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염선재 순천김씨는 누구인가?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기고] 염선재 순천김씨는 누구인가?

이연우 남서울대학교 특임교수

  • 승인 2025-02-24 14:19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이연우
이연우 남서울대학교 특임교수
조선 사회는 성리학적 사고와 의식이 지배한 엄격한 사회였다. 성리학은 기본적으로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고 현실적으로 계층적 신분제를 인정하면서 명실(名實)이 일치하는 이상사회를 지향했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 사회의 틀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 틀에서 벗어나 고난을 겪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것이 국가에 대한 반역과 같은 특정의 정치적 사건으로 왜곡된 것일 경우 그 피해는 치명적이었고 이를 감내해야 할 고통은 대를 이어 수십, 수백 년이 걸렸다. 염선재(念先齋) 순천김씨(1572~1633) 역시, 그런 고통과 회한을 안고 살았던 사람이다.

염선재는 절재(節齋) 김종서(1383~1453)의 7대 손녀다. 김종서는 세종대에는 '6진'을 개척하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편찬했으며 단종 대에는 수양대군의 정치적 야욕으로부터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어린 단종을 지키려다가 1453년 계유정난으로 반역의 누명을 쓰고 처절한 죽임을 당했다. 이때 그의 직계 3족은 모두 참수되었고 구사일생으로 어린 손자 하나가 살아남아 혈통의 명맥을 유지해 신분을 감추고 숨어 지냈다. 염선재 부인의 친정이 바로 그들이었다.

나이 17세가 되었을 부친 김수언의 뜻대로 염선재는 이미 기호학맥의 적전으로 후일 서인계 산림(山林)의 종장이던 사계(沙溪) 김장생의 계배(繼配)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때 마침 사계는 첫 부인 창녕조씨의 상을 당해 막 3년 상을 끝내고 있던 때였다. 염선재는 그의 조상 절재 김종서의 신원을 회복하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명문대가인 사계 가문에 시집온 것이었다. 2년 후 큰아들 김영을 출산하자 염선재는 이 사실을 사계에게 고백했고 사계는 부인의 비원을 이해하고 명예 회복의 당위성에 공감했다. 그러나 여건이 성숙하지 못해 끝내 조정에 그 뜻을 상주하지 못하고 죽었고 김씨 부인은 이를 한탄하며 단식으로 자진(自盡)해 사계의 뒤를 따라 운명했다.



24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집와 43년 동안 부군을 지성으로 받들었고 슬하에 아들 여섯과 딸 둘을 두었으나 1631년 8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사계 선생의 3년 상을 치르고 1633년 12월 9일 부군을 따라 절명했다. 그것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어간 선조 김종서의 신원이 복위되지 못함을 한탄해 스스로 선택한 효열(孝烈)의 죽음이었다. 그의 사후 수백 년간 각계의 효와 열부의 칭송이 자자했고 그가 살던 계룡시 두계면에는 정려비와 정려각이 세워지고 염선재라는 재실과 잠소사라는 사당(祠堂)이 건립되었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순천김씨의 생애에는 그 속에 조선 시대의 비정한 정치사가 담겨 있고 조작된 역적의 후손으로 살아가야 했던 몰락한 가문의 한 여성의 한과 설원(雪?)이 담겨있다. 여기에 양반가 여성의 생활사의 단면과 조선 여성의 출중한 효열정신이 배어있다. 생전에 후손들에게 나라의 상을 청하지 않을 것을 유언으로 남겼으나 사후 273년이 지난 1906년 후손 등 123명의 유생이 염선재의 효열을 기리는 정려(旌閭)를 청하는 연명상소를 올려 1906년 4월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정부인' 순천김씨라는 교지가 내려졌다.

최근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절재 김종서 장군 유적지 성역화 사업이 본격 추진되면서 정부인 염선재 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더 관심을 끌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의 몰락한 가문의 여성으로서 아버지의 뜻을 좇아 효의 모범을 보였고, 출가해서는 한 가문의 중심을 잡고 중흥시대를 연 현숙한 열부의 본보기라 하겠다. 은둔과 고립의 왕조시대, 성리학과 주자학의 나라에 몰락한 한 집안의 여성으로서의 삶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가혹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선대의 설원을 회복한 그는 조선 500년을 대표하는 슬기로운 여성이었고 현숙한 아내였다.

이연우 남서울대학교 특임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시흥시, 별빛 축제 ‘거북섬’ 점등식
  2. "아산으로 힐링 가을여행 오세요"
  3. 대전 유성 노인회서 견학갔다가 80대 실종 9일째…인력 600여명 투입 '희망을'
  4. 행정수도와 거리 먼 '세종경찰' 현주소...산적한 과제 확인
  5. 대전 방공호와 금수탈 현장 일제전쟁유적 첫 보고…"반전평화에 기여할 장소"
  1. 호수돈총동문회, 김종태 호수돈 이사장에게 명예동문 위촉패 수여
  2. 초등생 살해 교사 명재완 무기징역 "비인간적 범죄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3. 대전A고 학교운영위원장 교권침해? 24일 '교보위' 촉각
  4. [경찰의날] 대전 뇌파분석 1호 수사관 김성욱 경장 "과학수사 발전 밑거름될 것"
  5. [S석 한컷]서포터석에서 탐탐이 치는 K-리그 기자! 음치-박치-엇박자 서포터 현장팀 체험

헤드라인 뉴스


사실상 큰산 넘은 CTX… 행정수도 완성에 발맞춰야

사실상 큰산 넘은 CTX… 행정수도 완성에 발맞춰야

대전과 세종, 충북을 급행철도로 연결하는 '충청권 광역급행철도(CTX)'가 민자적격성조사 문턱을 넘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비례)이 행정수도 세종 완성을 위한 CTX의 조기 개통 로드맵 마련을 주문했다. 황 의원은 21일 대전 동구 한국철도공사 본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한국철도공사(코레일)·국가철도공단·에스알(SR)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50번에는 행정수도 세종 완성이 있고, 그 주요 내용을 보면 전국 접근성 개선에서 서울에서 1시간 전국 주요 도시에서 2시간 접근 가능한 교..

2025 AAPPAC 대전총회 개막…"지역의 영감이 세계로 확산되다"
2025 AAPPAC 대전총회 개막…"지역의 영감이 세계로 확산되다"

과학과 예술의 도시, 대전시가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에 우뚝 섰다. 21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한 '2025 아시아·태평양 공연예술센터연합회(AAPPAC) 대전총회'가 3일간의 일정에 돌입했다. '지역적 영감에서 세계적 영향으로(From Local Inspirations to Global Influences)'를 주제로 열린 이번 총회에는 세계 20개국 80여 개 공연예술 기관 관계자가 참석해, 지역이 품은 창의성과 상상력이 세계로 확산되는 길을 함께 모색했다. 첫 번째 세션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K-컬처'에서는 한국 문화예술이..

대전 방사능 위협 여전한데…유성구 뭐했나
대전 방사능 위협 여전한데…유성구 뭐했나

대전 유성구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원자력안전 교부세 신설이 수년째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입법이 좌절된 이후 올해 초 또다시 관련법이 제출됐지만,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성 나아가 144만 대전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 사안인데 행정당국의 이슈파이팅 부족으로 현안 관철은 멀기만 해 보인다. 21일 취재에 따르면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대전유성을)이 대표발의 한 이른바 '원자력안전교부세법'(지방교부세법 일부개정안) 7월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현재 위원회 차원에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최고의 와인을 찾아라’ ‘최고의 와인을 찾아라’

  • 제80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제80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