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잿빛 하늘

  • 문화
  • 공연/전시

[문화人칼럼] 잿빛 하늘

조부연 대전예술편집위원

  • 승인 2026-01-21 16:51
  • 신문게재 2026-01-22 19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2025120301000316200011751
조부연 대전예술편집위원
2026년이 시작됐다. 필자에게 2026라는 숫자는 SF영화에나 등장하는 먼 미래였다. 영화는 에일리언과 조우하고 우주여행의 오디세이가 펼쳐지는 세상을 그렸다. 먼 은하계에서 찾아온 외계인은 미개한 지구인을 사냥하거나 친구가 되기도 했다. 프레데터이거나 ET였다. 환경오염과 자원의 고갈로 황폐한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콜로니를 건설하기 위해 지구를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2026년은 20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몽상가들이 상상했던 많은 것들은 아직 요원하지만 몇몇은 현실이 되기도 했다. 적진에 숨어든 제임스 본드가 휴대용 카메라로 기밀 서류를 촬영한다. 손바닥만큼 얇고 가느다란 카메라를 연신 작동시킨다. 두꺼운 뿔테 안경에 감춰진 카메라로 몰래 촬영한다. 관객들은 한결같이 오우! 와아! 탄성이 끊이질 않았다. 디지털카메라가 손바닥보다 더 작은 전화기로 들어와 스마트폰이 되었다. 영화 속 큼지막한 무선전화기는 초등학생의 조그마한 손에 들려있는 세상이 되었다. 인터넷, 스마트폰, 가상화폐가 21세기의 출발을 알렸지만 현실은 세기말과 비슷하다.



월요일 정오를 막 지난 시간에 경부선 아래를 통과하는 지하차도에서 중동 인쇄 골목으로 향하는 사거리에 신호대기 중이었다. 자동차 너머로 잿빛 하늘 속의 태양이 보였다. 그 순간 필자의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렸다. 아! 저 태양이 모습을 감춘다면! 자동차 히터 송풍구에서 맹렬하게 뜨거운 바람이 나왔지만 한기를 느꼈다. 하루 전부터 한파가 들이닥쳐 잔뜩 움츠린 탓이었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영화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인류는 폭풍과 방사능을 피하기 위해 지하로 숨어들어 저마다 작은 콜로니를 만든다. 그리고 서로를 경계한다. 주인공은 폭풍으로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폐허를 헤맨다. 오래된 동원 참치캔을 하나 발견하고 그의 콜로니로 돌아간다. 콜로니에서는 통조림 하나 때문에 살육이 끊이지 않는다. 언젠가 보았던 넷플릭스의 영화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신호대기 하는 짧은 순간, 현실의 잿빛 하늘 속 태양은 머지않는 미래를 두렵게 했다.



느리게 인쇄 골목을 지나 선화초등학교 못미처 우회전해 둔산동으로 가는 대전천 하상도로로 진입했다. 필자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그 영화의 폭풍이 쫓아오고 있었다. 폐허가 된 지구에서 예술은? 미술은? 음악은? 영화는? 문학은? 순간, 누군가 스위치를 끈 것 같았다. 사방이 칠흑이 되었다.

예술, 예술가는 현실을 살아간다. 예술가는 특별한 존재이기보다는 다른 일을 하는 인간일 뿐이다. 먹고 마신다. 모든 인간이 하는 행위와 똑같다. 그래서 문명사회에 의해 영향 받는다. 문명이 번영하면 예술도 따라 번성한다. 문명이 쇠락하면 그 문명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다. 수천 년의 역사 속에 문명과 예술이 보여준 콜라보레이션이 그 증거다. 일일이 예를 들 필요조차 없다. 만약 다가올 미래가 폭풍 속에 놓여 있다면 예술도 함께할 게 분명하다.

지난 월요일 정오에 느꼈던 서늘함이 바로 이것이다. 미술, 미술을 하는 예술가는 자기 삶이 고귀하다고 여기며 옆을 돌아보지 않고 점만 찍어댄다. 그리고 나의 예술이 많은 이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자기 위안을 하며 전시장에 작품을 내놓는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그들의 카테고리 안에서 경쟁한다. 나만의 특별한 생각, 특별한 기법 등에 매몰되어 행위를 반복하며 1, 2등을 다툰다. 경쟁에 내몰린 예술가들은 마치 불나방과 같다. 기껏 향한 곳이 제 몸을 태워 버린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문명을 이끌었던 현인들이 폭풍 속에서 사라지자, 민중과 예술가들이 잿빛 하늘 아래 각자도생하며 치열하게 삶을 견디고 있다.

