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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을 펼치고 광복 후 대전형무소 의무과장으로 17년간 수용자를 돌본 안사영 선생의 생애가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교정본부 추모영상) |
22일 대전시의사회와 대전교도소(소장 윤창식)에 따르면, 두 기관은 최근 간담회를 갖고 광복 직후 1946년부터 1962년까지 대전형무소 의무과장을 지낸 안사영 선생에 대해 함께 연구하기로 했다. 당시 형무의무감으로 불린 의무과장은 교도소와 구치소의 시설에서 수용자들의 건강 관리, 질병 치료, 보건 위생 업무를 전담하는 의사를 말한다. 그는 부친을 따라 충남 청양으로 이주해 감리교 계열 공주 영명학교(1회)에서 수학하고, 서울에서 세브란스연합 의학전문학교를 1917년 졸업해 청년의사가 됐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그는 1919년 초 국권회복의 뜻을 품고 중국 길림성의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의무감을 지냈다. 그곳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이주한 수많은 조선청년들을 진료했으며, 이때 총상을 입은 이범석 장군을 치료했다. 안사영 선생은 길림성의 독립운동 거점이었던 삼원보 항일운동단체인 '독립단'의 검찰(檢察)을 지냈으며, 1920년께 일본 경찰에 검거돼 평양형무소에서 2년간 복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전시가 2019년 발행한 '옛 대전형무소 역사관광자원 조성사업 전시콘텐츠 발굴 및 고증 용역' 보고서에서도 대전형무소의 역사적 가치를 지키고 계승할 때 기억할 인물로 안사영 선생을 꼽았다. 1919년 문을 연 대전형무소가 3·1운동 후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주로 수감한 시설에 광복 후 독립운동가가 대전에 정착해 의무과장으로 17년간 봉직한 역사를 대전형무소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대전교도소 역시 2021년 제76주년 교정의 날에 맞춰 그를 '기억해야 할 진정한 교정인'으로 지정해 헌정 영상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생애를 조명했다. 더 나아가 대전교도소 측은 교정본부에 남은 기록을 더 찾아서 독립운동가에서 교정인으로 이어진 그의 삶을 돌아볼 계획이다. 대전시의사회에서도 그가 대전에 정착해 생활했던 기간 선행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독립유공자 지정의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현재는 독립유공자 심사에서 포상이 보류된 상태다.
임정혁 대전시의사회장은 "사회에서 더 나은 대우로 더 좋은 조건으로 개원하거나 근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57세에 대전교도소에서 수형자들을 치료하는데 다시 17년을 헌신하셨다는 점에서 대전의사회 차원에서 안사영 선생의 공훈을 밝히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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