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장례식도 없는 불멸의 영혼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장례식도 없는 불멸의 영혼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9-07-0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나는 고향 친구 세 사람이 만나는 향우회 모임이 있다.

11월 11일 <드리오리> 라는 음식점에서 18시에 만나기로 한 고향 친구가 논산 갔다가 좀 늦는다더니 생각보다 일찍 왔다. 차가 막히지 않아 약속 시간을 지킬 수 있었다며 얘기를 꺼냈다.



친구의 안사돈(딸의 시어머니)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장례식도 없이 조문만 받는 초상이라고 했다.

"장례식도 없는 초상!"



여태껏 살았어도 금시초문의 일이라서 자세하게 말해 보라 했더니 다음과 같은 얘기였다. 고인은 생시에, "내 피를 받은 사람마다 하느님의 자녀, 예수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해요. 예수님 사랑 나누는 것은 헌혈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이 내가 이 나이가 돼서도 헌혈을 계속하는 이유랍니다."

이처럼 고(故) 김동순 권사는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리하여 2012.10.6일자 < 한국 성결 신문 >에 < 노년 헌혈왕 김동순 권사 >(노성성결 교회) < 예수 사랑의 감격을 헌혈로 나눠 > 라는 기사로 세인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 평생 400회가 넘는 헌혈로 대한적십자총재 표창을 여러 번 받았으며, 금강일보, 충청투데이를 비롯한 각 신문에 그 행적이 보도된 적도 있다고 들었다.

고인(故人)은 생전에 논산시 노성면 노성로 마을의 부녀회장으로서, 자모회장으로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불철주야 바쁘게 뛰었다. 도처 각 기관에서 나눔의 쌀이 들어오면 경로당의 어렵고 불쌍한 노인들이나 가난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나눠 줘서 그들의 민생고를 덜어주었다. 정말 따뜻한 가슴으로 살았던 사랑의 수호천사였다. 진정 사람 냄새 물씬한 천연기념물 같은 보물임에 틀림없었다.

또 다른 일화를 들어보면 어느 장애인 부부가 살고 있는, 집 대문 앞에 말도 없이 포대기로 싸서 갖다 놓은 여아(업동이)를 장애 부부가 키우기 어려운 것을 알고 주말마다 데려다 보살피고 키워서 그 여자 아이를 중학교까지 보냈다. 김동순 권사는 연만한 나이에도 요양보호사·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여 어린이를 위한 구연동화와 장애인 시설 돌보미로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했다.

평생 자신보다는 사회를 위해서, 음지에서 허덕이는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몸 돌보지 않고 희생하다시피 노익장을 과시한 할머니였다.

이와 같이 김동순 권사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생각하기도 어려운 헌신적 희생적 삶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던, 그 덕행이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리하여 2015. 5. 4일에는 황명선 논산시장으로부터' 남다른 애향심과 투철한 봉사정신을 가진 사람 '으로 인정받아 박수갈채 속에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런 훌륭한 삶을 살던 이 할머니가 지난 11월 10일도 사회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바삐 가던 중 1톤짜리 가스운송 트럭한테 받히어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미어지는 불상사였다.

자신은 주변 사람들을 위해 평생 동안 헌혈을 400회 넘게 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위급한 상황에서는 남의 피 한 방울도 받지 못하고 그냥 죽어야만 하다니 세상에 이런 불공평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더 가슴 먹먹한 일은 10여 년 전에 김동순(73세) 할머니는 남편(김목용 75세)과 함께 건양대에 가서, 자신들이 죽으면 의과 대학 연구용으로 써 달라고 자신들의 시신 무료 기증 동의 각서를 쓰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런 약속 때문에 고인의 주검은 장례식도 없는 조문만 받고 이틀 후에 건양의대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했다.

자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지만 남편(김목용)되는 할아버지의 자식들에 대한 설득으로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그렇게 해 드리자는 데에 이의가 없었다고 했다.

