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의 효율화'란 거대한 산업 발전 흐름이 오늘날 현대 사회의 모든 가치를 장악하고 있지만, 지역의 고유한 숨결과 정체성이 담긴 전통산업의 흔적이 미래세대에 적절히 계승돼야 마땅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낡은 산업의 미래를 새로 디자인할 수 있도록, 장인의 정교한 기술에 청년의 대담한 감각을 이식해 자생적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할 새로운 산업 철학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에 중도일보는 '지속가능성'을 바탕으로 지역 전통산업 부활 공식을 새롭게 증명해 낸 일본의 주요 도시와 산업 현장들을 직접 둘러보고, 그들의 경영 철학과 청년 세대로의 승계 모델을 우리의 산업에 접목할 방안을 지역사회와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100년을 바라보는 미래 산업을 향한 '대전 특화거리 전통산업 리빌딩'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운 대안을 전문가들과 함께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① 대전 전통산업과 특화거리의 탄생과 번영…그리고 존폐의 기로
② '생산성을 넘어 브랜딩을 창출하라'…일본 출판업계와 기모노 장인의 비책
③ '문화재적 가치를 보존하다'…일본 교토 니시진오리의 전통 계승 노력
④ 한-일 청년 세대 교류의 장을 열어 더 넓은 시장을 꿈꾸다
⑤ '발전 의지에 방점을'…산업 지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다
특화거리로 지정된 대전의 전통산업은 도시의 형성과 성장을 함께 해 온 대체 불가능한 문화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소비 트렌드의 급변 속에서 과거에 머무른 골목들은 점차 활력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생존을 위한 대전환이 요구되는 현시점에서 도시·경영·시민사회 전문가들은 대전 전통산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찾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한 예산 지원에 머물렀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상인들의 자생력을 바탕으로 대전의 강점인 '과학기술'과 '기관 및 대학의 인프라'를 접목해야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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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이광진 대전경실련 기획위원장, 신희권 충남대 교수, 최종인 한밭대 교수. |
아무리 훌륭한 정책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실천할 주체의 의지가 없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전통산업 활성화의 최우선 조건으로 외부 지원이 아닌, 내부의 처절한 성찰과 혁신 의지라고 입을 모은다.
이광진 대전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대전경실련) 기획처장은 행정 중심의 일방적인 지원 방식이 가진 맹점을 지적했다. 이 처장은 "전통산업 활성화에 있어 무엇보다 상인회 차원에서의 발전과 개선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현 상황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상인회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부나 지자체에서 어떤 혁신적인 지원책을 내놓더라도 결국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와 문제점을 외부 탓으로 돌리지 않고, 스스로에게서 찾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며 상인들의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향후 정책 방향도 무조건적인 예산 지원에서 벗어나 선별적 공모 형태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처장은 "행정이 예산을 일방적으로 떠먹여 주는 방식은 자생력을 해친다"며 "스스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이를 실행에 옮기겠다는 구체적인 실천 의지를 검증하고, 이에 기반한 맞춤형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통산업이라는 하나의 틀로 모든 골목을 묶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전에서도 맞춤패션거리와 한복거리, 한의약거리 등 특화 거리마다 지역 전통산업이 가진 성격과 타깃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라며 "탑다운(Top-down) 방식의 획일적인 정책을 지양하고, 골목의 특성과 상인회의 성향에 맞게 다양하고 정교한 전략이 개별적으로 마련되고 추진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상인들이 혁신의 돛을 올렸다면, 배를 움직일 엔진은 대전이 보유한 '과학기술 인프라'에서 찾아야 한다. 전통산업을 단순히 오프라인 직물이나 한약재 판매에 국한하지 않고, 미래 첨단 산업과 접목할 때 상상 이상의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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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교토 니시진 다이코쿠초 거리.(사진=심효준 기자) |
일각에서 전통 제조·의류업을 사양 산업으로 치부하지만, 신 교수의 시각은 다르다. 사회적 트렌드의 변화가 오히려 대전 맞춤패션에 거대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획일화된 기성품에 피로감을 느끼고 자신만의 개성을 중시하는 '가치 소비' 사회가 도래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장인의 손길이 닿는 맞춤형 소비 수요가 새롭게 촉진되고 있다"며 "지역 전통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포기할 게 아니라, 이 시기에 맞게 올바르고 빠른 변화를 시도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진단했다. 또 최근 대전이 '성심당'을 중심으로 외지 관광객이 대거 유입되는 '꿀잼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현상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 교수는 "성심당을 보러 온 수많은 젊은 관광객과 외국인들의 발길을 원도심의 전통산업 특화거리로 유인할 수 있는 정교한 동선 설계와 독려가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대전 한의약 거리는 한방 체험과 웰니스(Wellness) 요소를 결합해 외국인 관광객에게 완전히 새로운 K-관광 콘텐츠를 제시할 수 있다. 빵을 사러 온 이들이 한복을 입고 맞춤 패션을 구경하며 한방차를 마시는 체류형 관광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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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도쿄 지요다구 진보초 고서점 거리.(사진=심효준 기자) |
일본 교토의 강력한 재정 지원은 눈여겨볼 사례이지만, 이를 국내 지자체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법적·문화적 한계가 존재한다. 예산의 형평성 문제와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정부가 예산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 대신, 공공기관과 지역 대학의 인재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간접적·거버넌스형 지원'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종인 한밭대 융합경영학과 교수는 현실적인 접근법을 제시했다. 최 교수는 "교토와 같이 전통산업에 전폭적인 예산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일본의 사례를 우리나라 지자체에 곧바로 대입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며 "문화재 보존의 시선으로 접근하는 방식도 가치가 있긴 하지만, 국내 사례에 도입한다면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를 비롯해 전통문화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가 제시한 대안은 '로컬 브랜딩'과 '기관 및 대학 연계형 간접 지원'이다. 그는 "구청 단위나 공공기관 차원에서 특화거리에 지정된 기존 상품들을 청년들의 시각으로 새롭게 디벨롭하는 '아이디어 공모전'을 주기적으로 개최하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며 "새로운 활로와 비즈니스 모델(BM)을 제시하는 유망한 청년 창업가가 있다면 이들의 사업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예산을 매칭 지원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대학도 교실을 넘어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업을 희망하는 대학의 우수한 인력을 특화거리로 유인해 '스마트 점포'를 육성해야 한다"며 "최신 ICT를 도입해 온라인 판매 채널과 배달 서비스를 개발함으로써 고객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고객의 선호도와 구매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상인들의 맞춤형 마케팅 전략 수립을 돕고,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서는 AI 기반의 실시간 통·번역 서비스와 실감형 문화관광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도 제시했다. 또 AI 기반 영상 분석을 통해 노후화된 전통시장 내의 취약한 보안과 화재 안전을 강화하는 등 스마트 기술을 접목한 생활혁신형 연구개발(R&D)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최 교수는 "이를 위해서는 대학과 산업체의 진정한 협력, 그리고 교수와 학생들의 현장 지향적 관심이 필수적"이라며 "최근 교실 밖으로 나가 실제 지역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PBL(Project-Based Learning, 프로젝트형 수업)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대학의 교육과 연구 현장을 전통산업 및 특화거리 현장으로 과감히 확대해 간다면, '지역에 단순히 존재하는 대학'이 아니라 '지역을 살리는 대학'이 될 것이며, 청년들이 대전에 머무르게 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끝>
방원기·심효준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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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