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는 삶의 축] 6. 수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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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6. 수은등

2017년에 거는 기대

  • 승인 2016-12-19 00:01
  • 홍경석홍경석


“어스름 저녁 길에 하나 둘 수은등 꽃이 피며는 ~ 그대와 단둘이서 거닐던 이 길을 서성입니다 ~ 수은등 은은한 빛 변함없어도 당신은 변했구려 보이질 않네 ~ 아~~~ 수은등 불빛 아래 이 발길은 떠날 줄 몰라 ~”

김연자가 부른 가요 <수은등>이다. 수은등(水銀燈)은 전극이 있는 진공 유리관 속에 수은 증기를 넣고 전압을 걸 때 발생하는 수은 증기의 강력한 빛을 이용하는 방전관이다. 자외선이 들어 있으므로 광학 기계의 시험용이나 사진, 의료, 위생용 따위에 쓴다.

‘엔카의 여왕’으로도 유명한 실력파 가수 김연자의 호소력이 짙은 이 노래는 수은등만큼이나 깊고 강한 추억의 반추를 허락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올 한 해도 어느새 종착역이 가깝다. 더욱이 올해는 오랜 동안 잠복했던 ‘최순실 게이트’라는 뇌관이 그예 폭발하면서 흡사 준마(駿馬)처럼 빨리 달려온 나날이기도 했다.

이 파장은 또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헌법재판소로 공이 넘어오는 계기까지를 제공했다. 사견이지만 박 대통령이 이 탄핵심판 사건에서 기사회생한다는 건 제아무리 대라신선(大羅神仙)이 온다 한들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대라신선의 모습은 신장 20미터에 세 개의 머리, 아홉 개의 눈과 여덟 개의 팔을 가지고 있으며 입에서는 푸른 구름을 토해내고 발밑으로는 거대한 돌을 딛고 서 있으며 소리를 크게 지르면 구름이나 비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천지를 진동시켰다고 한다.

따라서 대라신선은 천하무적일 뿐 아니라 불사신(不死身)의 상징으로까지 회자된다. 여하간 최순실 게이트가 국정마비에 이어 서민들의 실물경제까지를 마비시키는 바람에 나 또한 올해의 연말연시는 조촐의 차원을 넘어 초라한 국면을 맞게 되었다.


얼마 전 동창들과의 주문진 관광을 취소한 것 외에도 죽마고우들 모임 또한 불참한 게 이 같은 주장의 증거다. 대신에 경제난 타개를 위한 투잡 등의 역마직성(驛馬直星 = 늘 부산하게 떠돌아다니는 사람)의 행보가 그 자리를 메웠다.

따지고 보면 예나 지금 역시 빈들빈들 놀면서도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 경우를 이르는 말인 ‘매팔자’하고는 인연이 없었다. 때문에 연말연시라고 해서 퇴근길에 아내를 밖으로 불러내어 근사한 옷을 사주고 맛난 음식까지 같이 먹는 따위의 게트림(거만스럽게 거드름을 피우며 하는 트림)의 수작(酬酌) 역시 그림의 떡이다.

다만 이를 치환할 수 있는 방법으론, 가요 ‘수은등’의 가사처럼 어스름 저녁 길 하나 둘 수은등 꽃이 피면 아내와 단둘이서 밤길을 걷는 나름의 데이트뿐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날도 춥거늘 그리 했다간 단박 고뿔이 들었다며 드러누울 게 뻔한 고삭부리 아낙이 바로 아내다.

어쨌거나 유들유들한 배짱의 세월 탓에 나는 물론이거니와 아내 역시 더욱 늙음으로 변했다는 사실엔 반론의 제기가 불요(不要)하다. 요즘 안면주름과 처진 얼굴 등 다양한 곳에 효과가 있다는 보톡스를 안 맞는 여자가 누가 있냐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내, 즉 빈처(貧妻)는 보톡스는커녕 여전히 만날 싸구려 화장품으로만 대충 ‘고양이 세수하듯’ 한다는 거다. 따지고 보면 다 내가 못난 탓이다. 그렇긴 하되 내년에는 더 열심히 뛰고 볼일이다.

그래서 2017년의 이맘때는 지금처럼 얼레벌레가 아닌 미주가효(美酒佳肴)를 먹고 마시면서 저물어가는 한 해의 미련과 섭섭함, 그리고 못 다 이룬 미완성의 재탈환 각오 따위 모두를 수은등에 실어 보내리라.

사족이겠지만 내년 이 즈음의 우리네 서민들은 물론이요 국민들 역시도 바라는 바가 있다. 그건 바로 투철한 멸사봉공과 사리사욕의 철폐에 더하여 주변 참모와 국민들의 소리까지를 잘 듣는, 귀가 큰 토끼처럼 너른 마인드와 깜냥까지를 지닌 새로운 대통령을 보고 싶다.

이런다면 그 대통령의 면면은 과연 수은등 이상으로 더욱 환하게 빛날 것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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