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 그중에서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일은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찾는 것과 같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점조직으로 움직였던 비밀결사의 특성상, 기록은 의도적으로 파기되었거나 흩어졌다. 그나마 남은 기록조차 빈약하여 실체 규명은 늘 난제다. 그중에서도 해학 이기(1대)와 운초 계연수(2대)가 주축이 된 단학회(檀學會)는 유독 뜨거운 감자다. 주류 사학계 일각에서는 단학회를 1960년대 이후 이유립이 『환단고기』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창작한 가공의 단체'로 매도해왔다.
그러나 최근 발굴된 사료와 교차 검증된 증언들은 단학회가 단순한 유령 단체가 아니라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관통하며 치열하게 저항했던 실존 항일 결사였음을 강력하게 웅변하고 있다.
단학회의 태동을 이해하려면 먼저 구한말이라는 시대의 절박한 풍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권이 붕괴 직전으로 내몰린 그 격랑 속에서, 단학회는 단순한 사상 단체가 아니라 멸망의 문턱에서 민족의 근원을 붙들고자 했던 결사의 선택이었다.
단학회 창립자 해학(海鶴) 이기 선생은 황현, 이정직과 함께 '호남 3걸'로 불릴 만큼 당대 최고 수준의 지성과 실천력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그는 을사오적 처단을 계획하는 등 항일 투쟁의 전면에 섰고, 이러한 공로로 오기호·홍필주와 함께 국가보훈부가 선정한 2026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1909년 이기 선생은 나철과 함께 대종교 중광에 참여했으나, 곧 역사관과 신관의 차이로 결별하고 독자적인 길을 택한다. 나철이 단군을 중심으로 한 민족중흥을 구상했다면, 이기는 그보다 더 깊은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환인·환웅의 환단시대 역사, 삼신일체상제의 신관을 회복하고자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기 선생은 계연수 등 동지들과 함께 강화도 마리산에서 천제를 올리고 단학회를 창립한다. 단학회는 학술 연구를 표방했지만, 그 실체는 국망의 현실 앞에서 민족의 뿌리와 혼을 지키려는 비장한 결사였다.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은 단학회를 이유립 선생이 창작한 조직이며, 그 실존을 증언한 인물도 오직 이유립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결정적인 반증 앞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단학회의 실존을 입증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또 한명의 증언자의 목소리에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독립운동가 오봉록이다.
1991년 발간된 향토지 『삭주군지(朔州郡誌)』에는 평안북도 천마산대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오봉록(吳鳳祿, 1902~1981) 지사의 증언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1977년에 채록된 것으로, 오 지사는 자신이 직접 몸담았던 천마산대의 실상을 회고하며 66명에 달하는 대원들의 이름과 활동 내역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이는 단학회가 특정 개인의 사후적 '창작'이나 단일 증언에 의존한 허구가 아니라, 현장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집단적 기억과 기록 속에 분명히 존재했던 역사적 실체임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최시흥 : 의주출신 후에 삭주 구곡면 신풍리로 이주, 단학회 3대 회장. 3.1 독립선언 직후 박응백 등과 함께 동지를 규합하여 천마산대를 조직, 그 사령장에 취임.1924년 12월 평양 감옥에서 옥사했다.
△최시찬 : 최시흥 사령장의 아우, 무계급 대원으로 종군하여 단학회의 재정보조에 주력 (오봉록 지사 증언,삭주군지)
오봉록 지사는 자신의 직속 상관이었던 최시흥을 분명히 '단학회 3대 회장'으로, 그의 동생 최시찬을 '단학회 재정 보조'로 명확히 기록했다. 이 증언은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이전, 무장투쟁의 최전선에 있었던 노병의 생생한 기억에서 나온 것이다. 단학회의 실존은 이렇게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구체적 증언 속에서 또렷이 확인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인물은 최시찬이다. 일제 강점기 판결문과 기밀문서를 교차 분석한 결과, 그는 '최오산(崔午山)'이라는 이명으로 활동한 천마산대 대원이었음이 확인된다. 주목할 점은, 이 '최오산'이라는 이명으로 남아 있는 독립운동 기록이 오봉록 지사의 증언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최시찬 관련 증언이 사후에 꾸며낸 서사가 아니라 서로 독립적인 사료들이 맞물려 드러난 실체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오봉록 지사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바, 곧 '단학회 회장 최시흥'과 그 조직의 실체를 과장이나 덧붙임 없이 있는 그대로 증언했다. 그의 기록에 포함된 66명의 명단에는, 해방 후 『환단고기』를 세상에 내놓은 이유립이 청소년 시절 만주를 오가며 통신원 역할을 했다는 사실까지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이 남는다. '단학회 3대 회장'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곧 1대 해학 이기, 2대 계연수라는 연속된 지도 체계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전제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3대'라는 표현 자체가 단학회가 단발적 개인의 창작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 지속된 실재 조직이었음을 증명하며, 동시에 해학 이기와 계연수 선생의 실존을 뒷받침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 중 하나가 된다.
