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불확실성? ‘응원봉’이 치유하다!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불확실성? ‘응원봉’이 치유하다!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25-01-02 15:46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김성현 프리즘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대한민국은 지금 극도의 혼란에 놓여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소요사태 없는 계엄이 발령됐다. 이전의 계엄은 (6.25 전쟁 기간을 제외하고) 여수·순천 사건(1948년), 제주 4·3 사건(1948년), 부산 정치파동(1952년), 4·19 혁명(1960년), 5·16 군사 정변(1961년), 6·3 항쟁(1964), 10월 유신(1972년), 부마 민주항쟁-10·26 사건(1979), 신군부 5·17 내란(1980년) 등 모두 극도의 사회적 불안이나 혼란, 시위, 유혈사태 등이 동반됐다. 그러나 이번 계엄은 무슨 이유로 발령을 했는지 도저히 알 방법이 없다. 여·야의 첨예한 다툼이 있었고 그로 인해 거부권(재의요구권)과 탄핵을 주고받고 있던 상태였다. 국회는 정쟁으로 얼룩져 있고, 대통령은 시정연설에 불참했고, 야당은 예산 삭감으로 맞섰다. 그랬다. 민주주의는 원래 말이 많고 시끄러운 것이다. 너도나도 자신의 주장을 하고, 설득하고, 안되면 싸우고, 그러다가 또 극적 타협이란 용어가 튀어나오고 하는 것이다. 그때도 그랬다. 조금 심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냥 그랬다. 그런데 돌연, 연말을 맞이해 많은 시민이 송년회를 막 마치기 시작할 시간에 계엄이라니. 우리는 총을 든 군인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로 난입하는 광경을 TV를 통해 생중계로 보고야 말았다. 1979년과 1980년으로 이어지는 계엄령을 경험한 기성세대나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간접적으로 계엄을 경험한 젊은 세대나 우리가 받은 충격은 역대급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혼란은 급격한 변화에서 시작돼 '불확실성'에 의해 증폭된다. 불확실성은 완전하지 않거나 알 수 없는 정보를 수반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즉,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명확하게 추정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이런 불확실성은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적 불안감을 증폭하게 된다. 매슬로의 욕구이론에는 안전에 관한 욕구가 있는데, 신체적, 정신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 안정, 질서, 예측 가능성 등을 추구하는 욕구이다. 안전에 관한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다른 어떤 것에서도 만족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불안정성은 이러한 안전에 관한 욕구에 위협을 가하게 된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한 개인에 의해 예측하기 어려운 시점에 갑자기 깨어질 수도 있다는 경험은 마치 항상 단단히 지켜줄 것으로 믿었던 땅이 흔들리는 지진에서 오는 공포와 같다. 이러한 낯설고 갑작스런 감각은 사람들에게 혼란과 불안감을 유발하고,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주어 공포심을 증폭시킨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아니 대한민국 국민은 강하다. 1997년부터 1980년으로 이어진 계엄 상황에서 대학생들은 시위문화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학내 시위는 노동자 시민 등 다양한 계층과 민주화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연대하고 저항했다. 2024년 12·3 내란과 계엄령에도 10대, 20대, 30대 젊은이들이 들꽃처럼 쏟아져 나왔다. 거리는 온통 '응원봉'으로 별처럼 빛났고, 질서 정연했지만 강렬하게 저항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리 안정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번 계엄령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을 구하러 '응원봉'을 들고 나타난 10대, 20대, 30대 젊은 시민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한밤의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차가운 아스팔트도 마다하지 않았다. 1980년 계엄은 총과 최루탄과 백골단의 육모방망이에 화염병을 들었다면, 2024년의 계엄은 총과 장갑차에 '응원봉'을 들고 '다시 만나 세계'를 부르며 맞섰다. 이를 본 어느 외신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나라가 어두울 때 집 안에서 가장 밝은 것을 들고나온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불확실성'을 그들은 '응원봉'으로 치료하고 있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에는 기준점 효과(또는 앵커링 효과)라는 것이 있다. 어떤 시점에 마주한 경험이 이후 인간의 판단이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어떤 큰일을 경험하게 되면 인간은 그 경험을 기준점 삼아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간디가 114세 이후에 사망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가 "간디가 35세 이후에 사망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보다 더 많은 나이를 추측한다는 것이다. 응원봉을 들고 불법적인 계엄에 맞서 계엄 해제를 끌어냈으며, 불법적인 행위에 저항한 경험을 한 젊은이들에게는 이 경험이 기준점이 된다. 이들은 혹시라도 다음에 또 이런 시도를 하는 세력이 있다면 이 경험을 토대로 단호히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설 것이다. 아직 지속하고 있는 이들의 이 강렬한 경험이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등불이 될 것이다. 그들이 들고나올 가장 밝은 것이 될 것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젊은이들은 '응원봉'으로 '불확실성'을 치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불확실성 치유' 자체를 하나의 K-문화로 승화시키고 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정말로 강하다.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4.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