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국정 교과서의 기억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국정 교과서의 기억

장수익 한남대 교수

  • 승인 2019-06-06 07:41
  • 원영미 기자원영미 기자
장수익
장수익 한남대 교수
50대 이상에게 영희와 철수만큼 낯익은 이름도 없을 것이다. 국어교과서의 주인공이었던 이들은 세월이 지나도 어린 시절을 대표하는 정겨운 기억이다. 그러나 이런 기억의 배경에는 국정 교과서로 대표되는 교육의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는 것도 같이 생각해야 한다.

국정 교과서란 국가가 직접 만든 교과서지만 교육 관할 정부 부처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정권에 의해 그 내용이 좌우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국정 교과서만 있던 시절, 국어나 사회, 도덕 같은 과목의 교과서에는 알게 모르게 정권을 위한 논리가 진하게 개입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헌법을 설명한 교과서가 그랬다. 필자 역시 정치경제 교과서에서 유신헌법의 역사적 타당성(?)을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명목으로 달달 외웠던 기억이 있다. 한마디 하자면, 그 교과서를 썼던 이들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독재를 정당화한 행위에 대해 언제든 사죄해야 할 것이다.

2000년대 이후 국정 교과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누구든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 검인정 교과서의 시대가 열렸다. 교육 내용과 방법에서 기준을 충족하면 교과서가 되는 자유가 보장된 것이다. 이는 정권의 이해관계나 이데올로기에 따라 교육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민주적 정신에 따른 조치였다.



그러나 검인정 제도가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이명박 정권에서 국사 교과에 당시 정권 논리에 맞는 뉴 라이트 식 사관을 넣으려 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를 위해 무리하게 교육과정 전체를 뜯어고치려 했다. 국사 교과서의 검인정 기준만 바꿀 수 없으니 아예 모든 교과의 검인정 기준을 바꾸면서 국사교과의 검인정 기준도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2007년에 개정된 교육과정이 2009년에 개정되고 2011년에 다시 개정된 이유일 것이다. 그리하여 출판계는 5년 동안 세 번이나 교과서를 새로 만드는 홍역을 치러야 했고, 교사와 학생들도 모든 과목에서 고학년과 저학년이 서로 다른 교과서를 가르치고 배워야만 했다.

이후 박근혜 정권은 아예 노골적으로 국사 교과서를 국정 교과서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교학사의 국사 교과서는 거의 채택되지 않았고, 대통령 탄핵과 함께 그 모든 시도도 무산되었다. 앞으로도 어떤 정권에서든 이 같은 시도는 다시는 없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하나 더 말할 것은 요즘도 실질적인 국정 교과서가 있다는 것이다. 2010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EBS 교재를 수능에 70% 이상 반영하라고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지금까지 일선 고교에서는 EBS 교재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많은 검인정 교과서를 제치고 EBS 교재가 실질적인 국정 교과서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수능에서는 그 교재를 겉으로만 반영할 뿐, 실제로는 전혀 다르게 출제되는 것이 현실이고, 참고서 시장을 EBS라는 공영 기관이 석권하는 기형적 현상까지 발생하였다. 사교육비를 줄이자는 방안으로 시작되었으나 실효성 없이 고교 교육을 뒤흔들어온 이 조치를 언제까지 지속할지 사회적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수익 한남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김해시, '김해맛집' 82곳 지정 확대...지역 외식산업 경쟁력 강화
  2. 환자 목부위 침 시술 한의사, 환자 척수손상 금고형 선고
  3. 대전서 교통사고로 올해 54명 사망…전년대비 2배 증가 대책 추진
  4. 인천 연수구, ‘집회 현수막’ 단속 시행
  5. 인문정신 속의 정치와 리더십
  1. 대학 라이즈 사업 초광역 개편 가능성에 지역대학 기대·우려 공존
  2. 대전교육청 교육위 행감서도 전국 유일 교권보호전담변호사 부재 지적
  3. "행정수도 세종 완성, 당에서 도와달라"
  4. 교통사망사고 제로 대전 선포식
  5. 당진읍성광장, 주민 손으로 활짝 펴다!

헤드라인 뉴스


충남도, 보령에 2조원 투입해 도내 3번째 AI 데이터센터 건립

충남도, 보령에 2조원 투입해 도내 3번째 AI 데이터센터 건립

충남 보령에 도내 3번째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선다. 도는 2조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해당 센터를 통해 전력 절감, 일자리 창출 등의 기대효과가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김태흠 지사는 18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김동일 보령시장, 김용호 웅천에이아이캠퍼스 대표와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웅천에이아이캠퍼스(이하 캠퍼스)는 보령 웅천산업단지 내 10만 3109㎡의 부지에 AI 특화 최첨단 데이터센터를 건립한다. 캠퍼스 측은 민관 협력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구성하고, 내년부터 2029년까지 2조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데이터..

대전시 국방·우주반도체 공급망 중심축 만든다
대전시 국방·우주반도체 공급망 중심축 만든다

K-방산 산업의 미래 경쟁력과 국가 안보를 위한 국방·우주반도체 개발 및 제조 생태계 구축에 대전시와 산학연이 뭉쳤다. 대전시와 KA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화시스템, 대전테크노파크는 18일 시청에서 '국방·우주반도체 국내 공급망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장우 대전시장, 이광형 KAIST 총장, 방승찬 ETRI 원장, 손재일 한화시스템㈜ 대표, 김우연 대전테크노파크 원장이 참석했다. 이번 협약은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국방·우주반도체 개발 및 제조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 협약 기관들은..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 성황리 마무리… `풋살 기량 뽐냈다`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 성황리 마무리… '풋살 기량 뽐냈다'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11월 15~16일 이틀간 충남 청양공설운동장에는 선수들을 향한 환호와 응원으로 떠들썩했고, 전국에서 모인 풋살 동호인들은 신선한 가을 하늘 아래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맘껏 뽐냈다. 중도일보와 청양군체육회가 공동으로 주최·주관하고, 청양군과 청양군의회가 후원한 이번 대회엔 대전, 세종, 충남, 충북 등 충청권 4개 시도를 비롯해 서울, 경기, 대구, 경북, 전북 등 전국 각지에서 선수들과 가족, 지인, 연인 등 2500여 명이 참여해 대회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이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

  • 계절의 색 뽐내는 도심 계절의 색 뽐내는 도심

  • 교통사망사고 제로 대전 선포식 교통사망사고 제로 대전 선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