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월아 세월아 걸음을 재촉마라 ~ 하도 빨리 가서 원망도 못했는데 ~ 왜 자꾸 자꾸 등 뒤에서 나를 떠미나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사라서 ~ 죽자 살자 욕심 많은 그까짓 꺼 돈 모아도 ~ 둘러메고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닐 텐데 ~ 훨 훨 훨 모두 털고 한 세상을 보냈더니 ~ 내 인생의 이력서 이 것뿐이요 공연히 한세상을 헤매였구나 ~”
전남 목포시가 지역출신 인기가수인 남진 씨를 테마로 한 마케팅으로 관광활성화에 나선다고 하여 화제다. 목포시는 지난해 12월 삼학동 자유시장내에 ‘남진 야시장’ 개장에 이어 1년 만에 남진 씨 생가에 기념관 조성 등을 벌인다고 밝혔다.
남진 씨는 1945년 목포에서 지역신문 발행인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이른바 ‘금수저’ 출신에 더하여 잘 생긴 외모까지 갖춘 그는 대학생시절인 1965년 가수로 데뷔했다.
따라서 2016년 현재 그의 가수생활은 자그마치 50년도 넘는 장구한 세월을 기록하는 중이다. 무언가를 50년 동안이나 계속하여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실로 대단한 것이다. 더욱이 그 장르가 부침이 심한 가요계라고 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무튼 이 노래의 주인공은 자신의 이력서에 50년 이상 줄곧 ‘가수’라는 항목을 적고 있다. 반면 나의 이력서는 어떠한가? 모 교육기관에서 오프라인 기자를 모집한다기에 이력서를 낸 바 있었다. 합격이 되어 교육을 이수했다.
이어 매달 미션에 맞춰 취재를 시작했다. 그 기자단의 수료식 겸 해단식을 한다는 문자가 왔다.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의미로 참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력서를 낸 지가 불과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빨리 파장(罷場)을 하는가 싶어 아쉬움이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했다.
하기야 올해는 최초의 1기 기자단 모집이었기에 2017년의 2기 모집 때 다시 응모하면 될 터이다. 그렇긴 하더라도 그 활동기간이 너무 짧은데다가 아울러 한시적이란 현실적 아쉬움이 여전한 건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보여 유감이었다.
오프라인 기자는 ‘시민기자’의 개념이다. 과거와 달리 SNS시대가 되면서, 또한 고정급여가 지출되는 상시 기자보다는 기사량과 취재 건수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고료의 특징이 바로 시민(객원)기자이다.
따라서 이의 선호와 모집이 언론사와 기관을 필두로 성시를 이루기 시작한 게 지난 10여 년 전부터다. 해가 바뀌면 나의 그러한 시민기자의 경력 또한 15년차에 접어든다. 그렇게 관록을 쌓은 결과, 수필가로의 등단은 물론이요 생애 첫 저서를 내는 기쁨도 맛볼 수 있었다.
여세를 몰아 올해는 모 언론의 논설위원으로까지 등재되었다. 허나 얼마 전 그 언론사의 편집장이 그만 두는 바람에 나 또한 일장춘몽(一場春夢)의 지난일로 치부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편집장의 천거에 의해 그 직을 수락한 때문이다.
어쨌거나 기자가 되고 작가까지 되면서 숱한, 그리고 참 좋은 사람들을 두루 사귀게 되었다. 고로 이는 ‘글의 힘’이 가져다 준 가외의 소득인 셈이다. 아홉 달 가까이 집필하여 새로운 책으로 발간코자 하는 원고를 오늘도 출판사에 보냈다.
출판시장이 여전히 지독한 불황이자 암운(暗雲)인지라 쉽사리 출간하겠다는 낭보는 아직 오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열 번을 찍어도 아니 넘어가는 나무는 계속하여 찍어야 한다는 각오의 끈은 여전하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긍정과 희망의 싹에도 물을 주는 걸 잊지 않고 있다.
