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귓볼 뚫어요?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귓볼 뚫어요?

유동하 논산경찰서장

  • 승인 2024-11-06 16:52
  • 신문게재 2024-11-07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유동하 충남경찰청 안보수사과장
유동하 논산경찰서장
1999년 6월 충청도의 한 도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A는 한 아파트 상가 내에서 이용원을 운영했는데, 어느 날 같은 상가에 B가 미용실을 열었다. 그래서인지 수입이 줄어들게 되었다. A는 경쟁업체인 B를 공중위생법위반죄로 고발코자 했다. A는 증거를 확보할 목적으로 자신의 사무실에서 C로 하여금 B에게 전화를 걸어 "귓볼을 뚫어 주느냐?"는 용건으로 통화하게 하고 그 내용을 녹음하게 했다.



A의 고발로 B는 수사를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B는 A가 고발한 것과 증거로 B와 C사이의 녹음물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B가 통신비밀보호법위반으로 A를 고소했고, 검사는 A를 공소제기 했다.

만약 이 사건이 필자한테 배당되었다면 어떻게 처리했을까? 아마도 대화 당사자 사이의 녹음이라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 하지만 담당 검사는 기소한 것이었다.



제1심과 제2심 재판부도 소싯적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즉, 양자 간 전화통화에서 한쪽 당사자가 몰래 녹음한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검사는 용단을 내리고 대법원에 상고해 마침내 2003년 파기환송이라는 판결을 받아내고 만다.

대법원은 위 사안을 대화 당사자 사이의 녹음물로 보지 아니했고, 감청의 일환으로 보아 유죄취지의 판결을 한 것이었다. 즉, 전화통화의 당사자가 직접 녹음하면 합법이지만, 타인을 이용하여 녹음하면 불법이라는 것이다.

우리 법제는 대화 당사자 간 녹음은 합법이고, 대화 당사자가 아니면서 녹음하면 위법이라고 한다. 위법한 녹음물에 대해서는 형사상 증거능력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언론 등 외부에 공개하는 것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대화 당사자 일방 녹음이 합법화 취급되고 외부에 공개되어도 형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주변에는 모든 통화를 녹음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직업군은 아예 녹음기능을 활성화시켜 놓기도 한다. 합법적인 녹음물이라 하여 몇 년이 흘러 세상에 공개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일 것이다. 비밀녹음이 합법이라 하여도 언론에 공표되는 것까지 동의한 것은 아니지 아니한가?

우리 헌법은 통신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한때 농으로 했든 또는 진심으로 했던 나의 말들이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지나 세상밖으로 나오는 것은 나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그리고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본다. 상대방 모르게 녹음하는 것을 떳떳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문명국가가 취할 자세는 아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973년부터 대화 당사자 중 일방 비밀녹음을 위법수집증거로 봤다.

X와 Y는 부동산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5억을 주기로 구두합의 했다. 그런데 건물주 X는 세금을 절약하기 위해 공증서에는 매매금액을 4억으로 하고 1억은 현금으로 요구하였고 Y는 이에 동의하였다. Y는 즉석에서 현금 1억을 주면서 차용증 형식의 영수증을 받았다. 차용증은 공증이 끝나면 찢어버리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X는 계약 전과정을 Y몰래 녹음했다.

문제는 Y가 잔금을 지급하면서 1억 원의 차용증을 제시했고, 잔금에서 상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X는 Y를 고소했고 그 증거로 녹음물을 제시하였다. 연방헌법재판소는 그 녹음물은 사적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사익보다 공익이 크다며 녹음물의 증거능력을 배제해 버렸다.

최근 경찰의 수사권이 일부 인정된 후 수사관의 업무가 더 힘들어졌음을 피부로 느낀다. 힘들다고 하여 한탄만 할 수 없다. 검사가 귓볼을 뚫은 것처럼, 젊은 경찰관들이 또 다른 귓볼을 뚫어보면 어떠할까

/유동하 논산경찰서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건양어린이집 원아들, 환우를 위한 힐링음악회
  2. 세종시체육회 '1처 2부 5팀' 조직개편...2026년 혁신 예고
  3. 코레일, 북극항로 개척... 물류망 구축 나서
  4. 대전 신탄진농협, 사랑의 김장김치 나눔행사 진행
  5.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1. [교단만필] 잊지 못할 작은 천사들의 하모니
  2. 충남 김, 글로벌 경쟁력 높인다
  3. 세종시 체육인의 밤, 2026년 작지만 강한 도약 나선다
  4. [아이 키우기 좋은 충남] “경력을 포기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우수기업이 보여준 변화
  5. 대전웰니스병원, 환자가 직접 기획·참여한 '송년음악회' 연다

헤드라인 뉴스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완공 시기가 2030년에도 빠듯한 일정에 놓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재임 기간인 같은 해 6월까지도 쉽지 않아 사실상 '청와대→세종 집무실' 시대 전환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이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세종 집무실의 조속한 완공부터 '행정수도 완성' 공약을 했고, 이를 국정의 핵심 과제로도 채택한 바 있다. 이 같은 건립 현주소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어진동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가진 2026년 행복청의 업무계획 보고회 과정에서 확인됐다. 강주엽 행복청장이 이날 내놓은 업무보고안..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지역구 18명+비례 2명'인 세종특별자치시 의원정수는 적정한가.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19+3' 안으로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구수 증가와 행정수도 위상을 갖춰가고 있으나 의원정수는 2022년 지방선거 기준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16+2'로 적용했다. 이는 세종시특별법 제19조에 적용돼 있고, 정수 확대는 법안 개정을 통해 가능하다. 12일 세종시의회를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명분은 의원 1인당 인구수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인구수는 2018년 29만 4309명, 2022년..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 푸르게 지키는 일에 앞장선 시민과 단체, 기관을 찾아 시상하는 제22회 금강환경대상에서 환경과 시민안전을 새롭게 접목한 지자체부터 저온 플라즈마를 활용한 대청호 녹조 제거 신기술을 선보인 공공기관이 수상 기관에 이름을 올렸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과 중도일보가 공동주최한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2시 중도일보 4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과 신동인 금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정용래 유성구청장, 이명렬 천안시 농업환경국장 등 수상 기관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