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더 큰 재난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더 큰 재난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권선필 목원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

  • 승인 2024-09-04 14:34
  • 신문게재 2024-09-05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권선필 교수
권선필 교수
올해 7월 10일 폭우로 생전 처음 겪는 두 가지 일이 생겼다. 하나는 살고 있는 마을 전체가 침수되어 생전 처음 이재민 생활을 하게 된 일이고, 다른 하나는 평생 건너다니던 유등교가 주저앉아 못 다니게 된 일이다.

시간당 강우량은 60mm로 평년 대비 많은 양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전 처음 겪는 재난상황이 벌어졌다. 우리 마을 수재의 직접적 원인은 제방의 붕괴였다. 유등교 역시 각종 점검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으나 가라앉아 통행을 못하게 되었다. 제방이나 다리는 행정이 관리책임을 지는 가장 중요한 사회기반시설이다. 이러한 기반시설이 무너졌다는 것은 관리 주체인 행정 시스템에 숨겨진 문제가 있다는 분명한 증거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또 다른 재난, 더 큰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재난은 멱함수적 특징을 가진다. 재난의 발생 빈도는 그 강도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통찰을 구체화한 것이 '하인리히 법칙'이다. 윌리엄 하인리히라는 사람이 보험회사에 근무하면서 산업재해 보상 관련 데이터를 통해 발견한 법칙이다. 한 건의 심각한 사고가 발생하려면 그에 앞서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있고, 그 이전에 300건의 알려지지 않은 사고가 있다는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재난에 대해 생각하고 대비하는 데 분명한 통찰을 제공한다.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여러 차례의 작은 사고나 경고 신호가 나타나고, 이러한 작고 단순한 사고를 간과하거나 무시하기 쉽지만, 이게 누적되면 결국 심각한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인리히 법칙을 재난 관리에 적용하면, 예방 조치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경미한 사고나 위험 요소를 조기에 발견하고 대응함으로써, 더 큰 재난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인리히 법칙은 재난 발생 후의 대응에 대해서도 다르게 생각해야 함을 말한다. 재난 발생에 긴급구호나 복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라는 점이다. 작은 사고에서 잠재적 위험 요소를 면밀히 조사함으로써, 유사한 재난의 재발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더 큰 재난에도 대비할 수 있다.

경미한 사고와 잠재적 위험 요소를 무시하지 않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재난 예방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안전한 생활 환경을 구축하고,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우리나라에서 재난이 발생하고 전개되는 사회적 과정에 대한 한 연구를 보면 재난이 발생하면 언론보도가 증가하고, 그에 대응하는 정치의 흐름이 나타나며, 정치적 흐름은 다시 정책대안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재난 발생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는 활동으로 이어진다고 제시하고 있다.(김용균, 한국 재난의 특성과 재난관리).

대규모 재난 이후 언론 보도가 증가하는 것은 안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에 따라 당연하게 나타는 결과라 할 것이고, 이에 대응하여 정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관찰이다. 지역 정치의 흐름은 단체장인 시장과 구청장과 지역을 대변하는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의 활동을 말한다. 단체장은 신속한 수습과 개선 대책 마련을 지시하고, 의원들은 원인 규명이나 개선대책 촉구 등을 통해 제도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이렇게 정치적 흐름이 나타나야, 행정과 전문가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대안의 흐름이 나타나게 된다.

실제로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보면 유등교 침하나 정뱅이마을 수해에 대해 천여 건이 검색되지만, 일주일 정도가 지나서는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언론을 통해 나타나는 재난에 대한 관심이 정치의 흐름으로 이어져야 제대로된 재난 대응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우리 지역에서는 언론도 정치도 흐름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재난 발생의 빈도와 강도가 더 커지고 있는 현실에 비해, 언론과 정치의 반응은 충분히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재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비관적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권선필 목원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학 교직원 사칭한 납품 주문 사기 발생… 국립한밭대, 유성서에 고발
  2. 대전 중구, 교육 현장과 소통 강화로 지역 교육 발전 모색
  3. [문화 톡] 대전 진잠향교의 기로연(耆老宴) 행사를 찾아서
  4. 대전특수교육수련체험관 마을주민 환영 속 5일 개관… 성북동 방성분교 활용
  5. 단풍철 맞아 장태산휴양림 한 달간 교통대책 추진
  1. "함께 땀 흘린 하루, 농촌에 희망을 심다"
  2. 대전도시공사,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표창’ 수상
  3. 대전 대덕구, 자살률 '뚜렷한 개선'
  4. 대전 서구, 간호직 공무원 역량 강화 교육으로 전문성 강화
  5. 국가인권위 대전사무소, 6일 카이스트에서 인권영화 '침몰 10년, 제로썸' 상영회

헤드라인 뉴스


CTX 민자적격성조사 통과… 충청 광역경제권 본격화

CTX 민자적격성조사 통과… 충청 광역경제권 본격화

대전과 세종, 충북을 통합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대전~세종~충북 광역급행철도(CTX) 사업이 민자적격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 추진이 본격화 됐다. 4일 국토교통부와 대전시에 따르면 비수도권 최초의 광역급행철도인 대전~세종~충북 광역급행철도(CTX) 사업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민자적격성 조사를 통과했다. 민자적격성 조사는 정부가 해당 사업을 민간투자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차다. 이번 통과는 CTX가 경제성과 정책성을 모두 충족했다는 의미로 정부가 민간 자본을 유치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

내포 수년간 방치되던 공터, 초품아로… 충남개발공사 "연말 분양 예정"
내포 수년간 방치되던 공터, 초품아로… 충남개발공사 "연말 분양 예정"

내포신도시 건설 이후 수년간 방치됐던 공터가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로 탈바꿈한다. 아파트 숲 속 허허벌판으로 남겨졌던 곳에 대규모 공사가 시작되면서 인근 주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5일 충남개발공사 등에 따르면 내포 RH-14블럭인 홍성군 홍북읍 신경리 929번지 일원에 'e편한세상 내포 에듀플라츠'를 건설 중이다. 공사를 총괄하는 시행사는 충남개발공사가, 시공사는 DL이앤씨가 맡았다. 총 세대수 727세대인 해당 아파트의 대지면적은 3만 8777.5㎡로 지하 2층~지상25층 규모, 10동이 들어설 예정이다. 세대구..

美 AI 버블 우려 확산에…코스피 올해 두 번째 매도 사이드카 발동
美 AI 버블 우려 확산에…코스피 올해 두 번째 매도 사이드카 발동

연일 신고점을 경신하던 코스피가 5일 인공지능(AI) 고평가 우려와 버블론 확산으로 지수가 크게 떨어지며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이날 한국거래소는 오전 9시 36분 코스피 시장에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올해 4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로 인해 증시가 크게 출렁인 후 올해 두 번째 사이드카다. 오전 10시 30분에는 올해 처음으로 코스닥 매도 사이드카도 발동됐다. 코스피 사이드카는 코스피200선물 지수가 전일 종가 대비 5% 이상 상승 또는 하락해 1분간 지속되는 경우, 코스닥은 코스닥 150선물지수가 6%, 코스닥..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

  • ‘야생동물 주의해 주세요’ ‘야생동물 주의해 주세요’

  • 모습 드러낸 대전 ‘힐링쉼터 시민애뜰’ 모습 드러낸 대전 ‘힐링쉼터 시민애뜰’

  • 돌아온 산불조심기간 돌아온 산불조심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