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 유머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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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 유머가 필요해

  • 승인 2016-03-24 10:16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 사진=KBS 개그콘서트
▲ 사진=KBS 개그콘서트

『충청도의 힘』이란 책이 있다. 개나리꽃 색깔의 표지가 눈에 확 띄는, 내게는 밥같은 책이다. 한번 읽고 책꽂이로 직행하는 다른 책과는 달리 『충청도의 힘』은 자기전에 이불 속에서 꼬물거리며 자주 펼쳐드는 책이다. 족쇄같은 ‘밥벌이의 지겨움’에 저당잡혀 전쟁같은 하루를 마치고 밤늦게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물먹은 솜뭉치가 따로없다. 그럴 때 이 책을 본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배꼽 잡으며 깔깔대며 웃어제끼면 피로가 풀려 유쾌하게 잠들 수 있다.

『충청도의 힘』은 서울생활을 접고 귀농한 남덕현씨가 보령 무창포 인근에서 처가살이하며 시골 사람들의 일상을 콩트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시골 노인들의 걸죽한 사투리(내가 보령 옆 청양출신임에도 당최 알아듣기 힘든)에 음담패설이 버무려진 해학과 풍자가 넘쳐 근래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혼자 보기 아까워 주위사람들에게 빌려줬는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나랑 유머코드가 다른가?

어릴 적, 친구들은 순정만화나 신데렐라, 백설공주 등 동화에 빠져 눈물짓곤 했지만 난 명랑만화에 꽂혔었다. 길창덕, 박수동의 만화를 보며 한 컷 한 컷 인물의 손짓, 얼굴 표정 같은 것을 하나도 흘려 넘기지 않고 탐독했다. 청소년기에도 여전해서 ‘유머 1번지’는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프로였다. 지금 생각해도 김형곤, 심형래, 최양락, 임하룡, 전유성 등 그들은 대중을 웃겨야 한다는 개그정신이 투철했다.

사실 지금도 잘 생긴 정우성, 소지섭, 강동원은 안구정화용이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연예인은 개그맨들이다. 아무리 못생기고 뚱뚱해도 그들은 매력있고 머리좋은 존경의 대상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영화도 그렇다. “계백아, 네가 거시기 허야 겄다.” 영화 ‘황산벌’에서 의자왕으로 분한 오지명과 계백의 박중훈의 대화장면을 보면서 이준익 감독을 무조건 존경해야 겠다고 맘먹은 적도 있다.

서양에서는 18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웃기는 것’과 ‘조롱하는 것’과의 차이가 없어 웃음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웃음은 상대방을 지적으로 놀라게 해 자신의 영리함을 과시하는 수단이 됐다. 이제 유머 감각은 하나의 큰 미덕으로 간주된다. 누구나 유머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품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유머감각이 없는 것은 고지식하거나 융통성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 사진=연합뉴스 DB
▲ 사진=연합뉴스 DB

특히 경쟁이 치열한 정치가들의 유머감각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 중 ‘시가를 문 불독’ 처칠은 유머러스한 정치인으로 정평이 나 에피소드가 심심찮게 회자되곤 한다. 2차대전 중의 일이었다. 방공포 기지를 방문한 처칠에게 현장 지휘관이 “저는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는 100% 괜찮은 사람입니다”라고 잘난 척을 하자, 처칠은 “저는 음주도 하고 흡연도 하는 200% 괜찮은 사람입니다”라고 대꾸했다. 얼마나 재치있는 응수인가.

대중들은 어떤 직업군보다도 정치인의 유머감각에 환호하게 된다. 센스있는 정치인은 그래서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얻는 데 훨씬 수월하다. 레이건, 케네디 등 미국의 대통령들은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확하지 않은 발음 때문에 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인물이다. 단어들마다 성적인 뉘앙스를 풍겨 재미를 줬다. 관광을 ‘강간’으로, 관통을 ‘간통’으로, 외무장관을 ‘애무장관’ 식으로 말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농담을 즐기는 이유는 원초적인 성적 충동과 공격 충동을 방출함으로써 이전까지 금지돼 왔던 즐거움을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적 코드가 강한 영화를 만드는데 일가견 있는 우디 앨런도 누구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 위트 있는 사람이다. “자궁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낍니다. 누구의 자궁이든 상관없습니다.”

농담을 들어보면 그 민족이 어떤 민족인지, 어떻게 사는 지 등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유머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유머스런 독설의 대가 정청래 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됐다. 때때로 촌철살인의 유머를 구사해 대중들에게 깨알웃음을 선사한 정청래야말로 근엄하고 경직된 정치인 나리들 틈에서 개성있는 존재였다.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정치인 양반들! 걸핏하면 국민들을 겁박하고 배신의 정치 운운하는 대통령님! 센스있는 조크 한번 날려주면 안되겠니? /우난순 지방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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