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의 더위는 사람들이 기피하지만 농사에는 더없이 필요하다. 伏中(복중)에는 벼가 매일 한 살씩 먹는다 할 정도로 키가 쑥쑥 자란다. 벼는 줄기마다 마디가 셋 있는데 복날마다 한 마디씩 생기며 그것이 벼의 나이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마디가 셋이 되어야 비로소 이삭이 패게 된다.
아무튼 이때쯤 되면 사람들은 산이나 바다로 避暑(피서)갈 계획을 세우고, 더위에 너무나 지친 나머지 사람들은 원기회복을 위해서 保養(보양) 食品(식품)을 찾게 된다. 지금은 그러한 풍조가 많이 사라졌지만 농촌에서는 納凉(납량)으로 川獵(천렵)도 즐겼다. 삼복의 복(伏)자가 '개견(犬)'자가 있어서인지 몰라도 복중에는 개들의 수난시기다. 사실 관련이 없는데도 말이다.
복날을 혹자는 '서기제복(暑氣制伏)'의 뜻으로 풀이하고 있지만, 복(伏)의 의미는 '복종시킨다'는 제복(制伏)의 뜻이 아니라 '숨는다'는 은복(隱伏)의 뜻이어야 한다.
책력을 보면, 伏日(복일)을 初伏(초복), 中伏(중복), 末伏(말복)의 삼복(三伏)으로 나누었다. 초복에서 말복까지가 伏中(복중)이다. 복일은 하지 후 세 번째 돌아오는 庚日(경일)을 초복으로 시작해서 10일 뒤인 다음 경일을 중복, 입추 후 첫 경일을 말복일로 정하였다. 중복과 말복 사이는 말복이 입추를 반드시 지나야 하므로 20일이 경과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를 越伏(월복)이라 한다. 올해는 해당이 없다.
하여간 삼복은 경(庚)과 관련이 있으므로 '三庚(삼경)'이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삼복일을 경일로 정한 데에는 깊은 뜻이 있다. 경은 오행으로 금(金)이요 가을을 가리킨다. 큰 틀에서는 후천의 시작을 의미한다. 여름은 염천의 불(火)로 만물을 기르고 가을은 서늘한 금으로 만물이 결실을 이루는데, 하지 후부터 음기(陰氣)가 생하기 시작해서 입추가 지나 금기(金氣)로 만물이 열매를 맺게 된다.
가을철 수확의 즐거움은 금이 아니고서는 바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금(金)은 자체로는 쓸 수 없다. 용광로의 뜨거운 불 속에 들어가야만 용도에 맞게 쓸 수 있다. 불 속에서 달궈져야 갑(甲)꼴, 을(乙)꼴로 임의대로 만들어 쓸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금화(金火)가 사귀는 것을 금화교역(金火交易)이라 하고, 이러한 금의 성질을 종혁(從革)이라고 말한다.
사계절이 모두 혁신(革新)의 의미를 갖지만 특히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그 사이는 금화(金火) 상극(相剋)으로 대변혁의 시기가 된다. 이때에 염천 더위 속에서 금은 한껏 달궈져야 한다. 하지 후 삼복에 이를 때까지 금을 성급하게 사용해서는 안된다. 한 번 숨고 또 숨고 마지막 세 번까지 인내하면서 땅 속에 숨겼다가 입추 후에 꺼내서 쓰라는 뜻이다. 그래야만 가을철 수확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알던 모르던 사람들이 피서(避暑)하고 보신(保身)하려는 것은 장차 경금(庚金)을 쓰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상극을 상생으로 연결시켜 주는 秘法(비법)이며 이것이 바로 옛날 선현들이 삼복제를 정한 秘訣(비결)인 셈이다. 작게는 삼복을 통해서 여름에서 가을로 무사히 넘어가는 원리를 설명한 것이지만, 크게는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가는 이치로 밝힌 것이다.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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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국 주역학자·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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