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기후 위기 대응의 정답을 찾아서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기후 위기 대응의 정답을 찾아서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 승인 2026-08-11 15:19
  • 신문게재 2026-08-12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김성수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한낮의 기온이 40도를 넘고, 밤에도 열기가 식지 않는 날들이 이어진다. 폭염은 더 이상 계절의 불쾌감만이 아니다. 옥외 활동을 위험하게 하고, 전력과 물, 식량 생산을 동시에 압박하는 복합 재난이다. 집중호우와 가뭄이 교차하는 상황까지 겹치면, 이는 단순한 '이상기후'가 아니라 사회의 생존 기반을 시험하는 기후위기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기후는 수없이 인간사를 흔들었다. A. J. 토인비가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고 했다지만, 기후 몫도 적지 않다. 그러나 기후만으로 나라가 망하고 문명이 흥했다고 하는 것은 편리하겠지만 부정확하다. 기후는 그 사회의 운명을 결정하는 단독 원인이 아니라, 내부에 축적된 취약성을 드러내고 증폭시키는 외부 충격이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이 점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비옥한 초승달이라 불린 이 지역은 기원전 2200년 전후, 근동 전역에 강수 체계가 흔들리며, 장기 건조화의 충격을 받았다. 이른바 200여년간 진행된 '4200년 사건'은 대기 순환과 강수 변화에 연관된 광역적 기후변동으로 이해되지만, 그 시기와 강도는 지역마다 달랐고, 제국의 붕괴를 기후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특히 빗물농업에 의존하던 북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생산 기반이 크게 흔들렸고, 정착지 이탈과 인구 이동이 이어졌다. 한편 남부의 관개농업 지대 역시 수로 확장과 배수 관리의 한계가 토양 염류화를 누적시켜 농업 회복력을 약화시켰다. 당시 이 지역의 아카드 제국의 해체는 가뭄이 홀로 초래한 결과가 아니었다. 광역적 건조화가 식량 조달과 조세, 군사력, 인구 이동을 압박했고, 제국의 정치·군사적 부담이 그 충격을 더 큰 위기로 전환시킨 복합적 결과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기의 크기만이 아니다. 충격이 닥쳤을 때 이를 흡수할 정보연결망, 공적대응역량 그리고 사회적 신뢰가 위기의 결과를 갈랐다.

그러나 역사는 붕괴의 기록만은 아니다. 기후 충격의 결과를 가르는 것은 충격의 크기만이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많은 대안과 연결망을 갖고 있었는가였다. 유라시아의 스텝과 교역로는 그 가능성과 위험을 함께 보여 준다. 가뭄이나 한랭화로 초원의 생산력이 흔들리면 유목 집단의 이동이 늘고 농경 사회와의 긴장과 충돌이 커지기도 했다. 그러나 유라시아의 넓은 교역망은 사람과 물자, 작물과 기술, 정보가 여러 경로로 이동할 여지도 만들었다. 연결은 전쟁과 전염병을 퍼뜨리는 통로이기도 했지만, 흉작과 재난의 충격을 분산하는 회복의 통로이기도 했다. 반대로 아메리카의 여러 사회도 수리시설, 계단식 경작, 저장 체계로 저마다의 환경에 정교하게 적응했다. 이를 완전히 단절된 세계로 볼 수는 없다. 다만 유라시아의 장거리, 다중 교역망과 비교하면, 서로 다른 생태권 사이에서 식량·가축·기술·정보를 조달할 연결의 밀도와 범위에는 제약이 있었다. 장기 가뭄이나 지역적 흉작이 닥쳤을 때 외부와의 연결은 위험을 들여오는 통로인 동시에 생존의 선택지를 넓히는 통로였다.

그렇다면 기후위기 속에서 '전화위복'이란 무엇인가. 기후가 번영을 선물했다는 뜻은 아니고, 위기 이전보다 더 유연하고, 더 공정한 사회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뜻일 것이다. 소빙기 속 네덜란드 공화국의 상대적 회복력은 중요한 힌트를 준다. 그들은 추위와 폭풍을 개인의 운명으로 떠넘기지 않고, 해운과 교역으로 식량 공급을 다변화하고, 운하와 도로를 연결하며, 도시의 구호 체계와 위험분산제도를 마련했다. 물론 당시의 네덜란드에도 불평등과 배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후 충격이 곧바로 기아와 사회 붕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는 개인의 선의나 사적 자산이 아니라 공적 연결망 속에서 만들어졌다.

