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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꿈나래학교 인경숙 교사. |
이러한 변화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어떤 교육적 자극 덕분에 피어났는지 단 하나의 순간을 짚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학생들을 매일 마주하다 보면, 인간의 자연성장은 결코 의심할 수 없는 확신으로 다가온다. 학교란 교사의 반복되는 가르침, 부모님의 아낌없는 지지, 그리고 학생 자신의 의지 있는 참여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선순환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출발점은 '될 수 있다'는 실제적 믿음과 '해야만 한다'는 윤리적 당위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궤를 같이한다. 생의 무게를 견디며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한다"라는 내면의 고백을 삼켜낸 이들이 비로소 성숙한 어른이 되듯, 교육 역시 학생을 둘러싼 환경이 쉼 없이 격려를 건네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치지 않고 대안을 모색하는 연속성 속에 교육의 진정한 가치가 존재한다.
그러나 교육 현장은 치밀하게 짜인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배움과 비약적인 성장은 늘 예측하지 못했던 균열의 순간 속에서 피어났다. 현재의 조건에서 예측 가능한 것들을 논리적으로 나열한 것이 '계획'이라면, 본질적인 '꿈의 성취'는 전혀 예기치 못한 다른 지점에서 싹을 틔운다. 우리는 흔히 꿈을 계획의 정교한 완성이라고 오해하지만, 돌아보면 꿈은 늘 계획과는 사뭇 다른 낯선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당도해 있었다. 그리고 그 낯선 지점에서 지금의 현재를 새로운 시선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힘, 그것이야말로 교육이 지닌 가장 놀라운 실천적 가치이다.
어떤 아이는 눈에 띄게 느린 걸음으로 걷거나, 자신의 내면을 한 마디 언어로 표현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거나 아주 작은 변화 하나에도 온 세상을 얻은 듯 환한 미소로 화답해 주는 아이. 그 순간마다 깨닫게 된 진리는 아이들을 움직이는 궁극의 동력이 계획의 완성이나 외부의 압박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 본연의 기쁨과 환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교실 안에서 터져 나오던 아이들의 작은 감탄사들이 지금도 귓가를 맴돈다.
"선생님, 제가 해냈어요." "정말 되네요."
그 짧은 외마디들은 단순한 발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 스스로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조우한 순간의 감동이었으며, 교사인 나에게는 지난한 하루를 다시금 버텨내게 하는 영성적 치유이자 동력이었다.
아이 한 명의 작은 동작에서 희망의 물길을 길어 올리는 일,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찰나에 다시금 가능성을 바라보게 이끄는 일. 이것이 교사에게 부여된 소명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교육 현장에는 멈추지 않는 '두레박질'이 필요하다. 당장 눈에 물이 보이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두레박을 내리고, 아득한 기다림 속에서도 기꺼이 손을 내미는 일. 비록 지치고 더딜지라도 아이의 내면에 깃든 가능성을 신뢰하며 끝내 희망을 퍼 올리는 일 말이다.
그 희망은 단순히 '더 나은 내일'만을 맹신하는 조급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너는 충분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다가올 내일의 어느 길목에서도 너만의 기쁨이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아이의 오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넉넉한 품이다.
"아이가 스스로 피어날 때까지 온전히 기다려 줄 수 있는가."
"계획된 기대 이상의 지점에서, 아이가 마주한 오늘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가."
"지금 모습 이대로 이미 충분한 완성체인 아이를 온 가슴으로 기뻐하는가."
이 엄숙하고도 따뜻한 질문들 앞에서, 오늘도 학교의 거룩한 일상은 묵묵히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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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