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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진 한남대 교수 |
혁명은 국가, 사회, 경제제도 등 모든 걸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나 이전의 관습, 제도, 방식 등을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롭게 세운다는 뜻이다. 이때 한자어 혁(革)은 가죽인데, 까만 돼지가죽이 하얗게 변하는 사태에서 유래한다. 지금은 귀때기가 눈을 가릴 정도로 늘어진 바크셔나 요크셔종이 대세지만, 토종돼지는 까맣고 귀도 짧다. 그리운 탓인지 삼겹살집에서 똥돼지는 비싸다. 새까만 돼지가 하얗게 변하는 낱말을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때인 듯싶다. 5?16군사혁명, 지금은 바로잡아 군사 쿠데타라 부른다.
한참 뒤 대학에 들어와 근대사를 배우며 동학혁명과 4?19혁명을 접했고, 세계사를 통해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을 탄생시킨 1917년의 2월 혁명, 홍위병으로 악명을 떨친 마오의 문화혁명, 1789년 프랑스혁명 등등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18세기 격동의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다. 마침 그때 내 나이와 비슷한 입대를 앞둔 아이가 소설책을 추천해 달라길래 다시 펼쳐 들었다.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라는 첫 문장의 사전 예시처럼 디킨스는 인간의 선과 악, 정의와 광기, 사랑을 통한 구원과 폭력을 생생하게 그린다. 혁명은 피를 부른다.
혁명은 흔히 정의와 변혁, 자유와 평등, 새로운 미래 세계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열망으로 우릴 유혹한다. 그래서 유토피아나 아나키즘 혹은 쿠데타와 근친관계를 이룬다. 체 게바라를 숭앙했던 엄혹한 환멸의 시대 한복판에서 혁명을 꿈꾸지 않았던 청춘이 있었을까. 소설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혁명은 실제로 인류 역사에서 전제 왕정 시대를 끝내고 민주주의 토대를 세운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디킨스는 혁명을 그저 밝게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최고의 시대 이면에 자리한 혐오와 광기와 폭력이라는 최악의 시대상을 배면에 담아낸다.
첨단의 최고 시대에 최악의 모습은 지금도 연속한다. 여기저기서 난민반대, 인종차별, 성별 세대 간 갈라치기, 침범과 약탈, 적대와 증오로 얼룩진 범죄가 난무한다. 특정 국가, 인종, 종교, 집단, 개체에 대한 혐오와 증오, 배척과 부정은 폭력으로 번지고,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공간에서는 온갖 혐오 발언이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프랑스혁명의 세계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보여준 열광과 분노가 사람들을 광장의 기요틴으로 이끈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혁명의 시작은 물론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기득권의 부패에 대한 정당한 분노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혁명의 열기는 이성을 잃고 마녀사냥으로 이어진다. 단지 귀족이라거나 그들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면 단두대의 희생제물로 바쳐진다. 마찬가지로 각종 온라인커뮤니티에는 특정 국가, 종교, 인종, 혹은 인물이나 집단을 향한 비난과 조롱이 난무하고, 일군의 추종세력은 열렬히 환호한다. 누군가를 악으로 규정한 뒤 단두대에 세우곤, 그 앞에서 환호한다. 처형의 무대는 익명의 광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인신공희가 따로 없다.
김홍진 한남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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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화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