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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봉식당의 옻닭./사진=김영복연구가 제공 |
청양군(靑陽郡)하면 조운파 선생이 작사, 작곡한 '칠갑산'노래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칠갑산'이라는 노래는 1979년 윤희상이 처음 불렀고, 1989년 가수 주병선이 리메이크하여 부른 후 대 히트를 치며 전국에 알려 졌다.
칠갑산(七甲山) 정상에 서면 한티고개 쪽으로 대덕봉이 보이고 동북쪽으로 명덕봉과 서남쪽으로 이어진 정혜산이 보인다. 날이 맑으면 공주의 계룡산과 서대산 그리고 만수산과 성주산이 지척인 듯 보이고 서해 바다까지 조망되는 이 산정에서 능선은 여러 곳으로 뻗어 줄을 이었고 지천과 잉화달천(仍火達川)이 계곡을 싸고돈다.
칠갑산(七甲山)은 백제 때 명산대천에 제례하던 산천숭배사상과 연결되어 신성시된 산으로 전해지며, 이름도 천지만물(天地萬物)을 상징하는 칠(七)과 육십갑자의 첫 글자인 갑(甲)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칠갑산(七甲山) 서쪽 16리에 옛성의 터가 있는데 자비성(慈悲城)이라 부른다. 본래는 도솔성(兜率城)·자비성(慈悲城)이었다. 고 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칠갑산(七甲山)에는 모두 9개의 등산로가 있다.
장곡사, 대치터널, 천장호, 도림사지, 까치네유원지, 자연휴양림 등을 기점으로 정상에 이를 수 있다. 어느 산길을 택해도 칠갑산을 자연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한티고개에서 출발해 장곡사로 내려오는 코스로, 3시간 가량이 소요된다.
칠갑산(七甲山) 산자락으로 서북쪽의 대치천과 서남쪽의 장곡천·지천, 동남쪽의 잉화달천, 남쪽의 중추천, 동북쪽의 영화천이 흘러서 모두가 금강으로 합류한다.
이번 여행은 재경청양군향우회 윤종훈 회장과 동행하여 청양군 정상욱 부군수의 안내로 청양군 칠갑산로 217-6에 위치한 닭요리를 전문으로 한'비봉산장 전화 041-942-1062'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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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양 비봉식당./사진=김영복연구가 제공 |
대부분 닭도리탕하면 닭볶음탕을 말한다. 그러나 이 집의 닭도리탕은 볶음이 아니라 국물이 있는 그야말로 닭탕[鷄湯]이다.
일제강점기 언론인을 지낸 최영년(崔永年, 1859~1935)이 1925년에 발행한『해동죽지(海東竹枝)』에 한자로 '도리탕(桃李湯)'을 쓴 음식이 나오며, 평양의 특산물, 개성 북쪽인 관서(關西) 지방 음식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 2'에서는 "『해동죽지』에 나오는 '도리탕(桃李湯)'은 평양 성내의 명물로 닭을 반을 갈라 향신료를 넣고 반나절 동안 삶아 익힌 닭곰국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가 먹는 닭도리탕과는 전혀 다르다."라고 하였다.
어쩌면 청양 비봉식당에서 먹은 닭탕이 고춧가루만 안 들어갔다면 평양성내의 닭곰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1924년에 초판이 발행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 도리탕인 '닭볶음(鷄炒)'을 설명하며 "송도(松都)에서는 도리탕이라고 하고 양념으로 파와 후춧가루, 기름과 깨소금, 마늘 등을 넣고 만든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어쨌든 '닭도리탕'의 '도리'는 일본어 '鳥湯(とり)'로 본 것은 국어에 들어온 일본어 어휘에 밝은 분들의 일반적인 인식에 따른 것이다. 단어의 어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견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 'とり'에서 온 말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든 그렇지 않든 존재하고 있는 한, 그것을 '닭볶음'과 같은 우리말로 바꾸어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독특하고 맛있는 비봉식당의 닭도리탕을 오히려'닭탕[鷄湯]'으로 차별화하여 특화 시키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청양은 '칠갑산'외에도 지역 특산물인 고추와 구기자가 유명한다.
마침'청양 고추 구기자 축제'가 2026년 9월11일부터 13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청양 고추는 필자가 지면에 간단히 소개한 적이 있으니 이번에는 구기자(枸杞子)에 대해 소개해 볼까 한다. 청양 구기자는 1920년대 초 박관용 선생의 시험 재배를 계기로 본격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청양의 연간 구기자 생산량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국 생산량의 약 60% ~ 70% 이상 생산한다고 한다.