오늘 한국의 폭염과 열대야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에어컨 한 대를 더 장만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공공정책을 대신할 수 없다. 냉방은 전력망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때에만 가능하고, 전력망은 공공 인프라다. 폭염 경보도 독거노인과 쪽방 주민, 옥외 노동자, 냉방 취약 가구에게 실제 보호로 이어질 때에만 의미가 있다. 무더위 쉼터, 그늘과 녹지, 안정적 전력·물 공급, 노동시간 조정은 특정계층에 베푸는 '혜택'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존 장치다. 기후라는 시험지에 공공의 준비를 사적 이익보다 뒤로 미루는 답안을 내는 사회에는, 재난이 운명처럼 찾아올 것이다. 더욱이 오늘의 기후변화는 수세기에 걸친 자연 변동과 달리, 지난 수십 년 인간 활동이 초래하고 가속시킨 변화다. 더 늦기 전에 답을 고쳐 써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급해진다.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트램 또 지연되나…8개월째 호남선 비개착공사 시공사 선정 난항
  2. 당진시 파견 충남 공무원, 농가보조금 약 12억 원 횡령…충남도, "엄정 조치할 것"
  3. 서산 사과농업 '스마트 전환' 본격화, 48억 투입해 미래형 과수원 만든다
  4. 대전시 충남도 공공기관 2차이전 정주여건 확보 시급
  5. 대전시 감사위 ‘트램 개통 지연’ 감사 착수
  1. 국립대 '등록금 0원' 검토… 대전 대학가 셈법 복잡
  2. 국가재정범죄 수사 대전중수청으로… 관세·국세 수사 전문인력 주목
  3. [주말사건사고] 폭염 속 대전·충남서 아파트 화재·정전 잇따라…주민 대피·불편
  4. 충청권 의대 7곳 신입생 10명 중 7명 ‘지역선발’… 대전도 69.7%
  5. 쓰레기와 악취에 몸살 앓는 으능정이거리

헤드라인 뉴스


교실 밖에서도 수능시계는 간다… 마지막 선택형 수능 D-100

교실 밖에서도 수능시계는 간다… 마지막 선택형 수능 D-100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D-100을 하루 앞둔 10일 대전의 한 스터디카페. 고3 수험생 강민주(19) 양은 태블릿PC로 온라인 강의를 들은 뒤 오답노트를 펼쳐 부족한 부분을 다시 확인했다. 지난주까지 학교에서 방학 중 자율학습에 참여했던 강 양은 이번 주엔 도서관과 스터디카페를 오가며 수능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인강으로 개념 이해가 부족한 단원을 다시 공부하고 필요한 과목은 단과강좌를 들으며 자신에게 맞춘 학습계획을 소화한다. 강 양은 "밖은 폭염이라는데 우리는 더위를 느낄 새도 없다"며 "남은 기간에는 모의평가에..

충남교육청 `교권침해 조사` 전문 조사관이 맡는다… 갈등조정관 위촉 계획도
충남교육청 '교권침해 조사' 전문 조사관이 맡는다… 갈등조정관 위촉 계획도

충남교육청이 교권침해 사안 조사관을 도입하면서 교사들이 맡던 조사 업무가 해소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갈등조정 전문가를 위촉해 교사들의 정상적인 회복도 지원할 방침이다. 도교육청 교권보호관추진단은 11일 '교권보호를 위한 사안조사관 및 갈등조정관 대상자 선발 협의회'를 개최했다. 이번 협의회는 제19대 충남교육감의 공약사업인 '교권보호관 추진'의 후속 조치로 마련됐다. 이번 협의회에서는 교육활동 침해 사안에 대해 조사하고, 갈등상황을 원만하게 조정할 수 있는 전문가 지원 체제를 구현할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교권보호관추진단이..

대전시 감사위 ‘트램 개통 지연’ 감사 착수
대전시 감사위 ‘트램 개통 지연’ 감사 착수

대전시 감사위원회가 막대한 사업비 부담과 개통 지연에 시민 불편을 초래한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사업에 대해 전격 감사에 착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인수위 점검 과정에서 민선 8기 트램 사업 지연 및 사업비 은폐 의혹에 이어 최근 일부 공구 시공사 선정 지연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그간 사업 추진 전반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도일보 2026년 8월 10일 자 1면 보도> 감사 결과에 따라선 트램 사업이 지연된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 속 공직사회 일각의 책임추궁 등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10일 중도일보 취재 결과 최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에어컨 파워냉방으로 틀었음’ ‘에어컨 파워냉방으로 틀었음’

  • 광복절 앞 태극기 나눔 광복절 앞 태극기 나눔

  • 쓰레기와 악취에 몸살 앓는 으능정이거리 쓰레기와 악취에 몸살 앓는 으능정이거리

  • 도심 속 시원한 물놀이 도심 속 시원한 물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