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옷의 주인, 사건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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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칼럼] 옷의 주인, 사건의 주인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 승인 2026-05-31 12:07
  • 신문게재 2026-06-01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변호사김이지사진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언제부터인가 미니멀리즘에 마음이 끌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짐을 줄이는 일인 줄 알았는데, 들여다볼수록 그것은 '무엇을 곁에 둘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었다. 가장 먼저 옷장에 손이 갔다. 정리를 하다 이상한 것을 알아챘다. 입지 않는 옷들은 나쁜 옷이어서가 아니었다. 어떤 것은 분명 좋은 소재였고, 어떤 것은 살 때의 설렘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런데 왜 손이 가지 않았을까. 그 옷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옷을 입으려면 하루를 그 옷에 맞춰야 했다. 신발을 바꾸고, 가방을 고르고, 헤어도 신경 써야 하는 착장. 그날은 내가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옷이 나를 입은 것이었다. 옷의 주인이 아니라 옷의 노예였다.

화이트 자켓과 블랙 자켓이 그랬다. 좋은 옷이니 많이 입자고 들였는데, 막상 옷장에서 거의 나오지 못했다. 그 옷들에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잘난 옷들이어서 다른 옷과, 그리고 나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게 고용되기에는 너무 뛰어난 일꾼들이었던 셈이다. 반면 매번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옷들이 있었다. 화려하지 않고, 누가 보아도 '와' 하는 옷도 아닌데, 아침마다 '저거 입으면 되겠다'가 되는 옷들. 법정에 가도, 상담을 해도, 이동 중에도 묵묵히 하루를 받쳐 주는 옷들. 그 평범해 보이는 옷들은 10년이 넘도록 옷장 안에 살아남았다.

기준이 잘못되어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예쁜가'를 먼저 물었다. 그러나 진짜 물어야 할 것은 '이 옷이 나를 섬기는가, 내가 이 옷을 섬기는가'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옷에게 기대하는 역할 자체가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는 것을. 젊은 시절에는 옷에게 '나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줘'라고 부탁했다면, 대표변호사가 되고 더 성숙해진 지금은 옷에게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게 도와줘'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그런 기준으로 옷장을 정리하다가 나의 사건들이 떠올랐다.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나는 지금 이 사건들을 이끌고 있는가, 아니면 사건들에 끌려가고 있는가.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사건이 사람을 압도하는 순간들이 있다. 의뢰인의 불안은 매일 쏟아지고, 상대방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치고 들어오고, 기일은 촉박하게 다가온다. 그때마다 눈앞의 것에만 반응하다 보면 어느새 사건의 방향을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나를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분명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정작 큰 그림을 누가 그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 초보 변호사 시절에는 부지런함과 사건 장악을 자주 혼동했다. 답신을 빨리 보내고, 서면을 많이 쓰고, 누구보다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으면 그것이 곧 사건을 잘 끌고 가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분주함과 주도권은 다른 것이었다.

좋은 옷을 입는 사람을 의식하게 만들지 않듯이, 좋은 변호사는 사건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사실관계를 꿰뚫고, 법적 쟁점을 먼저 세우고, 의뢰인이 보지 못하는 위험과 선택지를 짚어주는 것. 의뢰인의 말 한마디에 즉각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있는 삶 전체를 보고 움직이는 것. 그것이 사건의 주인으로 서는 일이다.

대표변호사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단지 이름이 바뀌고 책임이 늘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옷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달라지듯, 일에게 요구하는 것도 달라져야 했다. 나를 화려하게 보여줄 사건이 아니라, 내 의뢰인의 인생을 단정하게 지켜낼 사건. 나를 압도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장악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 내가 떠난 뒤에도 의뢰인의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충분히 단단한 결과를 남기는 일.

미니멀리즘은 결국 줄이는 일이 아니라 가려내는 일이었다. 옷장이 그러하듯 사건도 그러하다. 옷의 주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처럼, 사건의 주인으로 서겠다. 그것이 지금 내가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변호사의 자세다.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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