모 교육기관의 오프라인 기자단 해단식과는 별도로 또 다른 모임이 예정돼 있다. 어떤 국가기관의 같은 맥락인 인권기자단 송년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곳 또한 참석을 통보하였는데 활동한 2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은 글을 올렸다.
![]() |
뭐든 마찬가지지만 일단 시작을 했다손 치면 가장 왕성하고, 또한 부지런히 임한다는 게 나의 모토(motto)이다. 그랬기에 그 수많은 표창과 수상의 기쁨까지 맛볼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언젠가 아들과 술잔을 나누면서 나눈 대화가 여전히 유효하다.
“아빠는 정년퇴직하신 뒤 뭘 하고 싶으세요?” 나는 주저 없이 답했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책을 보고 글을 쓸 수 있는 나만의 전용 공간 방(房)을 갖출 수 있는 집으로 이사하고 싶구나. 그리고 거기선 맘껏 글만 쓰고 싶어. 나는 글을 쓰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거든!”
아들은 기회가 되면 그리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나는 아들의 신세를 지고픈 맘이 없다. 내 스스로의 자강불식(自強不息) 마련이 가장 합당한 것이며, 또한 그래야 내 맘까지 편한 까닭이다. 조만간 동료직원이 퇴사한다.
그는 다른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다시금 이력서를 쓸 것이다. 이력서(履歷書)는 당사자가 지금까지 거쳐 온 학업과 직업, 경험 등의 내력을 적은 문서이다. 또한 이력(履歷)은 세상사를 많이 겪어 보아서 얻게 된 슬기를 뜻한다.
20대 초반 군복무의 전역 후부터 직장에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3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간 이런저런 직장 등지에 써낸 이력서의 양(量)만 해도 상당하다. 이는 내가 고작 초등학교만 달랑 졸업한 초라한 학력의 무지렁이였기에 애초 정규직하곤 육중한 담이 쳐진 결과의 당연한 수순이었다.
비정규직과 임시직을 거쳐 현재도 진행 중인 1년 단위 계약직의 가파른 험산준령은 여전하다. 최근 내년에도 계속하여 일을 할 수 있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렇긴 하되 참으로 몰상식하며 사복개천(거리낌없이 상말을 마구 하는 입이 더러운 사람)에 더하여 그야말로 ‘이간질의 달인’인 자와 계속하여 일을 해야 한다 생각하면 머리까지 아파온다. 첫 직장에서 발군의 실적으로 전국 최연소 소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관리자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강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사는 사회와 직장에선 다음의 세 가지 유형 사람이 존재합니다. 첫째, 반드시 필요한 사람 둘째, 있으나 마나한 사람, 끝으론 반드시 없어져야 할 사람이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느 축에 들어야 합니까?”
그 말을 신앙삼아 ‘내가 어디에 있든 항상 깨끗한 본성을 가진다’라는 뜻을 지닌 처렴상정(處染常淨)의 마인드를 견지하곤 있다. 그러나 나 또한 신이 아닌지라 엇절이 같은 그 직원의 어질더분한 행태를 때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고민이다.
어쨌거나 ‘매화는 추운 겨울의 기운 속에도 맑은 향기를 내고, 사람은 어려움을 겪어야 기개가 나타난다’는 의미의 한고청향 간난현기(寒苦淸香 艱難顯氣)의 견지는 앞으로도 버리지 않을 작정이다.
가수 남진의 노래 ‘이력서’ 가사 중에선 ‘죽자 살자 그까짓 꺼 돈 모아도’ 둘러메고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닐 거라고 했지만 기실 이는 대단히 작위적 표현이다.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여하튼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처럼 이담에 나 또한 이 세상에서의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는 날, 아내와 아이들이 이렇게만 애도해준다면 만족하리라. “당신께선 우리 가족에게 진정 ‘사랑’이라는 이력서를 진하게 남겨놓고 떠나셨습니다. 이젠 영면하소서.”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