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AI 시대 근본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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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AI 시대 근본이즘

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 승인 2026-01-20 17:15
  • 신문게재 2026-01-21 18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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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환 처장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에 서 있으면 늘 묘한 감정이 든다. 인공지능은 더 똑똑해졌고, 로봇은 더 인간다워졌으며, 집은 말만 하면 알아서 움직인다. CES의 부스마다 'AI 기반', 'AI 탑재'라는 문구가 넘쳐났다. 기술은 해마다 상상을 앞질러 달린다. AI는 정말 놀랍다. 글과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알고리즘이 취향을 추천하는 시대다. AI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제가 되었다.

그런데 손끝 하나로 세계가 열리는 이 편리한 세상에서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화려한 최첨단 기술 집합소인 전시장 한가운데서 '근본'을 묻는 것이다. 고도화된 기술에 대한 본질적 가치를 찾고자 갈망한다. "그래서, 이게 왜 필요한가?" 원래 무엇이었고, 왜 그렇게 변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특히 AI 이미지, AI 음성, 알고리즘 추천은 원본과 진짜에 대한 갈망을 촉구시킨다. "그래서 뭐가 진짜야?"라는 질문은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기술은 진보했지만, 신뢰는 후퇴한 듯하다. 이 지점에서 사람들이 부르는 말이 있다. '근본'이다.

요즘 회자 되는 '근본'은 유행어가 아니다. 불안한 시대가 만들어낸 검증의 언어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빠르고 정교하지만, 그 안에는 시간의 흔적이 없다. 하루 만에 만들어지고, 하루 만에 사라진다. 반면 근본은 오래 버텼고, 반복 검증되었으며, 쉽게 대체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근본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믿을 만하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의 문화 트랜드인 '근본이즘(Fundamentalism)'과 맥을 같이 한다. 근본이즘은 말 그대로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욕망이다. 이는 단순한 복고나 향수팔이가 아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오히려 본질적 가치의 희소성이 커진다는 인식, 즉 반 자연적 속도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제동에 가깝다.

근본이즘은 과거로의 후퇴가 아니다. 기술이 인간의 판단과 감각을 대신할수록, 사람들은 검증된 원형과 기본으로 돌아가 안정감을 찾는다. CES가 보여준 수많은 기술 중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가장 새로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 쓸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실제로 CES에서는 화려한 신기술보다 '경험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제품이 주목받았다. AI를 탑재했지만 조작은 단순했고, 디자인은 오히려 클래식했다. 기술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이 흐름은 소비 전반에서도 동일하다. 패션에서는 유행보다 '기본템'이, 음식에서는 퓨전보다 '노포'가, 콘텐츠에서는 숏폼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클래식 영화와 스테디셀러가 재조명된다. AI 추천 알고리즘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사람들은 결국 "예전부터 좋았던 것"을 다시 찾는다.

아날로그 경험의 귀환도 같은 맥락이다. CES에서는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경쟁을 벌였지만, 한편에서는 '디지털 디톡스'를 강조하는 기술도 등장했다. 아이러니하게 들리지만, 기술이 기술을 줄이는 시대다. 손글씨, 필름 카메라, LP처럼 불편한 것들이 오히려 진짜 경험으로 인식된다. 프랜차이즈의 화려한 퓨전 메뉴보다, 허름한 노포의 국밥집에 줄이 늘어선다. '3대째', '40년 전통'이라는 문구는 최고의 마케팅 언어가 되었다. 이는 단순한 맛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신뢰, 즉 세월이 만든 브랜드 자산에 대한 소비다.

앞으로 AI는 더 강력해질 것 같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회가 붙잡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평가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준이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근본은 그 기준을 다시 세우려는 신호다. 가술은 앞만 보고 달린다. 사회는 때때로 뒤를 돌아보며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AI 시대 '근본'이 다시 소환되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속도보다 기준을 더 필요로 하는 사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술의 끝에서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CES가 우리에게 던진 가장 인간적인 메시지라 생각된다.

/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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