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칼럼] 2019년을 한 줄로 요약하면?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 칼럼] 2019년을 한 줄로 요약하면?

  • 승인 2019-05-30 16:54
  • 신문게재 2019-05-31 22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이승미 박사
이승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벌써 5월 마지막 날이다. 늘 바빴던 것 같지만 정작 되돌아보면 기억할만한 순간은 거의 없다. 고대 그리스인은 시간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필멸의 존재 인간이 속절없이 떠밀려 내려가는 수평적 시간 크로노스와 벼락처럼 내리꽂혀 영원히 기억되는 순간인 카이로스로.

과학사의 카이로스는 언제일까? 아이작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바라보며 만유인력을 떠올린 때, 막스 플랑크가 작은 상수 하나를 만들며 양자개념을 도입한 때, 리제 마이트너와 오토 프리슈가 함께 핵분열을 생각해 낸 순간, 그리고 1875년 5월 20일. 이 날은 미터협약, 즉 통일된 단위를 사용하자는 국제 조약이 체결된 때다. 17개국이 참여한 인류 최초의 국제도량형 합의에는 무역 편익이라는 상업적 목적뿐 아니라 인류 평등 실현이라는 정치적 의미도 있었다. 예전처럼 왕의 팔 길이 같은 자의적 기준이 아니라, '지구 둘레 사천만 분의 일'을 길이 단위 1 미터로 정해 지구인 모두에게 보편타당하게 적용하였기에. "정복은 순간이지만 이 업적은 영원하리라."던 정복자 나폴레옹의 말대로, 길이(미터, m)에서 시작된 국제공통의 단위계는 다른 단위로도 확장되었다. 질량(킬로그램, kg), 시간(초, s), 전류(암페어, A), 광도(칸델라, cd), 온도(켈빈, K), 물질량(몰, mol)까지 일곱 가지 기본단위를 SI(Systeme International)라 부른다. 다른 모든 단위는 SI를 조합해서 만든다. 예를 들어 속력은 길이를 시간으로 나눈 유도단위다.



SI는 과학문명사회의 약속이다. SI는 미터협약 이후로도 새로 발견한 과학지식과 기술 수준에 맞춰 더욱 정확하게 다시 정의되기를 반복했다. 길이 단위는 금속 자 국제미터원기(1889년)에서 빛의 파장을 이용한 값(1960년)으로, 다시 빛이 진공 중에서 1/299792458 초 동안에 진행한 경로의 길이(1983년)로 재정의 된 바 있다. 올해는 측정과학에서 매우 특별한 해다. 세계측정의 날인 2019년 5월 20일부터 일곱 가지 SI 중에 무려 네 가지 단위가 재정의 발효되었다. 이렇게 많은 단위가 한꺼번에 바뀌기는 인류 역사상 처음일뿐더러, 이번에 재정의 된 질량, 전류, 온도, 물질량, 네 단위로서는 최후의 재정의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이들은 측정과학의 궁극적 목표인 불변의 단위에 도달했다. 인류의 과학기술 성과인 변하지 않는 기본 상수들을 고정하고, 이로부터 단위를 재정의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킬로그램으로서, 인공물을 기준 삼던 킬로그램이 플랑크 상수를 고정하여 재정의되었다. 1889년 국제킬로그램원기가 승인된 지 무려 130년 만이다. 설령 우주 해적이 지구에 침략해 킬로그램원기를 탈취해간대도 질량 단위를 잃을 걱정이 없는 셈이다. 전류는 기본전하, 온도는 볼츠만 상수, 물질량은 아보가드로 수로부터 정의된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홈페이지(http://www.kriss.re.kr)의 '표준이야기'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키나 몸무게 같은 일상 측정값이 갑자기 달라지는 건 아니다. 심각한 사회 혼란을 막으려면 기본단위를 재정의하더라도 측정값의 연속성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정확한 측정을 바탕으로 밝혀낸 과학지식으로 더욱 풍요롭고 편리해져 왔다. 광속을 고정하고 더욱 정확해진 시간과 길이 측정이 GPS를 일상으로 끌어냈듯, 불변의 단위를 활용한 측정은 인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2019년은 인류의 달 착륙 50주년이자 일반상대성 이론입증 100주년,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탄생 150주년이다. 측정과학사에서 올해는 기본단위 재정의 해로 기록되리라. 2019년 5월 20일 발효된 기본단위 재정의, 과학의 카이로스를 올해 우리는 함께하고 있다. /이승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베일 벗은 대전역세권 개발계획…내년 2월 첫삽 확정
  2. 대학 경쟁시킨 뒤 차등 지원?…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 놓고 '설왕설래'
  3. 전국 학교 릴레이 파업… 20일 세종·충북, 12월 4일 대전·충남
  4. [기고] 디지털포용법과 사회통합
  5. 어기구 의원, ‘K-스틸법’ 후속 국가재정법 개정안 대표 발의
  1. 양상추 가격 급등 현상에 대전 소상공인도 직격탄... 높아진 가격에 한숨만
  2. '사건 25%↑' 대전경찰, 우수부서 찾아 시상…서부署·중부署 등
  3.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4. 대전상의-국정원 '기업 기술유출 예방 설명회' 개최
  5. 설동호 교육감 시정연설 "모두 균등한 기회 누리는 든든한 대전교육 만들 것"

헤드라인 뉴스


대전만 없는 `공립형 대안학교`… 학교설립 공약 끝내 실패

대전만 없는 '공립형 대안학교'… 학교설립 공약 끝내 실패

설동호 대전교육감의 10여년 숙원이었던 공립형 대안학교 설립 공약이 결국 이행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지 확보에 오랜 시간을 소모했지만 끝내 추진에 실패하면서 차기 교육감의 과제로 넘어가게 됐다. 20일 대전교육청에 따르면 올 초까지 추진했던 유성구 복용동 설립이 결국 무산됐다. 당초 AI 특성화 대안학교를 설립하려던 계획이었지만 교육부가 1월 중앙투자심사에서 대안교육 중심의 학교 설립을 주문하면서 제동을 걸었다. 대안학교 성격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교육청은 주민 설득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다른 부지를 알아보겠다고 물러..

특수공집방·국회법 위반 이장우 대전시장·김태흠 충남지사 유죄
특수공집방·국회법 위반 이장우 대전시장·김태흠 충남지사 유죄

국회 패스트트랙(Fast Track: 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으로 기소된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당시 대표였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원내대표였던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 11부(장찬 부장판사)는 19일 오후 2시 특수공무집행방해와 국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황교안 전 총리와 나경원 의원, 이장우 시장과 김태흠 지사 등 26명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나 의원은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벌금 2000만원,..

[단독] 대전 법동 으뜸새마을금고, 불법 선거 논란
[단독] 대전 법동 으뜸새마을금고, 불법 선거 논란

사상 첫 직선제로 이사장을 선출한 대전 대덕구 법동 으뜸새마을금고가 불법 선거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대해 수사를 벌인 경찰은 최근 사전 선거 운동 혐의 등으로 올해 7월 당선된 이사장 A씨를 검찰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경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올해 법동 으뜸새마을금고 이사장에 선출된 A씨는 공식 선거 운동 예정일 전부터 실질적인 선거유세를 펼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는 2021년 제6대 선거까지 간선제로 진행됐지만, 올해 치러진 제7대 선거는 금고 설립 이후 처음으로 전체 회원이 투표에 참여했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