단학회는 관념과 담론에 머무는 학술 동아리가 아니었다. 이들은 현실의 위기 앞에서 사유를 행동으로 전환한 집단이었고, 천마산대의 대원으로 직접 무장 항쟁에 나선 실천 조직이었다. 또한 남만주 관전현에는 '배달의숙'을 세워 청년들에게 민족 고유의 역사를 교육하며, 사상과 투쟁을 동시에 준비했다.
그러나 1920년 8월 15일,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운초 계연수 선생이 만주 관전현 홍성납자에서 독립신문에서도 가장 악독하다고 평가받는 밀정 감영극 일당에게 붙잡혀 참혹하게 살해된 것이다. 이 현장은 단순한 전언이 아니라, 당시 14세의 청소년이었던 이유립과 그의 부친 이관집이 직접 목격한 사건이었다.
이후 단학회는 천마산대의 핵심 인물이었던 최시흥 장군(1889~1925.3)이 3대 단학회장을 맡으며 그 맥을 이어간다. 오동진의 '광복군총영으로 발전한 천마산대는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큼 강력한 무장 투쟁 세력이었고, 천마산대는 훗날 서로군정서와 통의부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했다.
결국 단학회는 독립전쟁을 떠받친 사상적 기반이었고, 천마산대는 그 사상이 구현된 물리적 실체였다. 이들은 붓과 말로만 역사를 논한 것이 아니라, 총을 들고 현장에 나서 '역사의 광복'과 '국토의 광복'을 동시에 이루려 했던 사람들이었다.
3대 단학회장 최시흥의 뒤를 이어, 4대 단학회장은 석주 이상룡이 국무령으로 활동하던 시절, 경호 책임자로서 곁을 지키며 수많은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이덕수 선생이 맡았다. 이는 단학회가 단절되지 않고 독립운동의 최전선과 긴밀히 맞물려 존속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어 5대 단학회장은 이용담 선생(1894~ 1951)이 맡았다. 그는 1926년 일본 경찰에 체포된 이후, 무려 19년 3개월이라는 혹독한 세월을 일제의 감옥에서 견뎌낸 인물이다. 출옥 후에도 이용담 선생은 단학회의 명맥을 다시 세우는 데 온 힘을 기울였고, 당시 40대의 이유립에게 단학회의 핵심 직책을 맡기며 조직의 계승을 준비했다.
이용담 선생은 끝내 1951년 강원도에서 순국했지만, 단학회는 그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 정신과 조직의 맥은 이유립 선생에게로 이어졌고, 이후 「단단학회」의 결성으로 다시 한 번 분명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 결과, 1911년 초간된 『환단고기』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1979년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이는 단학회가 단절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 계승된 역사 복원의 흐름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단학회를 둘러싼 해묵은 '위서(僞書) 논란'의 색안경을 벗을 때다. 환단고기를 간행하고 우리 역사의 맥을 온전히 지키려 했던 단학회라는 조직의 실존 여부는, 선입견이 아니라 객관적 증거에 의해 재평가되어야 한다.
실체적 진실을 외면한 채 단학회를 가공의 단체로 매도하는 일은, 일제의 폭압 속에서도 "우리 역사를 지키겠다"며 목숨을 걸고 싸웠던 최시흥, 오동진, 그리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무명 대원들의 피와 땀을 부정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단학회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잊혀진 선열들에 대한 마땅한 예우이자, 반쪽으로 남아 있던 우리 독립운동사의 지평을 온전히 확장하는 정당한 과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 역사를 지키려 했던 이들을 잊은 민족에게도 미래는 없다.
박찬화 (사)대한사랑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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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