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발주자인가? 도급인인가?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발주자인가? 도급인인가?

신동철 법무법인 유앤아이 변호사

  • 승인 2025-02-09 17:01
  • 수정 2025-02-12 10:39
  • 신문게재 2025-02-10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2024122201001636200066761
신동철 변호사
흔히 발주자와 도급인은 비슷한 의미로 인식된다. 발주의 사전적 의미는 물건을 보내달라고 주문함을 뜻하며(주로 공사나 용역 따위의 큰 규모의 거래에서 일을 맡기는 것에 사용됨), 도급의 사전적 의미도 어떤 일을 완성하여 부탁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하는 계약을 뜻하므로, 그 의미가 일견 비슷하다. 그런데, 최근 발주자와 도급인의 구분이 건설 현장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은 도급인에 대해서 '물건의 제조, 건설 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에 업무를 도급하는 사업자'로 규정하는데, 그 단서에 '다만 건설공사 발주자는 제외한다'고 되어 있으므로 반대해석상 건설공사 발주자는 산안법상 도급인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그에 따른 도급인의 의무도 없다. 즉, 산안법상 건설공사를 맡기는 사람의 법적 지위가 발주자냐 도급인이냐에 따라서 상당한 의무의 차이가 있게 된다.



그런데, 산안법은 누가 건설공사 발주자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아니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결국 건설공사를 도급했는데 만약에 자신이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 관리하면 도급인이 되는 것이고, 단순히 건설 공사를 해 달라 주문했을 뿐이고 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 관리하는 업체는 따로 있다면 그는 도급인이 아니고 건설공사 발주자라고 평가된다. 결국 공사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 관리한다는 것을 무엇으로 판단하느냐가 문제되는데, 이 문제를 다루어 하급심과 대법원이 견해가 갈린 사건이 있어 소개한다.

인천항만공사가 갑문 보수 공사 협력업체 근로자가 작업을 하다가 갑문 밑으로 추락을 해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하여, 1심에서는 인천항만공사를 건설공사 발주자가 아닌 도급인으로 보아 도급인의 안전보건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회사에 대해 벌금형을 그 대표자에 대해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으나, 2심에서는 인천항만공사를 도급인이 아니라 건설공사 발주자로 판단해 무죄 판결을 하였다. 2심은 해당 건설공사의 시공을 직접 수행할 자격이나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그 건설 공사를 다른 사업주에게 도급할 수밖에 없는 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산업법상 '공사의 시공을 주도적으로 총괄·관리하지 않는 자'로 보아 발주자로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작년 말 나온 대법원 판결은 다시 이를 뒤집어 도급인으로 보았다.



대법원은 "개정된 산안법은 도급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한정적으로만 인정하고 의무 위반도 제한적으로 형사처벌 하던 기존 법령에 비해 의무 인정 범위를 확대했다"고 전제하면서, "갑문 유지·관리를 주된 사업 목적으로 하는 인천항만공사는 항만 핵심시설인 갑문의 유지 보수에 관한 전담부서를 두고 있고, 공사의 사업장에서 진행된 갑문 정기보수공사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산업재해 예방과 관련된 위험 요소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며, 갑문 정기보수공사에 관한 높은 전문성을 지닌 도급 사업주로서 수급인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인천항만공사는 건설산업기본법상 건설공사 시공자격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갑문 정기보수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는 자로서 단순한 건설공사발주자를 넘어 수급 사업주와 동일한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중첩적으로 부담하는 산안법상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2020년 개정된 산안법의 시행 이후, 공사 관계자의 법적 책임과 의무 범위의 기준을 제시한 평가받고 있다. 원청사업자가 발주자라는 명목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고, 공사 진행 과정에서 실질적인 관리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한 원청사업자는 도급인으로 간주될 수 있음을 명확히 했다. 공사현장에서의 안전 문제는 이제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중요한 경영 과제로 부각되었다. 원청사업자는 기존의 형식적 관리 체계에서 벗어나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하며, 안전 관리를 단순한 비용이 아닌 기업 신뢰를 위한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신동철 법무법인 유앤아이 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날씨]대전·충남 1~5㎝ 적설 예상…계룡에 대설주의보
  2. 대전시장 도전 許 출판기념회에 與 일부 경쟁자도 눈길
  3.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4.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5.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1.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2. 천안법원, 정지 신호에도 직진해 사망자 유발시킨 30대 중국인 벌금형
  3.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4.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5.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헤드라인 뉴스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김민석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대전시와 충남도 행정통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격 회동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 전 충청권을 찾아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해 긍정적 메시지를 띄운 것과 관련한 후속 조치로 이 사안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총리와 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15일 서울에서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갖는다. 김 총리와 일부 총리실 관계자,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에서 김 총리와 충청권 의원들은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 원도심 재편의 분수령이 될 '대전역 철도입체화 통합개발'이 이번엔 국가계획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초 철도 지하화 선도지구 3곳을 선정한 데 이어, 추가 지하화 노선을 포함한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종합계획' 수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종합계획 반영 여부는 이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당초 국토부는 12월 결과 발표를 예고했으나,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발표 시점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전국 지자체들은 종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