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바람타는 섬, 제주도와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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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바람타는 섬, 제주도와 오키나와

  • 승인 2015-12-03 11:33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4·3유적지 섯알오름 학살터. 이곳은 수용자 수백여명을 법적절차없이 집단학살하여 암매장 한 비극의 현장이다. /사진=연선우 기자
▲4·3유적지 섯알오름 학살터. 이곳은 수용자 수백여명을 법적절차없이 집단학살하여 암매장 한 비극의 현장이다. /사진=연선우 기자

슬프고도 잔인한 사실은 역사는 되풀이의 연속이라는 거다. 아무리 인류 문명이 진보한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는 말을 절망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토해내는 가련한 이들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고통 너머의 안락한 세계는 온전히 그들만의 영원한 몫일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자각해야 한다. 그래서 나와 너는 기꺼이 고통 너머가 아닌 여기, 이곳에서 숨죽여 흐느끼는 자들의 아우성을 새겨들어야 한다.

왜 제주도와 오키나와인가.
제주도와 오키나와는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섬으로 돼 있고 비중있는 산업 중의 하나가 관광분야다. 제주도는 내국인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인 관광객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곳이다. 심지어 팝스타 마이클 잭슨은 제주의 풍광에 반해 섬 전체를 사고 싶다고까지 했다. 오키나와 역시 쾌청한 여름기후와 에메랄드빛 바다로 이뤄져 ‘관광의 섬’이라는 이미지로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두 섬은 ‘4.3사건’과 ‘오키나와전(戰)’이라는 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물지 않은 상처-제주 4.3 사건과 오키나와전(戰)
▲ 제주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에 진행 중인 해군기지 건설공사 현장모습(위)과 지난 11월16일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에 입항하는 독도함. /사진=연합DB
▲ 제주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에 진행 중인 해군기지 건설공사 현장모습(위)과 지난 11월16일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에 입항하는 독도함. /사진=연합DB
 
  “하여간에 이 사건은 그냥 넘어갈 수 없수다. 아명해도 밝혀놔야 됩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경종을 울리는 뜻에서라도 꼭 밝혀두어야 합니다.….”… “거 무신 쓸데없는 소리고!… 다 시국 탓이엔 생각하고 말지 공연시리 긁엄 부스럼 맹글 거 없져.” 1948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4.3사건을 소재로 한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로 인해 논의 자체가 금기시돼 왔던 4.3사건이 수면위로 부상해 역사적 진실 복원의 시발점이 되어 결국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장애물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피해자들은 그때의 상흔을 드러내는 걸 꺼린다.

  제주도 여행에서 만난 서귀포시 대정 주민 고대식씨(70)도 4.3 얘기를 꺼내자 대뜸 “허허. 뭘 자꾸 알려고 그래. 뭐가 궁금하다고”라며 손을 저었다. 마을 이장인 고씨는 작은아버지도 그때 희생돼 시신을 못찾았다고 했다. 4.3사건 당시 희생자는 최소한 3만명이라고 한다. 이 숫자는 현재 제주사람들의 친인척 중 대부분이 관련 있다는 얘기다. 4.3사건은 오랫동안 ‘빨갱이 폭동’으로 왜곡됐다. 엄청난 희생자를 양산하고 제주라는 섬을 한순간에 파괴한 4.3사건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철저하게 은폐되었다. ‘한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4.3사건은 오늘날까지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이어지고 있다.

  오키나와 역시 1945년 미군의 일본 본토 공격을 저지하고 천황제를 사수하기 위해 희생당한 섬이다. 당시 오키나와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2만명이 죽었다. 미국역사에서 ‘아이스버그 작전’으로 기록되는 오키나와전은 태평양전쟁에서 가장 많은 피가 흐른 전투 가운데 하나로 불린다. 오키나와는 진정한 일본의 일부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일본군은 이 전쟁에서 많은 수의 주민들을 공격물로 내세우거나 자살하도록 강요하며 때로는 직접 살해하기까지 했다. 일본인이 되라고, 천황제에 충성하는 신민이 되라고 교육받았는데 일본군은 오키나와인들의 믿음을 여지없이 저버렸다.
 
해군기지와 후텐마 비행장은 미래의 화약고?
▲일본 오키나와. /사진=이성희 기자
▲일본 오키나와. /사진=이성희 기자
 
  동북아 요충지라는 지리적 특수성이 있는 제주도와 오키나와는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전쟁준비를 하고 있는가. 제주해군기지는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1조300억이 투입된 국책사업이다. 연말 완공을 앞둔 해군기지는 찬?반 갈등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국익과 제주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정부 견해와 달리, 환경훼손 뿐만 아니라 해군기지 건설은 자칫 제주를 국제분쟁의 중심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전체 동아시아는 전쟁위기에 놓이고 제주도는 섬 전체가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우려다.

  오키나와 또한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아베정권과의 싸움이 뜨겁다. 일본정부가 추진해 온 후텐마 비행장 이전에 대해 오키나와 주민의 70%가 반대하고 있다. 미군기지에 대한 섬 주민들의 저항은 전쟁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맥을 같이 한다. 오에 겐자부로는 『오키나와 노트』에서 “일본이 오키나와에 속한다”며 오키나와가 일본 전체의 존재방식을 묻는다고 설파했다.

  “묻지 말아 달라.” 이 간절한 부탁을 지금 제주라는 섬에서 살아남은 자들로부터 다시 들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고통의 사건을 기억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을 ‘백조일손지묘’는 일러준다. 우리가 돌이켜 배워야 하는 진실은 역시 과거에 있다고. ‘기억해 달라’는 죽은 자들의 부탁을 성취하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제주에서 오키나와로 이어지는 희생의 카테고리는 거기서 국한되지 않는다. 돌고 도는 게 인간의 역사이지 않은가.
 
우난순 지방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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