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121. '김호연재 문학관' 건립을 제안한다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염홍철 칼럼] 121. '김호연재 문학관' 건립을 제안한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5-05-22 12: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조선 시대 여인들에게는 학문에 접근이 규제되거나 제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인들의 문학 작품이 있었지만, 사실상 문학적으로 성공한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문학성을 인정받은 사람은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과 김호연재(金浩然齎 1681~1722) 두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김호연재는 안동김씨로 태어났으나 은진송씨 명문가인 동춘당 송준길의 증손부가 되어 대전에 시집을 온 '대전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허난설헌에 비해 늦게 그의 작품이 조명되었는데, 당시 규범적이고 교훈적인 작품과는 달리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남자들의 패덕을 비판하고 여성의 순종과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통쾌하게 지적하여 '홀로서기'를 선언하였지요. 특히 그의 작품은 자연 속 삶을 주제로 한 시가 많으며, 이를 통해 조용하고 자족적인 세계관을 드러냈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자각과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하였으며 여성 문인으로서 자기 세계를 정갈하게 표현하였으며, 절제된 감정과 고요한 감성이 어우러진, 기품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허난설헌과 그의 작품을 비교하면, 허난설헌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 예술성과 환상의 추구를 보여줬다면, 김 호연재는 차분한 절제와 유교적 삶의 품격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대비됩니다.

42세에 마감한 짧은 생이었지만 244편의 주옥같은 시를 썼습니다. 지금 대전의 동춘당 공원에는 '야음(夜吟)'이라는 그의 시비(詩碑)가 서 있는데,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는 시이지요. 야음… '밤에 읊는다'라는 뜻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시 창작으로 불꽃을 피운 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군의 사후에도 가문을 지키며 시와 글로 인격을 드러냈지요.



'야음(夜吟)

달빛 잠기어 온 산이 고요한데/ 샘에 비친 별빛 맑은 밤/ 안개 바람 댓잎에 스치고/ 비이슬 매화에 엉긴다/ 삶이란 석 자(三尺)의 시린 칼인데/ 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 서러워라! 한해는 또 저물거늘/ 흰머리에 나이만 더 차는구나.'

'삶이란 석 자 시린 칼/ 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라는 표현이 얼마나 멋진가요? 외도가 많은 남편에게도 일침을 가한 대목도 있지요. '나를 저버리면 나 또한 구구한 사적인 정을 보존하지 않겠다'라는 선언도 했지요.

이렇게 김호연재의 시는 오늘날 여성 운동의 '원형'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 여성의 자아 성찰, 지적 주체성, 내면의 자유 추구를 표현한 점에서 페미니즘적 요소를 지녔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직접적으로 여성 억압이나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하지는 않았으나 절제된 표현과 정서적 자립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여권(女權) 의식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내면 자각과 문화적 자주성을 표현한 작품으로 '바람과 비 소슬하나 대낮도 어둑해지고/ 외로운 창가엔 푸른 버들잎이 모두 떨어졌네/ 번다한 세상, 무의미하니 누가 주인이라 할까/ 백발이 되어도 그대로인 내 독서의 넋이여'라는 유명한 작품도 있지요.

이렇게 조선시대 최고의 여성 시인인 김호연재가 대전 사람이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현재 대덕구 차원에서 '대한민국 김호연재 여성휘호대회' 등 몇 가지 문화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김호연재 문학을 전국적으로 알리고 재조명하기 위하여 대전시 차원에서 '김호연재 문학관' 건립을 제안합니다. 아울러 '김호연재 문학의 재조명'에 대한 국제학술회의도 연례적으로 개최한다면 문화예술도시로서의 정체성과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지역대 글로컬대학 본선 티켓 따낼까… 예비지정 대면평가 돌입
  2. 충청권 수련병원 전공의 추가모집 착수…"또다시 특례"
  3. '탈세 혐의' 타이어뱅크 김정규, 항소심도 징역 7년 구형
  4. 호스피스병동 아버지 향한 아들 부부의 합주… "투병 앞 잠시 위로와 쉼되었길"
  5. 걸을 수 있는데 28년간 하지마비? 산재보험 부당수급 잇달아 적발
  1. 증산도 상생봉사단, 태백산서 자연정화.산불예방 캠페인 벌여
  2. 대전 골목 지키는 '자율방범대원의 집' 1호점 개점
  3. 충남대병원, 정신건강 입원영역 적정성 평가 1등급
  4. 대전·충남 대통령선거 현수막 등 훼손 27건…경찰 비상대응 총력
  5. 고령화시대 통합돌봄 어떻게? "의료와 돌봄의 민간참여 중요"

헤드라인 뉴스


대전·세종·충청 `이재명 45%, 김문수 36%, 이준석 14%`

대전·세종·충청 '이재명 45%, 김문수 36%, 이준석 14%'

21대 대통령 선거를 10여 일 앞두고 대전·세종·충청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첫 대선 TV 생중계 토론회 결과가 반영된 조사에서 '1강 1중 1약' 흐름이 확인됐다는 평가 속 이 후보는 두 후보와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도 40% 중후반대 지지율로 우위를 점했다. 선거일까지 지금의 흐름이 굳어질지, 단일화 성사 등의 이벤트로 구도가 흔들릴지 주목되는 가운데 부동층 표심이 승부를 결정지을 변수로 꼽힌다. 중도일보와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대신..

정치권 ‘부정선거 주장’ 영화 관람 윤석열 비판… 김문수는 ‘옹호’
정치권 ‘부정선거 주장’ 영화 관람 윤석열 비판… 김문수는 ‘옹호’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 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영화를 공개 관람한 것을 두고, 국민의힘을 비롯한 정치권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국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계엄에 대한 반성·자중을 할 때 아닌가”라고 했고, 한동훈 전 대표는 “자멸하는 길”, 조경태 의원은 “뻔뻔하고 한심하다”고 성토한 반면, 김문수 후보는 ‘선관위 책임’으로 돌리며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과 국힘은) 여전히 일심동체”라고 비판했고,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도 “국힘 내부에 친윤 인사들이 판을..

13년째 희망고문 `KTX 세종역`… 이제는 용도폐기되나
13년째 희망고문 'KTX 세종역'… 이제는 용도폐기되나

전국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고속철도 역사를 갖추고 있지 않은 세종특별자치시. 2012년 세종시 출범 이후 희망고문으로 남아 있던 'KTX 세종역' 설치가 완전히 물 건너가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이 십수 년째 공약 의제로 선점하고, 국민의힘도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로 내놨으나 6.3 대선에선 슬그머니 종적을 감췄다. 양당의 세종시 전체 공약은 국민의힘이 5월 16일, 더불어민주당이 5월 19일 차례로 내놓으면서, 맞불 양상이다. 문제는 2012년 지방선거와 총선, 2014·2018·2022년 지방선거, 2016·2020·202..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한빛탑 앞 선관위 캐릭터 `참참이` 눈길 한빛탑 앞 선관위 캐릭터 '참참이' 눈길

  • 호국보훈의 달 앞두고 단장하는 현충원 호국보훈의 달 앞두고 단장하는 현충원

  • 무더위 날리는 음악분수 무더위 날리는 음악분수

  • 축제 즐기는 학생들…‘로봇개 신기하네’ 축제 즐기는 학생들…‘로봇개 신기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