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이제는 보여주기식 정책을 끝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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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이제는 보여주기식 정책을 끝낼 때다

단국대학교 공공경영대학원 문화예술콘텐츠학과 이희성 교수

  • 승인 2026-04-01 16:43
  • 신문게재 2026-04-02 19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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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공공경영대학원 문화예술콘텐츠학과 이희성 교수
대전의 문화정책은 지금 근본적인 전환점 앞에 서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제는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동안 대전의 문화행정은 공연장, 미술관, 축제, 행사, 공모사업을 늘리는 방식으로 추진되어 왔다. 물론 이런 정책이 전혀 의미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도시의 외형을 만들고, 일정한 문화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는 분명 역할이 있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지금까지의 방식만으로는 대전의 문화예술이 스스로 성장하고 순환하는 힘을 만들지 못했다. 사업은 늘었지만 생태계는 강해지지 않았고, 시설은 생겼지만 현장은 더 튼튼해지지 않았다.

문제는 분명하다. 대전 문화정책은 여전히 '보여주기 쉬운 것'에 끌리고 있다. 눈에 띄는 건물, 단기간 성과를 내기 쉬운 행사, 숫자로 설명하기 편한 사업이 정책의 중심을 차지해 왔다. 그러나 문화도시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화의 힘은 행사 횟수나 시설 규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역 예술인이 안정적으로 창작하고, 시민이 일상적으로 문화를 향유하며, 민간 공간과 기획자, 공동체가 서로 연결되는 구조에서 나온다. 즉 진짜 정책은 사업 몇 개를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이 스스로 순환하는 도시의 체질을 만드는 데 있다.

대전은 그동안 문화정책을 너무 오랫동안 '시설'의 언어로 말해 왔다. 무엇을 짓고, 무엇을 유치하고, 얼마나 많은 행사를 치를 것인가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이제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그 시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 공간은 지역 예술인에게 실제로 열려 있는가? 그 행사는 시민의 문화적 일상과 연결되는가? 행사 후에 무엇이 남는가? 정책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화정책이 아니라 단기적 행정성과 관리에 불과하다.

특히 대전은 생활권 문화망이 약하다. 시민이 동네에서 쉽게 전시를 보고 공연을 만나고 창작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충분히 촘촘하지 않다. 문화도시의 경쟁력은 상징적인 대형시설 몇 개가 아니라, 생활 가까이에 살아 움직이는 작은 문화거점의 밀도에서 나온다. 동네 서점, 복합문화공간, 독립예술공간, 마을 커뮤니티, 청년 창작공간이 살아 있어야 도시 문화의 혈관이 움직인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도시의 얼굴만 고민했지, 도시의 모세혈관을 키우는 일에는 인색했다.

예술인 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단발성 공모와 일회성 지원으로는 지역 예술의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창작 준비에서 발표, 유통, 관객 개발, 재도전까지 이어지는 성장 사다리가 있어야 한다. 청년예술인은 진입할 수 있어야 하고, 중견예술인은 확장할 수 있어야 하며, 원로예술인은 축적된 자산을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생색나는 지원금이 아니라, 예술인이 대전을 떠나지 않고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이다.

더 큰 문제는 거버넌스다. 형식적인 대전시 위원회가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가 실제 정책과 예산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문화행정이 행정 내부의 판단만으로 굴러가는 한, 생태계 전환은 불가능하다. 예술가, 기획자, 시민, 자치구, 재단, 민간공간이 함께 방향을 논의하고 책임을 나누는 구조가 필요하다. 의미없는 자문이 아니라 실질적인 공동 결정 구조가 필요하다.

이제 민선9기의 문화정책은 분명한 선언을 해야 한다. 더 많은 행사보다 더 강한 생태계, 더 큰 건물보다 더 촘촘한 생활권 문화망, 더 화려한 구호보다 더 실질적인 창작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해야 한다. 문화정책의 성패는 얼마나 많이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남는 구조를 만들었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는 보여주기식 문화정책을 끝낼 때다. 대전 문화행정의 중심을 시설과 행사에서 사람과 생태계로 옮겨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대전을 진짜 문화도시로 바꾸는 출발점이다.

단국대학교 공공경영대학원 문화예술콘텐츠학과 이희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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