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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 단속사지 사적 지정을 위한 학술대회<사진=경상문화유산연구원 제공> |
이번 대회 핵심은 현재 보물로 지정된 동·서 삼층석탑을 넘어 건물터와 지하 유구를 포함한 절터 전체 가치를 밝히는 데 있다.
단속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7년인 748년 작은 절을 넓혀 세운 뒤 765년 다시 크게 확장된 것으로 분석됐다.
조원영 경남도문화유산전문위원은 단속사가 처음에는 법상종 계열 사찰로 출발했지만 신행선사가 머물면서 북종선의 대표 사찰로 성격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속사가 산청의 옛 절 한 곳을 넘어 신라 불교가 교학 중심에서 선종으로 이동한 흐름을 보여주는 현장이라는 의미다.
현덕만 경상문화유산연구원은 2014년부터 진행한 5차례 발굴조사를 토대로 금당과 쌍탑 등 중심 건물 위치가 폐사 때까지 큰 틀에서 유지됐다고 밝혔다.
특히 1654년의 연도가 새겨진 기와가 확인돼 단속사가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는 고고학적 근거도 확보됐다.
조원창 KH정책연구원장은 9∼10세기 건물 기단과 돌 다듬기 방식을 비교해 당시 사찰 건축기술이 지역 간에 활발히 오갔다고 분석했다.
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은 동·서 삼층석탑이 중앙의 쌍탑 양식을 지리산권과 호남지역으로 확산시키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됐다고 평가했다.
현재 두 삼층석탑은 각각 보물로 지정돼 있지만 단속사지 전체는 아직 국가 사적이 아니다.
토론에서는 석탑을 813년 무렵 세웠다는 견해와 8세기 말 왕실 후원 가능성, 두 탑의 동시 조성 여부를 두고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학술대회가 사적 지정을 위한 근거를 넓힌 것은 분명하다.
다만 연구자 견해를 하나의 결론으로 굳히기보다 발굴자료와 문헌을 더 촘촘히 맞추는 과정이 남았다.
산청군은 앞으로 지정 대상 구역과 보호 범위를 정하고 주민 의견 수렴, 보존·정비계획 마련 등 실제 지정 절차로 연구 성과를 이어가야 한다.
사적 지정은 이름 하나를 더 얻는 일이 아니다.
두 석탑만 남은 절터를 천년 동안 이어진 산청 불교문화의 현장으로 되살리는 일이다.
주민이 이해하고 찾을 수 있는 역사교육과 문화관광 자산으로 만드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산청=김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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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