구기자(枸杞子)를 지골자(地骨子)라고도 하는데, 중국의 진시황제(秦始皇帝)가 불로장생약을 찾아 세계 각지로 신하를 보냈는데 그때의 궁중 비법으로 되어 있는 불로장수의 처방에는 오로환동환 (五老還童丸), 칠보미발단(七寶美髮丹), 연령고본환(年齡固本丸) 등의 세 가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처방에는 공통으로 구기자를 사용하고 있어 진시황제가 찾는 불로초가 바로 구기자라는 속설이 있다.
당(唐)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은「구기정 枸杞井」이라는 시를 썼는데,
"僧房藥樹依寒井(승방약수의한정)절간 찬 우물 가까이 있는 구기자나무
井有淸泉藥有靈(정유청천약유령)그 우물물 맑기도 하고 약효도 있구나.
翠黛葉生籠石甃(취대엽생롱석추)미인의 눈썹같은 잎사귀 우물벽돌 감싸고
殷紅子熟照銅甁(은홍자숙조동병)여문 진홍색 열매는 구리병에 비치네.
枝繁本是仙人杖(지번본시선인장)무성한 가지는 본래 신선들의 지팡이요
根老能成瑞犬形(근로능성서견형)오랜 뿌리는 상서로운 개의 모습이라네.
上品功能甘露味(상품공능감로미)최상품의 효능은 단 이슬 맛이니
還知一勺可延齡(환지일작가연령)의외로 한 구기 마시면 장수한다네."
이 시에 절의 뜰에 큰 우물이 있고 그 주위에 큰 구기자 노목이 있었고 그 뿌리가 우물을 통과해 나와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 우물물을 마시고 무병장수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였다.
구기자에는 스코폴레틴(Scopoletin), 베타-사이토스테롤(β-Sitosterol), 베타-글루코시드(β-Glucoside) 등이 함유되어 있어 강장, 보양 등의 효능이 있으며 간에 이롭다.
적용 질환으로는 신체가 허약한 증세, 양기부족, 신경쇠약, 폐결핵, 당뇨병, 만성간염, 현기증, 시력감퇴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처럼 우수한 약효를 인정 받게되어 궁중에 진상까지 한 기록이 보인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충청도 편에 공물[貢]로 구기자(枸杞子)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구기자(枸杞子)는 충청도에서 조선 초부터 이미 재배하여 공물로 바쳤음을 알 수가 있다.
당(唐)나라 시인 육귀몽(陸龜蒙)이 일찍이 집의 앞뒤에 구기자(枸杞子)와 국화(菊花)를 심어 놓고 봄, 여름으로 그 지엽(枝葉)을 채취해 먹으면서 [기국부(杞菊賦)]를 지었으므로,
중국 북송(宋) 시대의 시인·문장가·정치가 소식(蘇軾) 동파(東坡 1037년 ~ 1101년)또한 육귀몽(陸龜蒙)의 [기국부]를 모방하여 [후기국부(後杞菊賦)]를 지었는데, "吾方以杞爲糧(오방이기위량)나는 바야흐로 구기자를 양식으로 삼고, 以菊爲 (이국위구)국화를 마른 양식으로 삼아서, 春食苗夏食葉秋食花實冬食根(춘식묘식엽추식화실동식근)봄에는 싹을 먹고, 여름에는 잎을 먹으며, 가을에는 꽃과 열매를 먹고, 겨울에는 뿌리를 먹으련다."라고 하였다. 『동파전집(東坡全集)』 3권(卷33)
누구의 작품인지는 특정되지 않지만, 조선 정조(正祖) 원년(1777)에 유금(柳琴 1741~1788)이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의 시를 모아 엮은 『사가시집(四家詩集)』13권 시류(詩類)에 구기자(枸杞子)를 읊은 것이 있는데,
"靑枸杞滿山中(청총구기만산중)새파란 구기자나무가 산중에 가득하여 脩蔓如龍結子紅(수만여룡결자홍)긴 넝쿨은 용 같고 맺은 열매는 빨갛네 煮茗沈渾細事(자명침제휘세사)차 끓이고 나물 무침은 다 작은 일이지만 長生自可策奇功(장생자가책기공)불로장생이 절로 큰 공을 기록할 만하네"
이 시(詩)의 자명침제(煮茗沈)는 구기자(枸杞子)의 잎은 차를 끓여 마시기도 하고, 나물을 무쳐 먹기도 하는데, 여기서 불로장생을 말한 것은 특히 구기자가 보약재로 쓰이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조선 중기 문신 장유(張維,1587~1638) 역시 문우(文友)였던 임동야(林東野)를 위해 지은 「만휴당 십육영(休堂十六詠 爲林東野賦)」'환제 약초(環堤藥草)'에
"狗杞蘇各占春(구기계소각점춘)각기 봄빛 차지한 구기자(枸杞子)며 소합향(蘇合香) 滿畦煙雨綠初(만휴연우녹초균)밭에 가득 안개비 속에 이제 막 푸릇푸릇 慇懃不比閑花草(은근불비한화초)은근한 주인의 정 한화야초(閑花野草)에 비기리요 康濟須知用意眞(강제수지용의진)병을 구제할 진실한 뜻 모름지기 알지로다."
