승규 의원(충남 홍성·예산)이 농협중앙회의 조합원 현황을 분석해 30일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8월 기준 농협 조합원은 모두 202만 8464명으로 집계됐다. 2021년 208만 7359명에서 2022년 207만 6055명, 2023년 206만 3765명, 2024년 204만 6229명, 2025년 202만 7481명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안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바뀐 무궁화호 안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바뀐 무궁화호

  • ‘대전시는 수소트램 원점 재검토하라’ ‘대전시는 수소트램 원점 재검토하라’

  • 금빛으로 빛난 대전의 영웅들 금빛으로 빛난 대전의 영웅들

  • ‘나이는 숫자일 뿐’ ‘나이는 숫자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