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파리, 베르사유 궁전, 그리고 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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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파리, 베르사유 궁전, 그리고 륄리

오지희 음악평론가

  • 승인 2024-07-15 13:41
  • 신문게재 2024-07-16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오지희 음악평론가
오지희 음악평론가
제33회 올림픽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7월 26일~8월 11일, 한여름 전 세계 사람들 이목을 끌 지구촌 잔치이며 파리를 중심으로 16개 도시에서 개최하는 프랑스 전역의 축제이기도 하다. 100년 만에 다시 파리에서 개최하는 자랑스러운 상황 너머엔 실상 불편함을 감수하며 거대한 이벤트를 무사히 치러내야 하는 현지인들의 감정도 보인다. 겉으로 비치는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렇다 해도 파리는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 부정할 수 없는 예술의 도시다. 과거 프랑스의 찬란한 영광을 가장 잘 보여주는 누구나 꼭 한번 가고 싶은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더구나 베르사유 궁전에서 승마경기가 열리고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지은 그랑 팔레에서 펜싱과 태권도를 하는 등, 경기를 보며 눈으로 호사를 누리는 문화 올림픽이 특별히 기대된다.

그 유명한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상징물이다. 베르사유 궁전을 만든 절대 권력은 루이 14세였고 왕과 같은 막대한 권한을 휘두른 음악가는 륄리였다. 장 밥티스트 륄리(1632~1687)는 이탈리아 출신 음악가로 야심 찬 노력으로 30년간 루이 14세 총애를 받은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왕이 가진 권력을 륄리는 음악에서 똑같이 누리고자 했으며 이는 곧 루이 14세의 절대적인 지지 없이 불가능했다.

베르사유 궁전 역시 잘 조절된 정원과 나무, 조각으로 자연조차 왕에게 복종하는 절대 군주의 모습을 드러낸다. 자칫 태양왕이었던 루이 14세는 태양신 아폴로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는 학문과 예술의 신으로 칭송되는데, 베르사유 궁전 자체가 그리스 고전의 극치를 보여준다. 예컨대 베르사유 궁전 밖엔 태양신 아폴로가 매일 아침 마차를 타고 동쪽 바다에서 하늘을 가로질러 저녁에 서쪽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조각한 샘물이 있다. 루이 14세를 태양신으로 생생히 형상화한 조각이다.



한편 클래식 음악의 주된 발전은 이탈리아가 주도적이었으나 프랑스도 서서히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륄리가 있었다. 륄리는 루이 14세를 태양신으로 드높인 일등 공신이었다. 륄리는 원래 루이 14세 사촌의 프랑스어 가정교사로 파리에 왔다. 음악과 춤을 공부하다 루이 14세 춤 파트너가 된 것이 출세의 기회를 잡은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루이 14세는 13세부터 발레를 시작한 진정 뛰어난 춤꾼이었다. 춤을 통해 귀족들을 통제하고 태양왕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60대 루이 14세의 두 다리를 드러낸 전신 그림에서 왕은 스스로 빼어난 무용수임을 인상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왕이 추는 춤곡을 작곡하고 점차 프랑스 최고의 음악가가 되겠다는 륄리의 야망은 이탈리아 이름 룰리를 프랑스식 륄리로 바꾸고, 프랑스 유력 작곡가 딸과 결혼해 프랑스 시민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륄리는 프랑스 궁정 기악음악 작곡가로 활동하며 음악감독이 됐고 현대 오케스트라 기초가 되는 현악기 활쓰기 주법을 통일했다. 또한 일사불란한 음색을 만들고 지휘봉으로 최초로 지팡이를 사용함으로써 오케스트라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했다. 륄리의 음악은 오로지 왕의 영광을 위해 존재했다. 17세기 프랑스에서 왕은 예술을 정치적 선전도구와 사회 통제 수단으로 활용했고 륄리는 충직하게 수행했다.

마침내 기악음악을 평정한 륄리는 프랑스식 오페라 제작으로 관심을 돌렸다. 본디 프랑스는 시와 연극의 전통이 강해 이탈리아 오페라가 자리잡기 힘들었다. 루이 14세는 륄리에게 오페라 제작 전권을 부여했다. 륄리는 왕을 찬미하는 웅장한 서곡을 작곡했고 결과적으로 이탈리아 오페라와 구별되는 프랑스만의 독창적인 오페라를 개발했다.

다른 나라 군주들은 베르사유 궁전을 부러워했으며 륄리와 같은 충성스러운 음악가를 갖고 싶어 했다. 절대 권력을 가진 루이 14세와 음악 권력을 가진 음악가 륄리가 거울을 마주 보듯 존재했던 그 시절, 파리는 이 모든 예술의 본거지였다. 그런 파리에서, 베르사유 궁전에서 올림픽 경기가 펼쳐진다니 예술적으로 참 멋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지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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