참으로 요즘 세상 보기 어려운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찡하는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 훌륭한 정신을 기리는 마음뿐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가르침이지만 정말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가신 분임에 틀림없었다.

세태가 나밖에 모르는 세상인데 세인들께 각성과 경종이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니, 깨달음과 교훈을 주는 불멸의 영혼 앞에, 세인들은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5년간 시신이 의과대학 연구용으로, 의대생 실습용으로 사용된다니 고인의 숭고한 정신에 그저 고개만 떨구고 있을 뿐이다.

가족들이 고인의 유품 정리를 하다 보니 고인의 헌혈증서와 각종 표창장이 눈에 띄었다. 남편 되는 할아버지는 아내의 행적이 하도 장하고 자랑스러워 구문(舊聞)이지만 아내 관련기사를 오려 코팅해 둔 것이 사람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다.

벽과 천장밖엔 없는 할아버지의 텅 빈 방에, '코팅된 기사 쪽지 한 장' 그걸 바라보는 노옹의 눈물 그렁그렁한 빛바랜 눈동자 …

나도 아픈 마음에 눈물까지 더하여 조의를 표하고 있다.

'장례식도 없는 불멸의 영혼 '

할아버지는, 코팅된 기사쪽지를 할머니의 분신으로 생각하며 마나님처럼 또 그렇게 가겠다고 다짐하는 것 같았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아산시 '곡교천 탕정지구 연계사업' 밑그림 그려졌다"
  2. 롯데백화점 대전점, 성심당 리뉴얼... 백화점 중 최대 규모 베이커리로
  3. [라이즈 현안 점검] 대학 수는 적은데 국비는 수십억 차이…지역대 '빈익빈 부익부' 우려
  4.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대전변동중, 음악으로 함께 어울리는 행복한 예술교육
  5. {현장취재]김기황 원장, 한국효문화진흥원 2025 동계효문화포럼 개최
  1. "함께 걸어온 1년, 함께 만들어갈 내일"
  2. 농식품부 '농촌재능나눔 대상' 16명 시상
  3. 작은 유치원 함께하니, 배움이 더 커졌어요
  4. 충남경찰, 21대 대선 당시 선거사범 158명 적발… 직전 대선보다 119명↑
  5. 서머나침례교회, 관저종합사회복지관에 연말 맞아 이웃사랑 후원금 전달

헤드라인 뉴스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을 세종시가 아닌 대구시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향후 논의 과정이 주목된다. 다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이 주도한 데다, 11월에 혁신당 대전시당 위원장인 황운하 의원(비례)이 ‘대법원 세종 이전법’을 발의한 터라 논의 과정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러 이견으로 대법원 지방 이전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혁신당 대구시당 위원장인 차규근 의원(비례)은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 권칠승 의원과 함께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고 대법원의 부속기관도 대법원 소재지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직장맘에게 지급하는 출산 전후 휴가급여 상한액이 내년부터 월 220만원으로 오른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하한액이 출산휴가급여 상한액을 웃도는 역전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출산전후휴가 급여 등 상한액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는 출산 전과 후에 9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받을 수 있다. 미숙아 출산은 100일, 쌍둥이는 120일까지 가능하다. 이 기간에 최소 60일(쌍둥이 75일)은 통상임금의 100%를 받는 유급휴가다. 정부는 출산·육아에 따른 소득 감소를 최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회식 상권은 '노다지'로 불린다. 직장인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만큼 상권에 진입하기 전 대상 고객은 몇 명인지, 인근 업종은 어떨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레드오션인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빅데이터 플랫폼 '소상공인 365'를 통해 대전 주요 회식 상권을 분석했다. 10일 소상공인 365에 따르면 해당 빅데이터가 선정한 대전 회식 상권 중 핫플레이스는 대전 서구 월평동 '선사유적지 인근'이다. 회식 핫플레이스 상권이란 30~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 풍성한 연말 공연 풍성한 연말 공연

  • ‘졸업 축하해’ ‘졸업 축하해’

  •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