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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칩거 중인 톱가수 나훈아가 부른 수많은 히트곡 중 하나인 <남자라 울지 못 했다> 가요이다. 그럼 왜 남자라서 울지 못 한 걸까? 어제는 국가인권위 인권기자단(투잡의 일환인) 송년모임이 있었다.
모임의 장소에선 애석하게도 술을 주지 않았다. 하여 대충 식사를 마친 뒤 죽이 맞는 기자들과 인근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맞게 비까지 흥건하게 내리는 덕분에 ‘술발’은 더 잘 받았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엔 더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어제의 화두는 인권기자스럽게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소외받고, 심지어는 핍박까지 당하며 인권의 응달 지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포커스가 맞춰졌다.
즉 울고는 싶되 ‘남자라서 울지 못 하는’ 사람들을 불러낸 셈이었다. 얼마 전 모 언론에서 ‘애슐리’와 ‘자연별곡’ 등 유명 외식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이랜드 그룹 계열사 이랜드파크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아르바이트생 4만 4360명에게 지급하지 않은 임금 총액이 무려 83억 7200만 원이라는 보도를 냈다.
이 뉴스가 일파만파로 번지자 이랜드그룹은 서둘러 공식 사과를 표했다. 하지만 이처럼 부도덕한 일종의 약자를 향한 착취가 어디 비단 그 그룹에만 국한될까 라는 게 세인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예전 아들이 대학에 합격한 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음식점 등지에서의 서빙 알바는 목돈을 만질 수 없다며 어느 날부터는 택배 알바를 하겠다고 했다. 힘들긴 하지만 빨리 돈을 모을 수 있다기에 승낙을 했다. 그러나 아들이 집을 나설 때면 좌불안석이 되기 일쑤였다.
가난한 이 아비 때문에 그 힘든 노동까지 마다 않는 아들 보기가 미안해서 심지어는 눈물까지 났다. 눈물, 아니 ‘분노의 폭풍’은 그로부터 서너 달 뒤에 발생했다. 야간에 힘들게 일한 보수를 받긴 했는데 이틀치를 이런저런 이유를 대가며 빼먹고 안 주더라는 것이 아닌가!
성질 같아선 단박 쫓아가 책임자를 만나 요절을 내고 싶었지만 아들이 만류하기에 겨우 참았다. 그렇지만 젊은 청춘이 사회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부터 어른들이 속이면서까지 임금을 떼먹는다는 현실이 기성세대로서 정말이지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마저 거부당하는 현실에서 젊은이들은 과연 무얼 보고 배울 수 있단 말인가! 각설하고 인권기자들과의 대화는 장애인과 소외 계층의 인권 향상 등에 관한 주제로 계속하여 이어졌다. 또한 주된 관건은 복지(福祉)에 모아졌다.
“주변을 살펴보면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내년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취재할 생각입니다.” 근대적 의미의 복지는 빈자(貧者)를 위한 시혜적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서양에서는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의 ‘구빈법’을 그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이는 또한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해 억울하게 토지를 잃은 농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참고로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運動)’은 16세기 영국에서 모직물 공업의 발달로 양털 값이 폭등하자 지주들이 자신의 수입을 늘리기 위하여 농경지를 양을 방목하는 목장으로 만든 운동이다.
자본주의적인 경영 방법에 눈뜬 부자는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으나 다수의 영세농은 몰락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토지를 잃은 빈농들은 농토를 떠나 도시로 유입되었고 도시 자본가는 이들 노동자들을 얻어 신흥의 메뉴팩처(manufacture)를 더욱 발전시켰다.
이로써 중세 촌락의 공동체적인 성격은 많이 해체되었다. 하여간 엘리자베스 1세가 ‘구빈법’을 동원한 것은 당시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발생한 빈부격차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사회갈등이 심화되어 온당한 사회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통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의 오늘날 복지정책은 위기에서 핀 꽃인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와 또한 미국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은 논외로 치더라도 미국의 경우 국민의 14%가 지금도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사보험에 의지하고 있다. 때문에 돈이 없는 국민은 병원조차 갈 수 없어 죽는 날만 기다려야 하는 신세인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어떤 모순을 보자면 지금껏 역시도 성군(聖君)으로 숭상하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새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며 그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게 된다’는 의미의 ‘민유방본(民惟邦本)’을 기치로 당시의 조선에는 시각장애인 지원 기관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장애인과 이를 봉양하는 자에겐 부역이나 잡역 등을 면제해 주었다.
심지어는 시각장애인에게 종3품의 벼슬까지 내리는 파격인사도 마다치 않은 임금이 바로 세종대왕이었다. 고로 이는 이 험악한 드잡이 세상살이에서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여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남자라서, 또한 가장이라서 하지만 차마 울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더욱이나 심금까지 울리는 공명(共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제 2016년 달력을 뗄 때가 되었다. 새해엔 거짓이 아닌 진실된 웃음만 나오길, 아울러 남자라 울지 못하는 게 아니라 당당한 남자와 아빠라서 울지 않아도 되는 그런 풍성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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