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 부치지 못한 편지 2

  • 오피니언
  • 우난순의 필톡

[우난순의 필톡] 부치지 못한 편지 2

  • 승인 2019-05-22 10:01
  • 신문게재 2019-05-23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노무현
10년 전 이날이었습니다. 2009년 5월 23일. 파란 하늘과 달콤한 아카시아꽃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5월이었습니다. 눈부신 햇살은 바람에 나부끼는 신록을 더욱 빛나게 했지요. 그런 찬란한 봄에 당신은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습니다. 마침 그날은 대전충남기자협회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게 무슨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투신자살했다고? 운동장에서 신나게 축구, 족구, 달리기하며 즐거워야 할 기자들은 충격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저에게 삶은 당연한 거였습니다. 죽음은 실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죽음으로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죽음이란 뭘까라는 철학적 명제 앞에서 혼란스러웠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2008년 2월 25일 당신은 퇴임식에서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청중을 향해 "여러분, 정말 한마디 합니다. 야, 기분 좋다!" 봉하마을로 내려간 당신은 정말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손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마을 길을 달리는 모습과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 한 잔 나누는 밀집 모자 쓴 당신은 전직 대통령이 아닌 영락없는 시골 농부였습니다. 꾸밈없고 소탈한 당신을 만나기 위해 서민들의 발길이 봉하마을로 이어졌지요. 이런 당신을 눈엣가시로 여긴 사람들은 참을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국세청, 정치검찰의 작당모의로 결국 당신은 '죄인 노무현'이 되어 검찰에 출두했지요. 방송은 헬기를 띄워 생중계에 열을 올렸습니다. 당신이 포토라인 앞에 서자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불꽃놀이 하듯 터졌습니다. TV 화면에 비친 당신의 얼굴을 저는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습니다. 목이 메었습니다.



사실 당신을 죽인 건 언론이었습니다. 기득권층의 대변지 수구언론은 처음부터 당신을 못 잡아 먹어 안달이었습니다. 왜냐면 당신은 아웃사이더이자 비주류였으니까요. 자신들에게 걸맞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가난한 상고 출신의 '촌놈'이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대통령이 돼서 보수언론과 맞짱 뜨겠다고 하니 괘씸했던 겁니다. 썩어빠진 엘리트주의에 젖은 수구언론은 자칭 '대통령을 만들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거대권력입니다. 국민이 다 아는 BBK 설립자 이명박이란 범법자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줬으니까요. 그런 그들에게 맞선 당신은 반드시 손을 봐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칼럼에서 "노씨 등이 너무 까불었기 때문에" 혼나는 거라고 했습니다. 수구언론과 검찰은 이미 결론을 짜맞춰놓고 사실관계 확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하이에나처럼 당신을 사정없이 물어뜯으며 희희낙락했습니다. 진보언론과 나머지 언론들도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었지요.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에게 정치는 뭐였나요? 당신은 지역갈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막상 대통령이 돼보니까 그게 쉽지 않았을 겁니다. 고군분투하던 당신은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대통령 못해먹겠다"고까지 했지요. 원래 정치는 비루합니다. 그리고 폭력적입니다. 음모와 간계, 술책과 모략. 그게 정치의 생리입니다. 정치는 자본주의의 성질과 닮았습니다. 권력과 돈은 한통속이니까요.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사회주의를 꿈꾸며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탐욕적이어서 평등한 세상은 불가능합니다. 오죽하면 당신은 "권력은 시장이 가져갔다"며 한탄했을까요. 노무현 대통령님,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치가 기여하는 것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중도초대석] 임정주 충남경찰청장 "상호존중과 배려의 리더십으로 작은 변화부터 이끌 것"
  2. "내년 대전 부동산 시장 지역 양극화 심화될 듯"
  3. [풍경소리] 토의를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는 아름다운 사회
  4. 대전·세종·충남 11월 수출 두 자릿수 증가세… 국내수출 7000억불 달성 견인할까
  5. SM F&C 김윤선 대표, 초록우산 산타원정대 후원 참여
  1. 코레일, 철도노조 파업 대비 비상수송체계 돌입
  2. 대전 신세계, 누적 매출 1조원 돌파... 중부권 백화점 역사 새로 쓴다
  3. 대전 학교급식 공동구매 친환경 기준 후퇴 논란
  4. LH, 미분양 주택 매입 실적…대전·울산·강원 '0건'
  5. [특집] CES 2026 대전통합관 유레카파크 기술 전시 '대전 창업기업' 미리보기

헤드라인 뉴스


충남도, 18개 기업과 투자협약… 6개 시군에 공장 신·증설

충남도, 18개 기업과 투자협약… 6개 시군에 공장 신·증설

국내외 기업 투자 유치를 핵심 과제로 추진 중인 충남도가 이번엔 18개 기업으로부터 4355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끌어냈다. 김태흠 지사는 23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김석필 천안시장권한대행 등 6개 시군 단체장 또는 부단체장, 박윤수 제이디테크 대표이사 등 18개 기업 대표 등과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18개 기업은 2030년까지 6개 시군 산업단지 등 28만 9360㎡의 부지에 총 4355억 원을 투자해 생산시설을 신증설하거나 이전한다. 구체적으로 자동차 기계부품 업체인 이화다이케스팅은 350억 원을 투자해 평택에서..

[기획] 백마강 물길 위에 다시 피어난 공예의 시간, 부여 규암마을 이야기
[기획] 백마강 물길 위에 다시 피어난 공예의 시간, 부여 규암마을 이야기

백마강을 휘감아 도는 물길 위로 백제대교가 놓여 있다. 그 아래, 수북정과 자온대가 강변을 내려다본다. 자온대는 머리만 살짝 내민 바위 형상이 마치 엿보는 듯하다 하여 '규암(窺岩)'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이 바위 아래 자리 잡은 규암나루는 조선 후기부터 전라도와 서울을 잇는 금강 수운의 중심지였다. 강경장, 홍산장, 은산장 등 인근 장터의 물자들이 규암 나루를 통해 서울까지 올라갔고, 나루터 주변에는 수많은 상점과 상인들이 오고 가는 번화가였다. 그러나 1968년 백제대교가 개통하며 마을의 운명이 바뀌었다. 생활권이 부여읍으로 바..

이춘희 전 세종시장, 2026년 지방선거 재도전 시사
이춘희 전 세종시장, 2026년 지방선거 재도전 시사

이춘희 전 세종시장이 23일 시청 기자실을 찾아 2026년 지방선거 재도전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경 보람동 시청 2층 기자실을 방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입장을 공식화했다. 당 안팎에선 출마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졌고, 이 전 시장 스스로도 장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 내 시장 경선 구도는 이 전 시장을 비롯한 '고준일 전 시의회의장 vs 김수현 더민주혁신회의 세종 대표 vs 조상호 전 경제부시장 vs 홍순식 충남대 국제학부 겸임부교수'까지 다각화되고 있다. 그는 이날 "출마 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 신나는 스케이트 신나는 스케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