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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티 이미지 뱅크 |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 나라를 보았니 ~ 천사들이 사는 나라 파란 나라를 보았니 ~ 맑은 강물이 흐르는 파란 나라를 보았니 울타리가 없는 나라~“
가수 혜은이와 최문정 어린이가 함께 부른 노래 <파란 나라> 가사의 첫 소절이다. 파란은 ‘파랑색’을 가리킨다. 파랑색은 또한 희망과 젊음, 그리고 역동과 전진까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작금 우리나라는, 또한 우리 국민들의 대부분은 그 진취적인 파란이 아닌 파란(波瀾), 즉 ‘순탄하지 아니하고 어수선하게 계속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시련’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러한 파란의 속내는 사실 정치(권)이 제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식물정권으로 전락한 게 제1의 단초를 제공했다. 연일 계속되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하야 촉구 시위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퇴진선언은 여태 나오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귀가 막혔든가 아님 국민들의 이구동성 퇴진 요구를 아예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모양새다. 이러한 가운에 지난 12월1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형 화재가 발생한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였다.
그리곤 돌아오는 차안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청와대 당국자는 전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피해 상인들조차도 화재민의 고충은 듣지도 않고 사진만 찍고 15분 만에 떠났다며 분통을 터트렸다고 한다.
이를 보자면 전방위적으로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의 그 눈물은 진정성이 없는 ‘악어의 눈물’이었다는 느낌까지 제어하기 힘들었다. 이는 또한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 숨진 학생과 승무원들을 언급하면서 박 대통령이 흘렸다는 그 눈물의 정체까지를 덩달아 의심하게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국의 치자(治者)인 대통령이 하지만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 하고 있는 이러한 처참한 현실은 “내 눈에 비친 정치인의 인상은 권력에 굶주린 자의 인상이다”라고 했던 R.H.솔로우의 명언까지를 떠올리게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 정권으로부터 천문학적인 돈을 뜯긴 것도 모자라 재벌총수들의 국회 소환 청문회 등으로 말미암아 해당 그룹과 기업의 연말인사마저 암운에 휩싸였다는 건 이런 주장의 방증이다.
정치가 그처럼 갈지자걸음이면 경제라도 제대로 굴러가야 하는데 이 또한 신통찮다. 전국적으로 200만에 가까운 국민들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촛불집회 이후 우리 사회 국민들(특히나 유권자들)의 정서적 펀더멘털(fundamenta)까지 훨씬 성숙해졌다는 평가는 외신들조차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경제는 여전히 뒷걸음질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즈음이 아닐 수 없는 즈음이다. 지난 11월 25일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사망했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떠올려진 인물이 바로 체 게바라(Che Guevara)였다.
1928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출생한 그는 진보적 성향의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후일 그가 사회주의 혁명전사가 되는 데 역시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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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 게바라 |
체 게바라는 1955년 멕시코에 머무는 동안 쿠바 혁명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를 만나 쿠바혁명에 뛰어든다. 1965년 4월 소련과의 갈등으로 쿠바의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체 게바라는 혁명 게릴라들의 국제주의 전선의 형성을 위해 아프리카 콩고로 떠난다.
그는 콩고에서 게릴라 부대를 훈련시키고 그의 혁명 동지들과 게릴라 활동을 펼치지만 혁명연합이 와해되고 콩고 좌파세력들의 쿠바인 철수 요구로 인해 성과 없이 쿠바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 포위되어 생포되었다.
그리곤 다음날 곧바로 총살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저항의 상징’이자 심지어는 ‘낭만주의자’로까지 회자되는 까닭은 다른 공산주의 독재자들과 달리 권력과 부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때문에 지금도 쿠바인들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체 게바라는 ‘혁명의 아이콘’이란 별칭 외에도 지금도 쿠바를 먹여 살리는 ‘관광상품’까지 된 게 아닐까 싶다. 결론적으로 체 게바라는 누구처럼 사리사욕(私利私慾)이 아니라 철저한 멸사봉공(滅私奉公)에 입각한 어떤 ‘파란 나라’를 꿈꿨노라는 결론의 항구(港口)에 당위성(當爲性)의 배가 정박하게 된다.
<파란 나라> 노래는 계속된다. “난 찌루찌루의 파랑새를 알아요 ~ 난 안델센도 알고요 저 무지개 너머 파란 나라 있나요 ~”
우리가 꿈꾸는 그 파란 나라는 과연 언제가 되어야만 그 찬란한 빛을 뿜으며 비로소 모습을 보일 것인가? 우리 국민들은 하나 같이 그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거늘.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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