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장면이 되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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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장면이 되는 도시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건축가)

  • 승인 2026-03-19 16:55
  • 신문게재 2026-03-20 19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김병윤 전 대전대 디자인아트대학장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건축가)
이태리의 베니스는 풍경이 문명이 되는 순간의 장면을 곳곳에 가득히 간직한 곳이다. 도시는 흔히 크기와 기능으로 설명된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고, 일하고, 이동한다. 그러나 어떤 도시는 기능을 넘어 하나의 장면에 집중한다. 바로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은 도시를 단지 이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풍경에 사로잡히는 관객이 된다. 베니스는 바로 그런 도시의 으뜸이 아닐까 싶다. 일찍이 나폴레옹은 베니스를 "유럽의 응접실"이라고 불렀다. 그 말이 가장 실감 나는 곳이 산 마르코 광장 Piazza San Marco이다. 모두 이곳에 모이고 또한 이곳을 기억한다. 이 광장은 단순한 도시의 중심이 아니라, 베니스라는 도시가 세계를 맞이하는 장면을 지닌 무대라 할 수 있다.

미국엔 워싱턴광장이, 런던엔 트라팔가광장이, 파리엔 콩코드광장이 있고 모두 도시의 장면을 기획하고 있지만, 배를 타고 입장하는 산 마르코 광장에는 다 압도된다. 광장의 주인인 넬슨도 워싱턴도 나폴레옹도 이 장면의 응접실에는 압도되었다. 대부분의 유럽 도시 광장은 거리와 건물 사이에 자리 잡는다. 그러나 산마르코 광장은 다르다. 광장의 한쪽은 곧바로 석호, 베니스 라군Lagoon으로 열려 있어 시도 때도 없이 배를 타고 도시에 들어온 사람들은 골목을 지나지 않고 곧바로 이 광장에 입장한다. 도시가 스스로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바로 이곳에서 시작하는 도시는 배경이 되고 내가 주인공이 되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광장의 중심에는 황금빛 돔을 가진 산 마르코의 대성당 바실리카 디 산마르코가 서 있고, 그 옆에는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산 마르코의 상징같은 존재인 캄파닐레 종탑이 우뚝 솟아 있다. 권력을 상징하는 궁전 팔라초 두칼레와 시민들이 모여드는 카페, 회랑이 광장을 둘러싼다. 이 모든 요소들은 우연히 모인 것이 아니라, 도시가 스스로를 하나의 장면으로 연출하는 방식이다. 베니스가 특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여기에 있으며 이 도시는 거대한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나, 강력한 제국의 수도가 아니라 수많은 섬들과 물 위에서 살아야 했던 상인들의 공동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도시였다.

세익스피어의 명작 '베니스의 상인'을 기억한다면 장면들은 더욱 극적으로 그러나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도 오히려 도시의 풍경은 더욱 감동적으로 완성될 것이다. 18~19세기 여행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지중해로 떠나는 여행, 그랜드 투어Grand Tour의 시대가 오면서 산마르코 광장은 또 다른 역할을 갖게 된다. 광장 아케이드 아래에는 1720년에 오픈한 카페 플로리안과 쿠아드리가 있고 이곳으로 괴테 바이런 프루스트 등이 찾아와 같은 풍경을 보았고, 유럽문화의 교차로에서 어울리게 된다. 산 마르코는 그런 어울림에 주저하지 않는 시선과 다양한 장면을 지녔고, 그들이 떠난 자리는 더욱 기억의 장소가 되어 갔다. 이는 헤밍웨이가 20년을 살면서 머물렀던 쿠바 아바나의 문도스 호텔과 그가 즐기던 모히토와 다이키리는 여행자 누구라도 지나칠 수 없는 향수가 되는 것과도 같다.

멀리 아드리아해의 강한 남풍, 시로코Scirocco가 바닷물을 베네치아 석호 안쪽으로 밀어 넣을 때 물이 차오른 광장은 일시적으로 호수가 되며 이 또한 재해가 아니라 정기적인 이 도시의 장면 속을 걷게 만드는 것이다. 산 마르코 광장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떠나 하나의 기억과 문화가 풍경으로 응축되며 도시가 장면이 되는 장소이다. 수많은 골목과 운하, 다리와 건물로 이루어진 이 도시는 결국 한 장면의 풍경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베니스를 떠난 뒤에도 도시 전체를 기억하기보다는 대신 산마르코 광장의 빛, 물, 종탑, 그리고 바다로 열려 있던 그 장면을 기억한다.

도시가 풍경이 되는 순간, 그곳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문명의 기억이 된다. 비워진 시간의 산마르코 광장은 오랜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자코메티의 연극 무대에서처럼, 오직 나무 한그루 조각만으로 누가 언제일지 모르는 고도를 한없이 기다리는 불가능한 이상의 장면이 겹쳐지는 도시가 되기도 한다.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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