구기자(枸杞子)가 비록 밭에 심어 졌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저절로 자라는 야생 화초인 한화야초(閑花野草)와 같고 병을 구제할 귀한 열매라는 의미가 담긴 시다.
조선 중기 실학자 지봉(芝峰) 이수광(1563~1628)이 1614년에 펴낸『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구기자주와 관련된 고사가 실려 있다.
옛날 하서(河西)로 가던 사신이 실제 나이는 395세이지만 16~17세 정도로 보이는 여인을 만났다. 장수와 불로의 비결을 궁금해하는 사신에게 여인은 구기자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 방법대로 만든 구기자주를 먹고 사신은 300년을 살고도 늙지 않았다. 구기자주를 13일간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왕성해지며, 다시 100일을 마시면 얼굴이 고와지고 백발은 다시 검어지며 빠졌던 이가 다시 나서 땅 위에 있는 신선이 된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구기자(枸杞子)의 약효가 알려지면서 약재(藥材)는 물론 식품으로도 유용하게 쓰여졌다.
조선 후기 실학자 풍석 서유구(徐有, 1764~1845)가 약 36년에 걸쳐 저술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정조지(鼎俎志)」에 '구기채(枸杞菜, 구기자나물)만들기'와 '枸杞粥方(구기죽방)구기죽 쑤기'가 나와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 심대윤(沈大允 1806~1872)의『시경집전변정(詩經集傳辨正)』에 " 저 북산(北山)에 올라가 구기자 나물을 뜯노라"라는 시(詩)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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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봉식당의 닭도리탕./사진=김영복연구가 제공 |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암(流巖) 홍만선(洪萬選:1643년~1715년)의 『산림경제(山林經濟)』제1권 복식(服食)편에 '구기자주(枸杞子酒) 담는 법이 나오는데, '구기자(枸杞子)는, 봄과 여름에는 잎을 채취하고 가을에는 줄기와 열매를 채취하여 줄기는 마땅히 굳은 껍데기를 쓴다.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더해진다.
구기자를 술에 담가 먹는 방법은, 정월 상인일(上寅日 첫 번째 인일(寅日))에 뿌리를 캐서 잘게 썰어 응달에 말린 것 한 되를 2월 상묘일(上卯日 첫 번째 묘일(卯日))에 청주(淸酒) 한 말에다 담갔다가 만 7일이 되면 찌꺼기는 버리고 새벽마다 먹는다. 식후에 먹어서는 안 된다. 4월 상사일(上巳日)에 잎을 채취하여 5월 상오일(上午日)에 술을 담그고, 7월 상신일(上申日)에 꽃을 채취하여 아마 줄기일 것이다. 8월 상유일(上酉日)에 술에 담그고, 10월 상해일(上亥日)에 열매를 채취하여 11월 상자일(上子日)에 술에 담근다고 나온다.
『고사신서(攷事新書)』·『규합총서(閨閤叢書)』·『주찬(酒饌)』·『승부리안(陞付吏案)』『주방문(酒方文) 』등에서는 구기자를 갈아서 술에 담는 방법을 소개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바탕으로 청양군농업기술센터를 중심으로 구기자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개발하여 레시피를 공유하고 있다.우선 대표적인 것으로 구기자밥, 구기자영양죽, 구기자잎김치, 구기자약식, 구기자빵 등이다.
다만 이러한 음식들이 얼마만큼 지역을 대표 할만한 향토음식으로 대중성을 갖출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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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화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