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비상 계엄 상황에서의 말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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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비상 계엄 상황에서의 말과 글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 승인 2024-12-17 16:48
  • 신문게재 2024-12-18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김성수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2024년 12월은 비상계엄을 시작으로 여럿 황당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온 국민이 노심초사했던 상황이 계속되면서, 세계에서도 우리를 예의주시했을 것이다. 45년 만의 비상계엄 상황에 심야의 국회 앞에서 공권력에 맞선 국민들의 항의, 대통령(혹은 총리, 여당 대표)의 담화(?)내용, 국회의원과 군인 혹은 경찰 사이의 질의와 답변, 2차에 걸친 탄핵소추 안 표결 상황, 여의도 국회 앞을 가득 메운 국민이 K-팝과 야광 응원봉으로 즐기는 시위 문화, 그 외에도 각종 매체 들에서 홍수 같이 쏟아내는 내용으로 짧지 않은 며칠을 한숨을 쉬기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 정보 홍수의 와중에 독자들이 스쳐 지나갔을 만한 내용 중에 짚어 볼 것이 있어 소개한다. 탄핵받은 대통령의 일본과의 외교 태도와는 별도로 생각하자. 일본 교토에는 도시샤(同志社)라는 대학이 있다.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의 모교이다. 내년 윤동주 시인 사망 80주년을 맞아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 대학 고하라 가쓰히로 총장은 "'죽은 사람에 대한 명예 학위 수여'라는 예외에 대한 논의도 없었던 것은 아니나, 재학 중 옥사한 윤동주 시인을 지켜주지 못함에 대한 마음의 짐"이라는 설명도 붙였다. 도시샤대학은 기독교계 자유로운 학풍의,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명문 사립대로 고풍스러운 이마데가와(今出川) 캠퍼스에는 윤동주의 시비와 함께 정지용('향수'라는 시로 유명한)의 시비도 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일본유학을 했고, 반년 수학했던 도쿄 릿교(立敎)대학으로부터, 평소 동경하고 흠모해 마지않던 선배인 정지용의 모교인 도시샤대학으로 옮긴다. 중학 시절의 윤동주는 정지용 시인의 영향을 노트에 고스란히 기록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윤동주보다 15세 연상인 정지용은 광복된 조국에서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의 서문에서 윤동주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도시샤대학 교정에는 윤동주 시비가 1995년에, 10년 후인 2005년에는 정지용의 시비가 나란히 세워졌다.

정지용 시인은 납북 여부와 사인과 시기가 모호했고 좌익문인으로 오인되어 한때 교과서엔 정X용으로도 표시되었다가, 1988년에서야 해금되었다. 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의 '향수'라는 노래로도 잘 알려진 가사를 쓴 충북 옥천 출신의 당대 최고의 서정시인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되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시를 잘 모르는 필자도 얼핏 솔깃해지는 가사를 쓴 작사가가 궁금했던 기억이 있는 시다. 도시샤대학에 있는 정지용의 시비에는 이 시 '향수'가 아니라 '압천(鴨川)'이 새겨져 있는데, 제목은 쿄토에 있는 강(鴨川, 카모가와)으로 역시 고향에 대한 애틋함이 절절히 묻어난다. 나란히 위치한 윤동주의 시비에는 서시(序詩)가 새겨져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유명한 서시의 시작 구절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라는 대목은 맹자의 군자삼락 중 그 두 번째인 '仰不愧於天'의 오마주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의 30여 편의 시는 평소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던 젊은 윤동주의 사유와 고민이 한껏 묻어 있는 절제된 언어들이다. 이런 과정에서 옛 성현에 대한 윤동주의 오마주가 등장한 것은 아닌지….

시도 글이고 시간을 초월해 남는 것이라, 더욱이 말하듯이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일 텐데, 윤동주가 읊었던, 별 하나에 불러보는 어머니, 보고 싶은 어머니가 꿈에 나온 것처럼 구구절절 마음을 움직이는 詩語도 고도로 사유한 단어들에서 나오는 감동일 것이다. 하물며, 위태로운 국가의 공적 상황을 다루는 말과 문장들에서야 말해 뭣 하겠는가?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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