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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식 기자<사진=김정식 기자> |
사람이 계절을 체감하지 못할 뿐, 자연은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입춘이다.
겨울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날씨 속에서도 달력은 분명히 봄의 문을 열었다고 말한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장면 속에,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힌트가 숨어 있다.
명리학에서는 입춘을 '기운이 바뀌는 경계'로 본다.
눈에 보이는 풍경보다 먼저 하늘의 흐름이 방향을 틀고, 그 다음에야 땅과 사람이 따라 움직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변화가 눈앞에 나타나야 시작이라고 믿는다.
꽃이 피어야 봄이라 말하고, 성과가 보여야 노력이 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은 늘 그 반대로 움직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저 시작된다.
얼음 아래에서 물길이 열리고, 아직 차가운 흙 속에서 새싹이 준비를 마친다.
입춘은 바로 그 조용한 출발선이다.
기자를 하다 보면 '변화의 순간'을 묻는 질문을 자주 던지게 된다.
도시는 언제 살아나는가.
경제는 언제 회복되는가.
사람의 삶은 언제 나아지는가.
대답은 의외로 단순한 곳에 있다.
눈에 띄는 결과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 이미 방향이 바뀐 순간이 진짜 시작이다.
명리에서는 때를 아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말한다.
억지로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오는 기운을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도 늘 문턱 위에 서 있었다.
머물기에는 이미 지나버린 시간, 나아가기에는 아직 두려운 경계.
입춘은 그 문턱을 조용히 넘어가라고 등을 떠민다.
거창한 결심이 필요한 날은 아니다.
멈춰 둔 일 하나 다시 시작하는 것.
망설이던 계획에 작은 표시 하나 해 두는 것.
굳어 있던 마음에 가느다란 균열을 허락하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큰 변화는 늘 그렇게,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크기로 시작된다.
자연을 오래 관찰한 사람들은 안다.
봄은 가장 요란하게 준비하는 계절이 아니라, 가장 조용하게 방향을 바꾸는 계절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입춘은 묻는다.
"당신은 아직 지난 계절에 서 있는가, 아니면 이미 새로운 흐름 속에 들어섰는가."
계절이 바뀌는 속도는 누구에게나 같지만, 삶이 바뀌는 속도는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한 해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거대한 계획이 아니라,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다.
겨울 끝에서 떨던 씨앗 하나가 훗날 숲을 이루듯, 오늘의 작은 시작은 생각보다 멀리 자란다.
입춘이다.
봄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미 시작됐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확실한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경남=김정식 기자 hanul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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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