조부연 대전예술편집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속보>옛 주공아파트 땅밑에 오염 폐기물 4만톤…조합-市-LH 책임공방 가열
  2. 개인회생 신청 1만건 넘어선 대전, 회생전문법원 3월 문연다
  3. 국립한밭대 학부 등록금 '그대로'... 국립대 공교육 책무성에 '동결' 감내
  4. 이장우 김태흠 21일 긴급회동…與 통합 속도전 대응 주목
  5. "대결하자" 아내의 회사 대표에게 흉기 휘두른 50대 징역형
  1. 대전·충남 행정통합 교육감선거 향방은… 한시적 복수교육감제 주장도
  2. 충남도 "특별법 원안 반영될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 행정 낭비 제거 도움"
  3. "홍성에서 새로운 출발"… 박정주 충남도 행정부지사, 홍성군수 출마 행보 본격화
  4. ‘대전·충남 행정통합 주민의견 수렴 속도낸다’
  5. 휴직 늘어나 괴로운 구급대원… "필수인 3인1조도 운영 어려워"

헤드라인 뉴스


이장우·김태흠 "대통령 공약 쇼케이스" 與주도 통합 제동

이장우·김태흠 "대통령 공약 쇼케이스" 與주도 통합 제동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가 21일 한시적 지원에 방점이 찍힌 정부의 대전 충남 행정통합 인센티브안을 고리로 정부 여당 압박수위를 높였다. 두 시도지사는 이날 대전시청 긴급회동에서 권한·재정 이양 없는 중앙 배분형 지원으로는 통합이 종속적 지방분권에 그칠 수 있다며 이재명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특별법안의 후퇴 시 시도의회 재의결 등을 시사하며 배수진을 쳤는데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입법 추진에 사실상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이장우 시장은 대전 충남 통합 논의가 대통령의 공약 추진을 위한 쇼케이스, 선..

대전·충남 필두로 한 ‘광역통합’, 비중있게 다뤄진 신년기자회견
대전·충남 필두로 한 ‘광역통합’, 비중있게 다뤄진 신년기자회견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제시한 ‘야심 찬 시도’를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지방주도 성장’, 그중에서도 광역통합이 주요 사안으로 다뤄졌다. 핵심은 통합을 위한 권한과 재정 이양으로, 이 대통령은 “재정은 무리가 될 정도로 지원하고, 권한도 확 풀어주자”라고 강조했다. 다만 대전과 충남에서 고개를 드는 반대 기류와 관련해선, “민주당이 한다고 하니까 바뀌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긴 한다”며 한마디 했다. 이 대통령은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6년 신년기자회견에서 ‘광역통합 시너지를 위한 항구적인 자주 재원 확보와..

대전 반석역3번 출구 인근, 회식 핫플레이스…직장인 수 늘며 호조세
대전 반석역3번 출구 인근, 회식 핫플레이스…직장인 수 늘며 호조세

대전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회식 상권은 '노다지'로 불린다. 직장인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만큼 상권에 진입하기 전 대상 고객은 몇 명인지, 인근 업종은 어떨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레드오션인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빅데이터 플랫폼 '소상공인 365'를 통해 대전 주요 회식 상권을 분석했다. 21일 소상공인365에 따르면 해당 빅데이터가 선정한 대전 회식 상권 중 핫플레이스는 대전 유성구 노은3동에 위치한 '반석역 3번 출구' 인근이다. 회식 핫플레이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동파를 막아라’ ‘동파를 막아라’

  • 행정통합 관련 긴급 회동에 나선 이장우·김태흠 행정통합 관련 긴급 회동에 나선 이장우·김태흠

  • ‘유해야생동물 피해를 막아라’ ‘유해야생동물 피해를 막아라’

  • ‘대전·충남 행정통합 주민의견 수렴 속도낸다’ ‘대전·충남 행정통합 주민의견 수렴 속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