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헤세의 마음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 헤세의 마음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 승인 2024-07-30 16:46
  • 신문게재 2024-07-31 18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clip20240730085817
백향기 회장
수려한 문체, 감성 충만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자연에 대한 묘사, 잔잔한 감동의 줄거리로 인해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중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푹 빠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최근 '크눌프'라는 헤세의 소설이 우연히 손에 잡혀서 읽게 되었다. 공부 잘하고 총명한 소년이었던 크눌프는 어느 날 프란치스카 라는 소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녀에게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고 부모님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카가 싫어하는 라틴어 학교를 그만두고 독일어 학교로 전학하여 기술자나 노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세속적이고 조숙한 프란치스카에게 크눌프는 단지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크눌프는 방랑하는 삶을 살게 된다, 젊은 시절 한순간의 열정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리고 안정된 삶을 꾸리지 못한 채 평생을 떠돌아다니게 된다. 그러나 평생을 방랑자로 살아간다고 해서 크눌프가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은 아니다. 이 고장 저 고장을 떠돌면서도 친구들이 여전히 곳곳마다 있고, 그를 환대한다. 떠도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는 않는다. 그러나 방랑하는 생활이 세상을 오직 즐겁고 낭만적으로만 살아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이 하나 있지만 만나지 못하고 있고,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이 살아가는 힘겨운 삶의 고난을 함께 아파한다. 모든 것을 초월한 것이 아니고 삶에 힘들어하고 하느님께 불평하기도 하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뇌한다. 결국 폐결핵에 결려 고향으로 가는 길에 만난 의사 친구 마호트는 그를 진정으로 걱정하며 돌보아 주고 고향 마을에 요양병원을 주선해주지만, 그는 결국 산길 모퉁이에서 삶을 마감한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사랑하고 따뜻하게 품는 일과 세상일에 유능하고 안정된 일상을 살아가는 일을 비교하거나 병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유를 갈망하고 일상에 짓눌리지 않으며 하루 하루가 속박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면 행복할 것 같지만 크눌프가 고뇌하듯이 그것이 꼭 매일 매일이 행복하고 삶의 의미가 충만한 일들로만 가득한 상태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크눌프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어요 하고 하느님께 긍정하는 대답을 하고 눈을 감는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크눌프를 생각해 본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현실의 안정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하는 일이기 어렵다. 감성이 자유롭게 떠다니도록 하고, 현실적인 생각에 속박되지 않으며 상상을 펼쳐 나간다는 점에서 정신의 자유로운 방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크눌프가 그렇듯이 떠돌아다니지만 자연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일이며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계속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크눌프가 석공이 된 친구 샤이플레를 만났을 때 총명하고 재능이 많았던 크눌프를 기억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네는 나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그것을 발휘하지 않았단 말이야… 이런 말 한다고 노하지는 말게" 크눌푸는 이렇게 대답한다. "인자하신 하느님은 너는 왜 지방법원 판사가 되지 않았지? 하고 묻지는 않을 걸세, 아마 어린애 같은 녀석이 또 왔구나 하고 말씀하시겠지. 그리고 아이 보는 일 같은 쉬운 일을 맡겨 주실 것일세…." 크눌프와 같이 세상을 자유롭고 거리낌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한다. 더구나 나와 같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크눌프 같은 허허로운 마음을 갖는 것이 더욱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더 욕심을 부리면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확장되어 매일의 일상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헤세는 크눌프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는 전지전능한 자세로 삶과 인간성에 대한 규범을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작가의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그를 사로잡는 것을 묘사할 따름입니다. 크눌프 같은 인물들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그들은 '유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해롭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유용한 인물들보다는 훨씬 덜 해롭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바로잡는 일은 나의 몫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크눌프처럼 재능 있고 영감이 풍부한 사람이 그의 세계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크눌프 뿐만 아니라 그 세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헤르만 헤세, 어느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입+] 종로학원 2026 수능 가채점 정시 분석… 서연고 경영 280점대, 의대는 290점 안팎
  2. 세종시 어린이들의 '가족 사랑' 그림...최종 수상자는
  3. 초록우산 박미애 본부장, '시낭송 상금' 100만 원 기부 귀감
  4. 한남대, 2025 산학프로젝트 챌린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
  5. 건보공단, 미혼 한부모가정 위한 따뜻한 지원 눈길
  1. 충남대, 중국약과대학과 협약…바이오 재료·약학 분야 공동 연구 추진
  2. 세종충남대병원, '당뇨병 예방과 공연' 이벤트..건강한 삶 이끈다
  3. 세종도시교통공사, 저출산·지방소멸 해결 위한 시민 소통 강화
  4. 세종테크노파크, 네트워킹데이 개최...입주기업 성장 돕는다
  5. 대전·세종 수출기업인들 '한 자리에'

헤드라인 뉴스


서연고 경영 280점대… 수도권 의대 285, 비수도권 275점

서연고 경영 280점대… 수도권 의대 285, 비수도권 275점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한 정시 합격선 예측에서 서울 주요 대학의 경영·의학계열 합격선이 280~290점대에서 형성될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는 문과 지원확대와 의대 정원 원복, 탐구영역 선택 변화 등으로 인해 정시 지원전략에서 문·이과 모두 경쟁 양상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종로학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어·수학·탐구(2) 원점수 합 기준으로 서울대 경영대학 합격선이 284점, 연세대·고려대 경영이 280점, 성균관대 글로벌경영이 279점, 서강대 경영학부 268점, 한양대 정책학과..

캡틴 손흥민과 조규성의 합작…한국 대표팀 볼리비아에 2-0 승리
캡틴 손흥민과 조규성의 합작…한국 대표팀 볼리비아에 2-0 승리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캡틴' 손흥민과 조규성의 활약에 힘입어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2-0으로 승리했다. 홍명보 감독은 4-2-3-1 포메이션을 꺼내 들었다. 9월과 10월 A매치에서는 스리백을 시험했지만, 이날은 포백을 통해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했다. 손흥민을 원톱에 세운 뒤 2선에 황희찬과 이재성, 이강인을 배치해 공격 라인을 꾸렸다. 중원조합은 김진규와 원두재를 내보냈고, 포백라인은 이명재, 김태현, 김민재, 김..

대흥동의 `애물단지` 메가시티 건물…인공지능 산업으로 부활하나
대흥동의 '애물단지' 메가시티 건물…인공지능 산업으로 부활하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설립을 앞둔 대전 중구 대흥동의 애물단지인 메가시티 건물이 기피시설이란 우려를 해소하고 새롭게 변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치권에서는 정부 부처 간 협력을 통해 미래 첨단 산업 및 도시재생과의 연계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용갑 의원(대전 중구)은 국회의원회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 관계자를 만나 대전 중구 대흥동에 인공지능 산업 인프라를 조성하기 위한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요청했다고 14일 밝혔다. 대전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메가시티 건물은 2008년 건설사의 부도로 공사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3~4학년부 4강전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3~4학년부 4강전

  •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5~6학년부 예선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5~6학년부 예선

  • ‘수능 끝, 해방이다’ ‘수능 끝, 해방이다’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