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 달 특집] 8발의 총격에도 놓지 못한 미카, 김재현 기관사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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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의 달 특집] 8발의 총격에도 놓지 못한 미카, 김재현 기관사를 기억하며

증기기관차 미카3-129 몰고 6.25 당시 딘 소장 구출작전 투입 판암동과 세천역 인근서 순직, 철도인 최초로 서울 현충원 안장

  • 승인 2016-06-24 10:26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3. 철도인 최초 유공자 김재현 기관사
1. 미카3-129 6.25전쟁 포화속으로 2. 딘 소장 구출작전, 0720 대전으로

상행선과 하행선이 교차되는 길목에 비석하나 있다. 남과 북으로 곧게 뻗은 기차선로를 따라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바람이 불면 시원하고, 내리 쬐는 햇빛도 한껏 품을 수 있지만 망부석처럼 굳어진 세월의 무게감은 주위를 숙연하게 만든다. 김재현 기관사 순직비.

▲판암차량기지국 문상영 과장이 기차선로 방향 문을 열고 있다. 뒤쪽으로 순직비가 살짝 보인다.
▲판암차량기지국 문상영 과장이 기차선로 방향 문을 열고 있다. 뒤쪽으로 순직비가 살짝 보인다.

“이 문을 열면 순직비가 보일 겁니다.”
6월13일 대전도시철도공사 판암차량기지에 방문했다. 곧 출발을 앞둔 반석행 지하철 한 대가 멈춰 서 있는 선로를 넘어 키보다 높은 철담장 앞에 섰다. 판암기지 문상영 과장은 뻑뻑한 자물쇠를 연다.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자 때마침 상행선 방면으로 열차가 재빠르게 지나간다. 정적. 하행선 철로 위쪽에 비석 하나가 보인다. 바로 김재현 기관사의 순직비다.

순직비 주인공 김재현은 철도인 최초 공훈자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대한민국 기관사다. 1950년 전쟁 중 딘 소장 구출작전에 참여했다가 가슴에 총탄 8발을 맞고 현장에서 순직했는데, 그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가감변(증기기관차 속도 조절장치)을 놓지 못했다. 작전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재현 기관사가 미카3-129를 끌고 대전역으로 향했던 것은 딘소장을 구해야만 대전과 이 나라가 살 수 있다는 간절한 믿음 때문이었다.

▲왼쪽은 1946년 김재현 기관사의 모습. 오른쪽은 순직비 제막식 모습이다. 사진=코레일 제공
▲왼쪽은 1946년 김재현 기관사의 모습. 오른쪽은 순직비 제막식 모습이다. 사진=코레일 제공

“딘 소장 구출작전, 제가 하겠습니다.”
1950년 7월20일 이 한마디에 구출작전은 시작됐다. 대전전투에서 열세로 몰린 딘소장은 전 부대에 퇴각 명령을 내렸고 대전을 빠져나오다 실종되고 만다. 영동에 집결한 미군들은 딘 소장구출작전을 세우고 이원역에서 대전역까지 증기기관차를 운행해줄 기관사를 급구한다. 여기에 선발된 김재현 기관사, 황남호 본무조사, 현재영 보조조사가 미군 30명과 대전역으로 향했다. 그러나 대전역과 세천, 판암에 매복해 있던 북한군의 공격은 거셌고 돌아오던 길목에서 미카3-129는 수백발의 포탄 공격을 받았다. 33명이 출발했지만 겨우 2명과 미카만이 돌아왔다.

▲판암철도기지국과 경부선 철로 사이에 서 있는 김재현 기관사의 순직비
▲판암철도기지국과 경부선 철로 사이에 서 있는 김재현 기관사의 순직비

▲순직비 뒤로 상행선 무궁화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순직비 뒤로 상행선 무궁화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판암차량기지국에 있는 김재현 순직비는 1962년 12월 5일 세워졌다. 대전철도국 직원들이 건립을 주도했고 반공유적 부활운동 충남지부와 중도일보사가 후원했다.

비가 세워진 곳은 김재현 기관사가 순직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이다. 기차 선로변에 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순직비를 보거나 추모할 수는 없다. 기차를 타고 지나가더라도 워낙 시속이 빠르기 때문에 스쳐지나갈 뿐이다.

증기기관차 미카3-129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딘소장과 김재현 기관사로 이어진다. 이야기는 결코 따로 분리될 수 없다. 6.25가 만든 참담한 비극이지만 그들이 보여준 애국심과 의지는 훌륭한 역사로 남았다. 대다수가 이 글을 읽고 나서야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 무릎을 치겠지. 이제는 몰랐던 역사가 아닌 나도 알고 있는 역사가 되길 바란다.

▲기관사 홍성표씨가 외할아버지를 추모하며 두고간 화환도 보인다.
▲기관사 홍성표씨가 외할아버지를 추모하며 두고간 화환도 보인다.

순직비 아래 화환 여러개 놓여 있다. 코레일 관계자, 기관사들, 어느 단체, 그리고 외손자 기관사 홍성표. 노란색과 하얀색 국화가 이제는 조금 시들었지만 그래도 개중 가장 예쁜 화환을 보낸 사람은 외손자 홍성표씨였다. 얼굴도 모르는 외할아버지지만 외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수없이 들었을 그 이름. 외할아버지의 직업과 꿈을 이어받았으니 어쩌면 하루 한번 이곳을 스쳐지나갈지도 모르겠다.

선로변에서 철도안전을 지키는 판암기지국 직원 한명이 30분가량 이어진 촬영 내내 묵묵히 업무를 수행했다. 살며시 다가가 물었다.

“저 순직비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세요?”
“알죠, 우리가 매일 닦고 꽃도 갈아주는데.”
질문이 너무 쉬웠던 걸까. 멋쩍은 듯 웃는 그분의 얼굴에서 김재현 기관사를 향한 존경심과 고마움이 한껏 묻어났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66년이 흘렀다. 내가 철도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후손들이 여기 있고, 당신들을 기억하는 우리가 존재함을 오늘에서야 비로소 고한다.

“편히 쉬소서.”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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