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개혁의 빛, 자만의 그림자

  • 전국
  • 부산/영남

[기자수첩]개혁의 빛, 자만의 그림자

  • 승인 2025-09-09 16:01
  • 김정식 기자김정식 기자
김정식 기자
김정식 기자<사진=김정식 기자>
국회 본회의장에 울려 퍼진 목소리는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지만, 그 울림 속에 감춰진 표정은 낯설게 다가왔다.

국민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힘주어 외친 언어는 명분으로는 단단했으나, 태도는 배려의 자리를 잃고 있었다.

상대를 몰아붙이는 눈빛과 "못할 것이 없다"는 기세는 개혁의 무게보다 권력의 자신감을 먼저 드러냈다.

정청래 대표는 내란 청산을 시대정신으로 규정하며 국민의힘을 향해 위헌정당 해산 경고를 던졌다.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 신설,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언론개혁 법안 추진까지 거대한 변화를 한 호흡에 쏟아냈다.

임대차보호법, 은행법, 가맹사업법 개정이라는 민생 법안도 덧붙였다.

모두가 공감할 만한 과제들이지만, 듣는 이의 가슴에 남은 것은 개혁의 설계도보다 상대를 겨냥한 날 선 경고였다.

정치사는 언제나 개혁의 언어와 권력의 태도가 엇갈릴 때 파열음을 냈다.

1970년대 유신 체제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국민 앞에서 겸손을 잃은 권력은 오히려 스스로 몰락의 길을 재촉했다.

고대 로마 원로원도 "공화의 이름으로"라는 구호 속에서 권력을 집중시켰고, 결국 제국으로 변질됐다.

역사는 늘 반복해서 경고한다.

권력을 움켜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철학자 로크는 권력은 위임받은 것이지 소유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국민이 부여한 권한은 한시적이며 조건부다.

하지만 연단에 선 태도는 때때로 이 원리를 잊은 듯 보인다.

대통령이 아닌 당 대표가 "검찰청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단정적 예고를 내놓을 때, 국민의 눈에는 개혁이 아닌 권력의 과시로 비칠 수 있다.

명분은 빛나도 태도는 그림자를 남기는 까닭이다.

국민의힘이 이 장면을 보는 감정은 복잡하다.

해산 경고에 맞서 방어 본능을 드러낼 것이고, 동시에 민생 법안에는 무조건 반대하기 어려운 난감함을 안을 것이다.

국민 일반 역시 정의감과 기대를 느끼면서도, 정치 갈등 심화에 대한 피로와 불안이 교차한다.

결국 남는 감정은 "맞는 말이지만, 도를 넘은 것 아닌가"라는 씁쓸한 물음표다.

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개혁이 빛을 내려면 태도는 낮아야 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오래된 격언은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태도의 높낮이를 겨누고 있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개혁은 오래가지 못한다.

권력을 쥘수록 숙이고, 힘이 클수록 나누는 마음이 필요하다.

버스는 달려가지만, 목적지가 어디인지 묻는 것은 국민이다.

개혁의 열차가 멈추지 않으려면, 자만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배려의 빛을 더해야 한다.
경남=김정식 기자 hanul300@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학 교직원 사칭한 납품 주문 사기 발생… 국립한밭대, 유성서에 고발
  2. [문화 톡] 대전 진잠향교의 기로연(耆老宴) 행사를 찾아서
  3. 대전 중구, 교육 현장과 소통 강화로 지역 교육 발전 모색
  4. 대전특수교육수련체험관 마을주민 환영 속 5일 개관… 성북동 방성분교 활용
  5. 단풍철 맞아 장태산휴양림 한 달간 교통대책 추진
  1. "함께 땀 흘린 하루, 농촌에 희망을 심다"
  2. 대전도시공사,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표창’ 수상
  3. 대전 대덕구, 자살률 '뚜렷한 개선'
  4. 대전 서구, 간호직 공무원 역량 강화 교육으로 전문성 강화
  5. 국가인권위 대전사무소, 6일 카이스트에서 인권영화 '침몰 10년, 제로썸' 상영회

헤드라인 뉴스


CTX 민자적격성조사 통과… 충청 광역경제권 본격화

CTX 민자적격성조사 통과… 충청 광역경제권 본격화

대전과 세종, 충북을 통합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대전~세종~충북 광역급행철도(CTX) 사업이 민자적격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 추진이 본격화 됐다. 4일 국토교통부와 대전시에 따르면 비수도권 최초의 광역급행철도인 대전~세종~충북 광역급행철도(CTX) 사업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민자적격성 조사를 통과했다. 민자적격성 조사는 정부가 해당 사업을 민간투자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차다. 이번 통과는 CTX가 경제성과 정책성을 모두 충족했다는 의미로 정부가 민간 자본을 유치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

내포 수년간 방치되던 공터, 초품아로… 충남개발공사 "연말 분양 예정"
내포 수년간 방치되던 공터, 초품아로… 충남개발공사 "연말 분양 예정"

내포신도시 건설 이후 수년간 방치됐던 공터가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로 탈바꿈한다. 아파트 숲 속 허허벌판으로 남겨졌던 곳에 대규모 공사가 시작되면서 인근 주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5일 충남개발공사 등에 따르면 내포 RH-14블럭인 홍성군 홍북읍 신경리 929번지 일원에 'e편한세상 내포 에듀플라츠'를 건설 중이다. 공사를 총괄하는 시행사는 충남개발공사가, 시공사는 DL이앤씨가 맡았다. 총 세대수 727세대인 해당 아파트의 대지면적은 3만 8777.5㎡로 지하 2층~지상25층 규모, 10동이 들어설 예정이다. 세대구..

美 AI 버블 우려 확산에…코스피 올해 두 번째 매도 사이드카 발동
美 AI 버블 우려 확산에…코스피 올해 두 번째 매도 사이드카 발동

연일 신고점을 경신하던 코스피가 5일 인공지능(AI) 고평가 우려와 버블론 확산으로 지수가 크게 떨어지며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이날 한국거래소는 오전 9시 36분 코스피 시장에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올해 4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로 인해 증시가 크게 출렁인 후 올해 두 번째 사이드카다. 오전 10시 30분에는 올해 처음으로 코스닥 매도 사이드카도 발동됐다. 코스피 사이드카는 코스피200선물 지수가 전일 종가 대비 5% 이상 상승 또는 하락해 1분간 지속되는 경우, 코스닥은 코스닥 150선물지수가 6%, 코스닥..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

  • ‘야생동물 주의해 주세요’ ‘야생동물 주의해 주세요’

  • 모습 드러낸 대전 ‘힐링쉼터 시민애뜰’ 모습 드러낸 대전 ‘힐링쉼터 시민애뜰’

  • 돌아온 산불조심기간 돌아온 산불조심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