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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그래서 미국과 한국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이 제기된 배경과, 왜 증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정선거론을 믿는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에게 패배했는데, 그 직후부터 '도난당한 선거(Stolen Election)'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광범위한 음모론을 제기하였습니다. 우편투표, 개표기기, 사전 투표 시스템에 대해 근거 없는 조작 의혹을 제기한 것이지요. 법정 소송에서 모두 기각당했음에도 트럼프는 여전히 선거가 도난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장은 단순한 불만을 넘어 1·6의사당 습격 사태로 이어진 것입니다. 2024년 대선에서도 트럼프는 '그때(2020년 선거) 도둑맞았지만, 이번엔 못 하게 하겠다'라는 일종의 '선거 복수 서사'를 핵심 전략으로 사용하면서 선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발언을 계속하였습니다.
한국에서의 부정선거 음모론은 2002년 16대 대선 전자 개표 조작 의혹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보수 진영 일부에서는 반복적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였지요. 그것이 2012년, 2017년, 2020년 등 정치적 격랑 속에서도 전산 개표나 사전투표 조작 의혹들이 꾸준히 제기되었는데, 2024년 총선 이후 윤 전 대통령과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에서도 부정선거론이 중요한 이유였으며, 최근 실시된 조기 대선(21대)에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황교안 전 총리를 비롯한 전한길 씨 등 극우 유튜버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계속해서 제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증거가 없는데도 왜 부정선거론을 믿고 있을까요? 그것은 총선이나 대선에서 보수 진영이 패배한 원인을 외부요인으로 돌리려는 심리 상태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인지적 방어기제'로 작동한 것이지요. 즉 '우리가 진 게 아니라 조작 때문이었다'라는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유튜버 중심의 탈주류 정보 생태계에서 전한길 씨와 같은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의혹을 확대 재생산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존 언론이나 공식 통로를 신뢰하지 않고 일부 유튜브를 대안 미디어로 수용합니다. 그리고 선관위, 법원, 검찰 등 국가기관 전반에 대한 불신이 누적된 결과라고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정선거론은 단순한 주장이라기보다 극우세력들의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전한길 씨 등이 영향력을 갖는 것도 차분한 논리가 아니라 분노, 억울함, 위기의식을 자극하고 댓글, 모임, 기도회 등을 통해 '우리는 진실을 아는 소수다'라는 결속력을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은 제도적 신뢰 회복, 정보 생태계 개선 그리고 시민 교육 등인데, 이러한 부정선거론은 단순한 사실 왜곡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의 위기와 정보 기반의 분열로 보아야 하기에 해소 방법이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정선거론이 제도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대중적 지지를 받는 이상 단순한 사실 여부를 넘어 선거 과정의 투명성 강화, 허위 정보에 대한 팩트 체크 강화, 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한 꾸준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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