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람 속으로 걸어왔어요 지난날의 나의 청춘아 ~ 비틀거리며 걸어왔어요 지난날의 사랑아 ~돌아보면 흔적도 없는 인생길은 빈 술잔 ~ 빈 지게만 덜렁 메고서 내가 여기 서있네 ~ 아~ 나의 청춘아 아~ 나의 사랑아 무슨 미련 남아 있겠니 ~ 빈 지게를 내려놓고 취하고 싶다 ~ 술아 내 맘 알겠지 ~”
남진의 히트송 <빈 지게> 이다. 나이가 들어 지난날의 내 청춘을 돌이켜보니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살아온 세월이었음을 은연 중 고백하는 노래다. 또한 돌아보면 흔적조차 없는 인생길은 빈 술잔과 같으며 따라서 빈 지게만 덜렁 메고 서있음의 안타까움까지를 토로하고 있다.
술을 다 마시어 텅 빈 술잔과, 짐이 없어 빈 지게 역시 휑뎅그렁하긴 매한가지다. 최근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를 일독했다. 수호전(水滸傳)은 삼국지와 더불어 세인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책이다.
중국의 남송(南宋) 때 양산박(梁山泊)의 108 영웅호걸들의 이야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수호(水滸)는 영토 바깥에 사는 사람들은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백성이란 의미다. 이 책은 저자의 능수능란한 글 솜씨와 함께 방대한 자료의 구축, 그리고 등장인물 개개인의 개성까지를 천착하여 더욱 흥미진진했다.
이 책의 압권(?)은 무시로 술자리, 아니 ‘술잔치’가 열린다는 거다. 첫 장부터 ‘술과 고기 그리고 사내’가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주장의 방증이다. 등장하는 남자들의 거개는 만나기가 무섭게 술부터 나누고 본다.
그리곤 그 술이 매개가 되어 의기투합(意氣投合)하면 의형제를 맺기도 일쑤다. 이 책의 무대는 500년 전이다. 참고로 남송(南宋)은 중국의 통일왕조 송(宋)나라의 후기를 이르는 말이다. 송나라의 전반은 북송(北宋)이라고 하는데 여진(女眞)족이 세운 금(金)나라가 요(遼)나라를 쳐서 멸망시킨다.
여세를 몰아, 1126년 송나라의 수도 카이펑(開封)을 점령하고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을 포로로 잡아가면서 송나라 왕실의 혈통이 중단되었다. 이를 '정강의 변'(1127년)이라고 한다. 이 난을 피해 남쪽으로 도망한 흠종의 동생 고종(高宗:재위 1127∼1162)이 남중국의 임안(臨安:지금의 항저우 抗州)에 도읍하여 남송(南宋)을 재건하였다.
금(金)과 화의하고 중국의 남부지역을 지배하였으나, 1234년 몽골에 의하여 금(金)나라가 멸망하자 몽골의 압박이 점점 심해져갔다. 1276년 마침내 몽골군에 의해 함락되고, 1279년 애산(厓山)전투에 패배하여 9대 152년 만에 멸망하였다.
그 즈음 남송의 정국은 마치 최순실이가 한껏 농락한 2016년의 대한민국 권부와도 같았다. 부정부패가 판을 쳤고 ‘돈이 있으면 귀신과도 통한다’는 말처럼 죽여야 할 죄인도 멀쩡하게 살아나는 세상이었다.
반대로 가난한 민중은 가렴주구에 시달려 굶어죽는 자들도 속출했다. 인육을 만두소(만두 속에 넣는 재료)로 만들어 파는 상인까지 있었음은 그 즈음의 참상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때문에 도적질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살 수 없는 비정상의 사회였다.
무능한 군주에 편승한 고구와 채경 등의 간신들 호가호위와 부도덕한 방법으로의 천문학적 재산 축적은 결국 관핍민반(官逼民反 = 관리들의 핍박에 못 이겨 백성들이 폭동의 길에 나선 것)을 초래하는 단초가 되었다.
그러한 와중에도 주인공인 송강은 ‘때맞춰 내리는 비’라는 급시우(及時雨)의 별칭답게 타인에게 베풀기를 즐겨 만인이 떠받든다. 그리곤 양산박의 두령까지 되는데 하지만 조정(朝廷)과 간신들의 사면(赦免)이라는 당근책에 휘말려들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방랍(方臘)의 난을 진압하면서는 108 두령들의 대부분이 목숨을 잃는데 따라서 이 즈음의 송강 처지는 그야말로 빈 술잔과 빈 지게만 덜렁 메고서 황량한 광야에 내버려진 듯한 처지로 추락한다.
설상가상 결국 황제가 내리는 독주를 마시고 죽기에까지 이른다. 어쨌거나 ‘취리건곤대 호중일월장(醉裡乾坤大 壺中日月長)’, 즉 ‘술이 들어가면 천지가 내 것이요, 술 먹는 동안은 고단한 세월(살이)도 잊는 법’이듯 수호전에 등장하는 잦은 술자리는 술꾼인 나의 마음까지 알코올로 적시는 감동을 선사한다.
내가 소년가장이었던 1970년대 초까지도 지게로 짐을 져 나르는 일을 업으로 삼던 사람인 지게꾼이 실재했다. 이들은 주로 역전이나 시장 어귀에서 지게를 지고 서 있다가 무거운 짐을 가진 이와 흥정을 벌여 짐을 날랐다.
지게꾼은 하지만 눈과 비가 온다거나 손님이 없는 경우에는 공(空)을 치는 날도 허다했는데 따라서 이런 날엔 ‘빈 지게’의 고달픈 신세가 되기도 다반사였다.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을 보면 인력거꾼 김첨지가 등장한다.
추측이지만 그 역시 인력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마도 지게꾼이 아니었을까 싶다.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의 무대는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어수선한 시기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지금 시대 상황과 별반 다름이 없는 건 없는 사람들은 더욱 살기가 힘들다는 현실의 고찰이다.
2017년에는 부디 도덕이 부정보다 우선하고 진실된 사람이 우대받는, 빈 지게가 아닌 짐이 가득 실린 지게를 등에 진 그런 풍요의 사회가 정립되길 소망한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 |
![]()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홍경석








