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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바람 찬 강변을 홀로 걸었소 ~ 길 잃은 사슴처럼 저 강만 바라보았소 ~ 강 건너 저 끝에 있는 수많은 조약돌처럼 당신과 나 사이엔 사연도 참 많았소 ~ 사랑했던 날들보다 미워했던 날이 더 많아 우리가 다시 저 강을 건널 수만 있다면 ~ 후회 없이 후회 없이 사랑할 텐데 ~ ”
김재희의 <애증의 강> 가요 중 앞부분이다. 애증(愛憎)은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드넓은 모두 하늘까지를 포용한다. 반면 미워하게 되면 바늘 하나조차 들어갈 틈이 없이 옹졸해 진다.
몹시도 시끄러웠던 혼용무도(昏庸無道=세상이 어지럽고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의 2016년을 보내고 2017년 정유년(丁酉年)을 맞았다. 돈도 없고 차도 없고 여유조차 없는 까닭에 해돋이 구경 내지 여행은 화중지병(畵中之餠)이었다.
다만 새해 첫날의 사나흘 후엔 쉴 수 있는 덕분에 아내와 가까운 산을 찾아 이미 중천(中天)에 걸렸을 태양이나 볼까 한다. 여행(旅行)은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다. 또한 여행을 하게 되면 일상에서의 번로(煩勞)와 스트레스 또한 더우면 입었던 옷을 홀랑 벗듯 마음까지 탈의(脫衣)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한 여행은 직장과 사회생활에선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작위적 친절과 위선까지를 아울러 집어던지고 오로지 유희적(遊戲的)으로만 매진할 수 있기에 금상첨화다. 2017년으로 해가 바뀌니 내 나이도 ‘아홉수’가 되어 59세가 되었다.
예부터 아홉수는 9, 19, 29와 같이 아홉이 든 수(數)라 하여 남녀 공히 나이가 이 수에 들면 결혼이나 이사와 같은 일을 꺼렸다. 때문에 딸아이 역시 그 아홉수를 피하여 결혼식을 올린 바 있다.
그러나 여행은 그 아홉수하곤 전혀 관계가 없으니 기회가 된다면 맘껏 누리고 볼 일이란 생각이다. 사랑하는 딸은 결혼식 후 유럽 등지로 보름 이상의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반면 우리 부부는 결혼식 후 달랑 1박2일로 충북 보은의 속리산에 다녀왔을 따름이다.
이는 가난이 불러들인 필연적 결과였다. 내가 비록 장의소재(仗義疎財), 즉 의(義)를 소중히 여기는 대신 재물은 가벼이 여김의 대장부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과거나 지금 역시도 불변한 건 그야말로 쥐뿔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 같이 가슴 아픈(?) 우리 부부의 신혼여행 과거사를 인지한 아들은 언젠가 “아버지의 회갑을 맞으면 그 기념으로 저와 동생(딸)이 갹출하여 크루즈 여행을 시켜 드리겠다”고 한 바 있다.
3년 전 허리수술을 받은 바 있는 아내는 지금도 거동이 부자연스럽다. 어디를 가든 버스는 물론이요 아들의 차를 타더라도 한 시간 이상이면 반드시 통증을 호소한다. 그래서 해외여행 역시도 비행기보다는 승객이 편히 쉴 수 있는 객실을 따로 준다는 크루즈가 제격이다.
아내와 부부가 되어 한 이불을 덮은 지도 어언 36년이란 세월의 강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애증의 강> 노래처럼 어제는, 아니 ‘지난날’은 바람 찬 강변을 홀로 걸었던 것처럼 그렇게 춥고 황량한 빈곤의 나날을 점철했다.
아울러 길 잃은 사슴처럼 풍요(豊饒)의 저 강(江)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헌데 그 강엔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이들, 특히나 소위 먹물깨나 먹었고 권세까지 지녔다는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처럼 못 사는 서민의 입장에서 부자(富者), 더욱이 그 부(富)를 축적한 과정이 부정하고 부끄러운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면 이들을 보는 의심의 시선엔 응당 분노의 반동이 내재되기 십상이다.
여하간 지나온 36년 동안 강 건너 저 끝에 있는 수많은 조약돌처럼 아내와 나의 사이에도 사연은 물론이요 굴곡 역시 참 많았다. 뿐만 아니라 때론 사랑했던 날들보다 미워했던 날이 더 많아 돌이켜보기조차 부끄러운 적도 많았다.
따라서 우리가 애증의 저 강을 다시 건널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후회 없이 사랑만 하면서 살고픈 바람은 충분한 당위성(當爲性)의 함의(含意)를 도출케 한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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